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전의 가장 큰 도화선 중 하나로 꼽히는 BBK 김경준 전 대표의 송환 문제를 두고 한나라당이 딜레마에 처했다.
이명박 후보 본인은 "거리낄 것 없다. 김 씨를 송환시켜 법의 처벌을 받게 하라"고 짐짓 자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최측근 인사인 김백준 전 서울메트로 감사는 김 씨의 송환을 막기 위한 법적 조치를 계속 취하고 있는 것.
게다가 이명박 후보 캠프도 '정면돌파'세력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자'는 세력으로 양분되고 있다. 이는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과 관련해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 씨의 고소 취하건을 놓고 혼선을 빚던 때와 동일한 상황이다.
김재정 고소 건과 닮은 꼴
이 후보 본인은 지난 20일은 물론 이달 초에도 "김 씨가 빨리 한국에 들어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박형준 대변인 역시 지난 21일 "김 씨가 들어와도 진실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박희태 전 부의장 등 중진그룹은 대선 전 김 씨 송환에 대해 신중론을 펼쳐왔다. 이는 지난 19일 (현지시간) 김백준 전 감사가 미 법원에 김 씨의 송환을 연기하고, 송환 결정재판에 자신을 당사자로 인정해 달라는 '재판개입 및 송환 연기신청'을 제출한 것으로 이어졌다.
김 전 감사는 지난 9일과 12일에 이미 연기신청과 개입신청을 제출했다가 기각당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김 전 감사의 이번 신청은 이 후보 측과 관련 없는 본인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캠프는 김재정 씨가 박근혜 캠프 등을 상대로 고소전을 펼칠 당시에도 '본인의 판단'이라고 주장했고 '고소를 끌고 간다', '취하한다'는 설왕설래가 한참 동안 이어졌었다. 이번도 유사한 상황인 것.
당 공조직과 별다른 인연이 없고 이 후보의 측근 인사인 김 전 감사가 독단적으로 판단해 김 씨의 송환을 막고 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결국 '이심(李心)'이 어느 한 쪽으로 단호하게 기울어지지 못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생 의혹에 대해선 DNA검사도 자청해 단호하게 대처했지만
지금까지 이 후보는 자신에게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응해왔다. 자신 있는 부분이었던 출생 의혹 문제에 대해서는 DNA 검사를 본인이 신청해 조기에 불식시켰지만 도곡동 땅 문제에 대한 대응은 이와 달리 명쾌하지 못했다. 위장전입 의혹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였던 것이 사실이 확인된 지 4일 후에야 '죄송하다고 생각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BBK 문제에 대한 대응도 후자에 가깝다. 또한 "김경준을 불러들이라"고 큰소리치던 이 후보 측이 막상 김 씨의 송환이 가까워지자 송환을 연기시키려는 조치를 연달아 취해 '정말 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키우고 있는 것.
이명박 후보의 한 측근 인사는 "BBK는 명쾌하게 딱 뭐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복잡한 공방이 벌어지는 쪽이라 일반인들 입장에선 이해하기도 힘든 사안"이라면서 "그런데 자꾸 우리가 송환을 막는 모양새가 나오니까 의혹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고 우려했다.
'이명박의 선택'은 어느 쪽?
결국 한나라당의 딜레마는 김경준 씨 송환 이후 그 폭발력이 어느 정도일지 스스로도 가늠하지 못한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공식적 주장'대로 김 씨가 송환돼서 검찰 수사를 받아도 '실체적 진실'이 바뀔 것이 없으면 전혀 문제될 것 없다. 또한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공방이 벌어지고 '실체적 진실'을 판단하기 어려운 정도에서 대선을 맞으면 타격은 최소화 할 수 있다. '여권 개입설' 등으로 맞받아 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면돌파'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같은 인식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 후보 본인과 최측근 인사들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다른 팩트'를 김 씨가 들고 올 경우, 이회창 전 후보를 둘러싼 병역비리 공방처럼 예기치 못하는 공격이 이어질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몸 사려서 작은 욕은 먹겠지만 크게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인식은 이 쪽 방향이다.
이명박 캠프 입장에서는 양 쪽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남은 것은 이 후보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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