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반핵, 탈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탈핵주의자가 아닙니다. 원전 기술자로서 원전의 안전성이 걱정되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원전 안전은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원전 전문가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캐나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설계 전문가로 일하다 국내로 들어온 뒤로도 원전 관련 활동을 해오고 있다. 평생 원전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월성1호기와 같은 원리로 설계된 중수로 원전 설계 전문가로 일한 바 있다.
그런 이 대표가 현재 수명연장(계속운전) 여부가 논의 중인 '월성1호기'의 재가동을 사실상 반대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오는 12일 30년 수명이 만료된 노후원전 월성1호기 10년 수명연장심사 안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월성1호기 수명연장반대 국민선언'에 참석해 원자력 기술자인 자신이 월성1호기 재가동을 반대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우리 정부 대책, 여론 무마용"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우리 정부의 후속 대책이나 안전성 개선 정책 등은 우리 같은 전문가들이 볼 때 전혀 와닿지 않았다. 여론 무마용 정책이 아닌가 싶었다. 실질적인 안전성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도 참석했다. 지금 월성 1호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원자력법에서 계속운전을 심사할 때에는 최신의 기술기준을 적용하도록 정하고 있어 월성1호기에도 R-7 요건에 따른 시설을 추가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정부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 제출된 월성1호기 계속운전심사보고서와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는 R-7 기준 적용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 대표는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관련 보고서 열람을 요청했지만 이를 묵살하고 있다"며 "결국 R-7 안전기준에 제대로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과 관련된 기술자료 일체는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재산이라며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원전규제 기술자, 독일 2000명, 한국은 고작 500명"
이 대표는 국내에 원전을 규제하는 기술자가 턱없이 부족한 점도 언급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19개 원전이 가동되고 있고 일부는 폐로 수순을 밟고 있다"며 "하지만 거기에는 원전규제 기술자가 2000명이나 된다. 100여 기의 원전을 지닌 미국도 규제 인력이 3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의 경우 건설되는 것까지 합하면 원전이 30기인데 규제활동 기술자는 500명 전후에 불과하다"며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정부가 원자력 안전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주장했다.
원안위가 총리 산하에 배속된 점도 지적했다. 그는 "원안위가 미래부에 갔다가 다른 데 갔다가 결국 총리 산하로 들어갔다"며 "그런데 총리는 원자력 진흥위원이다. 논리로 따지자면 진흥의 논리로 안전이 관리되는 식이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렇다 보니 원전규제 기술자를 증원하지도 않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월성1호기의 안정성을 검토하는 원안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월성1호기가 안전이 담보된다면 계속 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용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안전 관련 제대로 검토가 안 됐다면, 재가동은 절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탈핵주의자가 아니다"라며 "다만 원전 안전에는 한 치의 양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원전 안전은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익에 눈 멀어 안전 무시하는 참사 반복되지 않길"
한편, 이날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반대 국민선언 참가자 일동은 선언서를 통해 "수명 끝난 노후운전 월성1호기를 연장해서 가동할 이유는 없다"며 "우리는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세월호사고와 같은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안전을 무시하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반대한다"며 "월성1호기의 폐쇄는 우리 안전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부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러한 국민적 요구를 수용해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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