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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두 자매 사건, 송파 세 모녀 자살과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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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구 두 자매 사건, 송파 세 모녀 자살과 판박이

[안종주의 건강사회] 빈곤 자살 왕국, 대한민국의 현주소

또 자살이다. 자살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유명인사의 자살이 아니고는 이제 별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지도 않다. 자살할 때마다 이를 언론이 중계 방송하듯이 보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눈여겨보아야 할 자살이 분명 있다. 

지난해 초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데 지난 24일 대구에서 지적장애 1급인 30대 언니를 돌보며 살아오던 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세 모녀 사건 때처럼 월세가 밀려 있는 등 생활고가 자살 동기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결코 좋아질 수 없는 언니를 언제까지고 돌보아야 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 겹쳤을 가능성이 크다. 전형적인 사회적 자살에 속하는, 안타까운 사건이다. 우리 사회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저 말로만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하루빨리 실행에 옮겨야 할 사안이다.

세 모녀 사건을 쏙 빼닮은 대구 두 자매의 슬픈 이야기는 지난해 세 모녀 사건이 터졌을 때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부도 나서 온갖 대책을 떠들고 세웠다고 했지만, 실은 별로 실효성이 없었음을 증명한다. 이런 것이 자살 문제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 안전, 보육 아동 인권과 폭력 등 우리 사회는 지금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오늘은 자살이 주제이므로 자살에 국한해 이야기하려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소프라노이며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효시로도 일컬어지는 '사(死)의 찬미'를 노래했던 윤심덕은 1926년 유부남이었던 연인 김우진과 현해탄을 오가는 여객선에서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삶을 마감했다. 죽음은 물론 찬미할 성격이 결코 아니다. 자살 또한 그렇다. 

이유 없는 자살은 없다 : 제도 개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자살 많아

자살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불치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잃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빚에 쪼들려, 사업에 실패해, 부정을 저지르거나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르고 수사를 받거나 쫓기다 수치심을 못 이기거나 더는 도망할 곳이 없어 자살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더는 이룰 것이 없어 목숨을 끊는 이들도 드물게 있다. 

많은 경우 우울증 증세가 심해져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결행한다. 어떤 이들은 혼자 죽기 싫거나 두려워 다른 사람과 함께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동반 자살이다. 심심찮게 어린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는 어른들도 있다. 오랫동안 우리 언론들이 '동반 자살'이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한 이것은 결코 동반 자살이 아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살인이다. 드물게는 왜 자살했는지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자살하는 사람이 그 어떤 이유로 목숨을 스스로 끊든 생명은 단 하나뿐이기에 자살은 막아야 한다. 자살 가운데 예방할 수 있는 자살이 있고 예방할 수 없거나 예방하기가 쉽지 않은 자살이 있다. 뇌물수수 등 불법을 저지르고 수치심에 갑자기 자살하는 경우 그 징후를 재빨리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생활이 어려워, 우울증 증세로 고통을 겪다 자살하는 경우 등 자살 가운데 많은 부분은 우리 사회가 제도와 시스템만 잘 갖추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당장 자살률 낮추는 가시적 성과 거둬야 

자살예방 대책의 방향은 먼저 가장 예방하기 쉬운 부분부터 손대는 것이다. 여기에 인력과 예산, 제도 개선 등을 집중해야 한다. 하루빨리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자살률을 몇 년 안에 지금보다 10~20% 낮춰야 한다. 그래야 중장기적으로 자살률을 지금의 절반 수준, 나아가 아이엠에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살에 무디어져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살에 관한 한 너무나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구성원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자살예방단체나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만 자살 문제 해결을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지금 대통령은 마구 터져 나오는 좋지 못한 각종 현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겠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려 자살 문제 해결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민과 관, 그리고 학계가 모든 역량과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나라를 운영한다거나 잘 통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생활이 어려운 사람, 부정을 저지른 사람, 우울증을 앓는 사람, 성취할 것이 더 없는 사람, 사랑을 못 이룬 사람들이 모두 자살하는 것은 아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이들 가운데 극소수이다. 

빈곤하다고, 생활이 어렵다고 자살한다면 아마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의 후진국에서는 매일 수만 내지 수십만 명이 자살하는 참극이 빚어질 것이다. 우리보다 자살률이 수십 배, 수백 배 더 높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국가들에서 자살률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 이는 결국 빈곤 그 자체가 자살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다루는 그 사회 시스템이 잘못됐을 경우 자살자가 증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살이 유행하는 사회, 날이 갈수록 자살이 늘어나는 사회, 자살 문화가 활개를 치는데도 국가나 공동체가 그 예방에 별로 힘을 쏟지 않는 사회는 결코 건강사회가 아니다. 선진사회라고 할 수도 없다. 특히 빈곤에 짓눌려 자살하는 사람이 많거나 증가하는 사회는 위험사회, 아니 위험증폭사회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과 대구 두 자매 사건이 그 방증이다.

자살은 우리 사회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살아 있는' 비판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대한민국은 지금 자살이 전체 사망원인 가운데 4위, 청소년 사망원인 가운데 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 전 세계 모든 국가 가운데 자살률 1, 2위를 다투는데 쥐꼬리만 한 예산과 중앙부처 담당 인력 한두 명이 고작이다. 자살○○위원회와 같이 추진력이 떨어지고 실효성이 별로 없는, 대다수 국민이 모르는 형식적 기구만 있다. 자살 예방은 국가 주요 관심 사항이 되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자살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가 차원의 강력하고 힘 있는 자살예방조직이 필요하다.

자살 문화 연구가인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2013년 11월 펴낸 <자살론>이란 책에서 "자살이야말로 우리 사회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살아 있는' 비판"이라는 말로 생활고 자살에 깔린 함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생활고 때문에 빚에 내몰린 자살자가 무수히 많다는 것은 죽은 그들뿐 아니라 우리 또한 한갓된 축생일 뿐이라는 점을 말한다"는 말을 그에 앞서 말하면서. 다시 말해 "생활고 자살은 자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자살을 막지 못한 채 살아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가 사는 이곳이 제대로 된 의미의 '사회'가 아니라 아귀지옥임을 말해준다"는 게 그의 빈곤 자살론이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아귀지옥'인 셈이다.

끝으로 사족 아닌 사족을 하나 덧붙이려 한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들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서는 편히 쉬라고 고인이나 유가족에게 말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위로의 말이다. 편히 쉴 하늘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죽으면 편한 곳에 간다는 말은 외려 자살을 부추기며 죽음을 미화할 위험이 크다. 생의 찬미는 있을지언정 사의 찬미는 있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더는 이런 말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 고통 속에 죽었다면, 삶 자체가 고통이었다면 그런 고통을 현실에서 없애는데 온 힘을 쏟아 붓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앞으로 자살자를 포함한 모든 고인에게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라는, 말이 안 되는 말을 하지 말고 이승이 살기 편안한 곳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말을 하자. 이것이야말로 망자에 대해 제대로 예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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