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에서 방영된 기획물 <슈퍼차이나>에서는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다뤘다. 세계 G2 국가이자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강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중국의 급속한 성장 동력 가운데 소프트파워에 주목한 기획물이었다. 사실 소프트파워라는 말은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 최강자를 둘러싼 '힘의 이동'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프트파워는 말 그대로 '부드러운 힘'이지만 이는 국가의 정책이나 전략과 관련되는 정치적 표현이자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소프트파워는 1990년 조셉 나이의 저서 <주도국일 수밖에 없는 미국 : 미국 국력의 변화하는 본질>(Bound to Lead: Changing Nature of American Power)에서 언급되기 시작했고 2004년에 이르러 국가 전략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나이는 기존의 세계질서와 국제정치는 군사력과 경제력 등 국가의 하드파워가 힘을 발휘하였지만 미국의 이라크전쟁 이후 세계의 여론을 고려하면 하드파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대중문화인 콜라와 청바지가 세계에 확산되고 이는 자유로운 감성과 문화의 코드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됐다. 이에 기인해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고 세계 공용어로 자리 잡게 됐다. 이를 상기시켜보면 문화적 힘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재고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시 미국이 전 세계에 매력을 증대시키고 그들의 문화를 수용자들 스스로 따라하게 만들 문화적 가치의 확산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물론 미국뿐 아니라 감성과 문화, 신뢰, 이념 등 비물질적인 요소가 작용하는 소프트파워, 즉 연성의 권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그의 주장은 각 국가의 전략 설정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세계는 소련의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전 세계에 자본주의가 확산되는 과정이자 세계화와 전지구화가 퍼져가는 시기였다. 현재에도 진행 중인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의 각 지역은 정보통신과 이동수단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빠르게 동질화되었다. 초국가적 기업 하에 다른 인종과 민족이 같은 노동자로서 일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 간 결혼이민이 이루어졌으며 지역 간 이동도 활발해졌다. 한류에서도 나타나듯 다른 문화에 대한 수용과 열광이 일어나면서 문화적 혼종과 수용의 복합적인 작용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가 전개되면서 국가가 사라지고 세계 시민만이 남게 될 것 같은 네트워크의 확산도 있었지만 동시에 각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과 문화가 더 강조되고 세계화에 저항하는 움직임 또한 나타났다. 이 역시 현재 경험하고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어쩌면 문화의 수용과 교류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패턴과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근저에는 '세계화'가 초래한 현상이라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지역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이 지역은 관광객의 취향에 맞는 관광 상품이 돼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지역민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지역의 공간을 바꾸고 상품화하면서 스스로 소외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지역민들을 관광지가 되기 전에 이 지역이 주었던 정서적·문화적 풍요로움이 더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저항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러한 식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은 지역과 국가, 민족의 층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화는 서구의 근대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작용을 하면서도 이에 대한 반발도 초래하는 양면적 현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미국문화를 포함하는 서구문화의 도래에 대한 반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중국 역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예외 없이 서구문화의 도래에 대한 반응과 수용의 과정을 겪게 되었던 것이며 소프트파워 전략의 수립과 시행도 그러한 가운데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군사와 경제력이 커지자 일본을 비롯한 미국 등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이른바 '중국위협론'(China Threat)을 제기해 왔다. 이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이자 권위적 공산주의 국가라는 서구의 중국이미지인 '어글리 차이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작용을 했다. 그리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넘어가게 하는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지닌 중국이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강자로 떠오르자 서구의 초조함과 위기감으로 인해 중국 위협론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은 이러한 중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매력적 이미지로 개선하고 불식시키려는 것으로 1990년대 후반 이래 수립되었다. 위에 소개한 나이의 책이 <정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가?>(美國定能領導世界嗎?)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고, 중국의 전략을 수립하는 학자들에 의해 적극 수용되는데 특징은 소프트파워를 문화라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2003년 국가 차원의 문화산업전략이 수립되고 2004년에는 언어와 문화를 세계 각국에 전파하는 공자학원(孔子學院, confucius Institute) 전략이 수행됐다. 2006년에는 미디어 매체의 국가의 대대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등 국가차원의 전략으로 진행됐다. 소프트파워를 가장 잘 보여주었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개최 등 세계 속으로 들어간 중국은 문화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소프트파워 확산 욕망을 멈추지 않고 있다.
수동적으로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중국 전통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현대적 산업에 다시 녹아내려는 문화산업도 국가전략에 의해 빠르고 광대하게 전개되고 있다. 교육의 인프라가 구축되어 교육과 문화산업이 연계되고 중국 전역의 공간을 재가공하면서 비물질의 무한한 자원이 활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시행 결과 중국의 오랜 전통과 역사가 문화의 산업으로 재가공 되어 세계에 수출되면서 중국 문화에 대한 세계 각지의 호응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중국어 학습 수요가 급증하고 중국어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중국어의 공용어화에 대한 기대도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며 영화나 중국의 예술, 무예 등이 알려 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소프트파워전략이 서구가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고 나아가 매력이 있다는 느낌을 줬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그것은 보다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문화의 내용. 즉 콘텐츠의 질 때문이다.
모두가 수용하고 싶은 높은 수준의 문화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소프트파워로서의 문화가 최고의 강대국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데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은 외부에 대한 작용뿐만 아니라 중국 내부의 통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도 고안되었는데 과연 중국 내부의 산적한 문제를 유가(儒家) 콘텐츠를 통해 해소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전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데 성공할 수 있는가, 보편성과 우수성을 내포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가는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화 시대의 소프트파워 전략의 성공을 위한 고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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