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실질적으로 타결된 한중 FTA의 가서명이 곧 이루어질 전망이다. 한중 FTA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갈리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과연 거대한 중국의 내수시장을 어떻게 공략하느냐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미국을 제치고 한국 최대 교역국이 되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는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기업들은 거대 중국 시장을 눈앞에 두고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합무역정보서비스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통관거부 현황을 살펴보면, 미국이 903건으로 가장 많고 그 뒤로 중국이 101건, 일본 27건, 유럽연합 7건이다. 중국으로부터 통관 거부를 받은 업종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가공식품 분야이다. 거부사유로는 금지성분 첨가 및 기준치 초과가 가장 많았고, 유통기한 초과가 그다음으로 많았다. 이러한 통계는 중국 비관세장벽의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한중 FTA 서명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중국 시장, 보이지 않는 규제 장벽
우선 중국의 비관세장벽이 예사롭지 않다.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s)은 수입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여 자국의 동일 상품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무역장벽이다. 이는 기술적 표준, 통관절차, 위생검역, 환경규제 등을 이용해 수입품이 자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어렵게 하여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방식이다. 사실 이러한 조치는 WTO 체제에서 국제무역을 방해하는 요인이자 금지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즉, 국민의 안전, 건강, 환경보호, 국가 안보 등 정당한 목적 달성을 위한 조치에 대해서는 각 회원국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각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명목을 내세워 외형적으로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수입을 억제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더욱이 이러한 비관세장벽은 각국의 국내 제도 및 법령 등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수출국의 입장에서는 이를 파악하기 여간 힘들고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통계에서 보듯이, 가공식품 분야가 유독 통관거부를 당하는 것도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2000년대 후반부터 끊이지 않는 식품 안전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따라 식품안전에 대한 규제 및 관리·감독이 매우 엄격해지고 있는 추세다.
자국 식품안전에 대한 불신으로 중국의 수입식품 소비는 매년 15%씩 증가하고 있다. 2018년이 되면 4008억 위안(元) 규모로 세계 최대 수입 식품 소비국이 될 전망이다. 한국은 중국과의 FTA를 통해서 가공식품 분야에서 중국에 대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 식품 분야는 중국 자국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과 한류의 영향으로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혈 기대감만으로 중국의 기술 장벽을 넘기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수입 가공식품에 대해서 자국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하여 중국의 국가안전표준을 충족시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 국가안전표준이 한국의 식품안전표준과 상이하거나, 각 지방마다 다를 경우에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모 기업의 '바나나 우유'의 경우 한국에서는 유제품으로 분류되어 수출 시 검역증만 발급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음료로 분류하여 관세율을 높임(유제품 15%, 음료 35%)과 동시에 검역증 및 위생증명서(health certification)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제품에 대해 위생증명서 발급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편 유통기한이 초과돼 통관이 거부되는 경우도 많은 부분 비효율적인 중국 통관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한다. 유통기한이 짧은 유제품의 경우 통관절차가 2주 넘게 지연되면, 자체 폐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가공식품 분야도 다르지 않다. 또 식품 원료로 사용하는 옻의 경우 중국에서는 식용성분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아, 옻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식품이 전량 폐기되어 반송되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 결국 통상 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같은 상품의 분류를 양국이 다르게 하거나, 양국의 위생검역방식을 서로 인정하지 않고 자국 방식만 요구하는 현실은 사실상 수출 기업들이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합의가 필요하다.
한미 FTA가 체결되고 나서 한국의 삼계탕을 미국에 수출하지 못한 사례는 꽤나 잘 알려져 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10여 년 간 협상을 통해 삼계탕을 포함한 한국의 가금육가공품과 관련된 법, 제도, 검사체계 등을 미국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했다. 이후 삼계탕은 대미 수출의 길을 열 수 있었다.
전례가 이렇다고 한다면, 한중 FTA가 발효되기 전이라도 한국과 중국의 제도적 차이점을 빨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장의 어려움을 정부가 인지할 수 있도록 수출 기업들의 고지 노력도 더해져야 할 것이다. 중국 문턱까지 가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되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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