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후보 단일화라는 사실상의 '본경선' 과정을 남겨 둔 범여권 후보들을 직접 대면해 '동급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유리할 것 없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것이 이 후보 측의 설명이다.
정동영은 피하고
18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에서 먼저 기조연설에 나선 이 후보는 자신의 순서가 끝나자마자 무대 오른 편에 마련된 출구로 서둘러 빠져 나갔다. 바로 다음에는 정동영 후보의 연설순서가 마련돼 있었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 관계자들은 "행사장에서 퇴장하는 이 후보의 동선과 입장하는 정 후보의 동선을 일부러 다르게 짰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최측근인 조해진 특보는 "정 후보뿐 아니라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여러 후보 중 누가 우리의 카운터파트가 될지 아직은 모르는 상황이 아니냐"면서 "후보들 하나하나를 직접 상대하는 것은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우연'으로 두 사람은 복도에서 마주쳤다. 이 후보와 정 후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마주 잡았다.
이 후보는 "반갑다"는 짧은 인사를 건넸고, 정 후보도 "건강하시라"고 응수했다. 부드러운 표정에 미소까지 교환했지만 두 사람은 곧바로 지나쳤을 뿐 다른 대화가 이어지진 않았다.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후보는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닌데 뭘…"이라고만 답했다.
심대평은 반기고
이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최로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전국 여성대회'에는 각 정당의 대선 주자들이 총출동했지만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후보가 정 후보에 대한 의식적 '선 긋기'에 나선 것과는 달리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정책이나 이념적으로 한나라당과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심 후보인데다가 한나라당이 민주당·국민중심당과의 공조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였다.
심 후보의 강연 다음 순서였던 이 후보는 행사장을 빠져 나오는 심 후보를 만나 "아이고"라고 반색하면서 악수를 나눴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던 정 후보와의 만남과는 대조적이었다.
"언론에서 자주 본다(심대평)", "얼굴이 좋아지셨다(이명박)"는 덕담도 이어졌다. "앞으로 자주 보자"는 이 후보의 제안에 심 후보는 "차나 한 잔 하자"고 화답하기도 했다.
이명박 "말 잘하는 분들이 먼저…나는 일 잘하는 사람"
일찌감치 대선행보에 시동을 건 '지지율 선두주자'로서의 무게감을 부각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엿보였다.
이날 '전국 여성대회'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가장 먼저 연단에 섰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그 뒤를 이었고, 이명박 후보는 가장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다른 일정과 겹쳐 참석하지 않았다.
여성단체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주제 강연 순서는 각 당 후보 측이 통보한 참석시간 순서대로 정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가 마지막 순서를 선택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 후보도 이날 주제 강연에서 "말씀 잘 하시는 분이 앞에 하는 것이 낫다"며 "저는 일은 잘 하는데 말은 잘 못해서 마지막에 왔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그는 전날에도 "이번 대선은 '일 잘하는 사람'과 '말 잘하는 사람'의 대결"이라고 규정했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도토리들'과의 수평비교 자체가 불쾌하다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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