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부터 부동산 투자이민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제주도는 2014년 연말 기준으로 여의도의 2배가 넘는 땅이 중국인 소유라고 한다.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스템을 통해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있도록 조절한다면 아무 문제점도 생기지 않지만 지금의 제주도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중국인 부동산 매입은 관광단지인 제주도 경관은 물론, 이곳에서 사는 지역주민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체 제주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난 연말 프레시안에서는 2박3일간 제주도 현장 취재를 다녀왔다. 제주도의 상황이 어떤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용두암이 보이는 제주 라마다호텔에서 한적한 방파제 산책길을 따라 15분쯤 걷다 보면 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탑동 이마트를 볼 수 있다. 20여 년 전에 지어졌다. 총 5층 공간 중 1층과 2층을 이마트가 사용한다. 이 건물이 세워질 때만 해도 이 지역의 유일한 대형마트였다. 늘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것도 잠시, 다른 곳에 우후죽순 대형마트가 세워지면서 점차 손님이 떨어져 나갔다.
최근 이곳이 다시 붐이다. 인근 제주항을 통해 대거 중국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실제 일요일 오후에 찾은 이마트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볐다.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높은 중국어 성조가 한국어와 뒤섞여 순간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이마트에서 한층 더 올라가면 ‘유니코 상가’(3층~5층)가 자리하고 있다. 이마트가 들어설 때 이곳에 자리 잡았지만 지금 상황은 이마트와 정반대다. 기자가 찾은 유니코 상가는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빈 매장이 많아. 사람이 안 와서 망해가나?"
군데군데 이 빠진 모습으로 자리 잡은 빈 매장이 눈에 띄었다. 빈 매장 천장에 달린 조명은 일제히 꺼져 있었다. 한낮임에도 상가 전체가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흡사 귀신이라도 나올 분위기였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유니코 상가를 찾은 40대 남성은 섣불리 매장 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다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2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유니코 상가는 왜 이렇게 됐을까.
이 빠진 자국처럼 휑한 매장들
유니코 상가는 지난 1999년 제주도전통시장상인연합회에 가입하면서 전통시장으로 등록됐다. 이마트 건물 3~5층에서 86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의류, 각종 잡화, 음식점 등이 들어와 있다. 1998년 만들어졌다. 당시만 해도 지리적 조건이 좋았다.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지 않을 때였다. 이마트에 온 사람들이 유니코 상가에도 방문했다. 자연히 손님이 붐볐다. 돌침대 가게를 운영하는 송진백 씨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즈음이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됐다. 하지만 그것도 2000년 초까지였다. 중심지가 탑동에서 신제주로 이동되면서 파리가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3년이 되면서 유니코 상가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상가를 찾기 시작한 것. 항구와 가까운지라 여객선을 타고 오는 중국인들이 쇼핑을 위해 이곳을 자주 들렀다. 유니코 상가 하루 평균이 2012년보다 2.3% 증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느 순간부터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유니코 상가에 빈 매장이 늘어나면서부터였다. 매장주인들이 영업을 안 하고 빈 매장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사실 매장주인‘들’도 아니었다. 경기도 소재 A업체가 20013년 8월께부터 매물로 나오는 점포를 하나둘씩 사들인 뒤, 매장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현재(2015년 1월) 전체 86개 점포 중 24개를 매입했다. 약 30%에 달하는 수치다.
A업체는 유니코 상가 전체, 즉 86개 매장을 모두 매입해 대규모 쇼핑몰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전체 매장을 모두 매입할 때까지 기존 구입 매장은 운영할 계획이 없었다.
하루가 멀게 찾아와 매장 팔라는 업체
답답해지는 건 송 씨다. 그는 유니코 상가에 들어올 때 평당 410만 원을 내고 들어왔다. 물론 그 돈을 A업체가 준다 해도 매장을 팔 생각은 없다. 다른 곳에서 가게를 다시 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돈이다. 여기서 장사할 수밖에 없다. 다른 상인들 처지도 비슷하다.
상인들이 버티자 A업체는 하루가 멀게 찾아와 회유하기 시작했다. 유니코 상가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권영선 씨(가명)는 “매매를 요구하는 사람이 ‘빈 매장이 늘어나면 상가 이미지가 나빠져 앞으로 영업하기 더욱 어려워진다’며 그 상황이 오기 전에 파는 게 좋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실제 점점 빈 매장이 늘어나면서 상가는 음침해졌다. 자연히 매상은 떨어졌다. 2013년 기준으로 1일 방문객이 1000명, 매출액이 4300만 원이었으나 2104년에는 1일 방문객 300여 명, 매출액 1800만 원으로 전년도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게다가 이 업체는 건물 관리비를 연체하며 상인회 관리단 운영까지 압박하고 있다. 2014년 9월 기준으로 밀린 관리비만 84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코 상가 상인회 관계자는 "이곳 상가는 상인들에게 한 달에 평당 1만5000원 정도의 관리비를 받는다"며 "이 돈으로 전기료, 냉난방비, 청소비 등 건물 운영비를 충당한다. A업체가 이 돈을 내지 않으면서 상가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송 씨를 비롯한 유니코 상인들은 A업체가 자기네를 고사시켜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자신들을 괴롭히다 보면 하나둘씩 떠날 테고 그러면서 내놓는 매장을 자기네들이 사들이는 방식을 꾀하고 있다는 것.
늘어난 중국 여행객에 한숨만 늘어난 송 씨
주목할 점은 이 업체의 배후다. 유니코 상가 상인회가 조사한 바로는 A업체의 등기부등본상 자본금은 5억5000만 원. 지금까지 유니코 상가 매장을 매입하는 데 사용한 비용만 34억 원이다. 자본금의 7배에 가까운 돈을 유니코 상가에 쏟아 부은 셈이다. 상인들은 이 돈을 어디에서 투자받았는지에 의문을 나타낸다. 앞으로도 그 돈의 4배 가까이 투자해야만 A업체가 원하는 대형 쇼핑몰을 차릴 수 있다.
유니코 상가 상인들은 업체 배후로 중국자본을 지목한다. 중국자본이 A업체를 앞세워 유니코 상가 전체를 매입한 뒤, 중국인에게 특화된 쇼핑몰을 지으려 한다는 것.
실제 제주도에는 중국자본에 넘어간 쇼핑몰, 호텔 등이 상당하다. 유니코 상가는 입지조건도 좋다. 대형 호텔이 주변에 밀집돼 있을 뿐만 아니라, 제주항과도 인접해 있다. 여객선을 타고 오는 중국인이 인근 호텔에서 묵고 쇼핑하는 식이다.
여객선 방문자도 매년 늘고 있다. 2014년에는 약 55만 명이 여객선을 타고 제주항을 찾았다. 이중 중국인 비율은 88%를 차지했다. 최근 5년 새 방문객이 10배 이상 늘어났다. 게다가 제주도는 2020년까지 제주항 외항에 10만t급 여객선이 입항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는 "유니코 상가 매장을 한 업체에서 이렇게 많이 사들인 뒤,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배를 타고 들어오는 중국인을 상대로 대형 쇼핑몰을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그 배후에는 중국자본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터전을 닦아온 송 씨다. 젊었을 때는 서울 동대문에서 돗자리 장사를 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어렵게 일했다.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돈을 모으던 시절이었다. 제주도에 내려와서도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만 알았다. 아니라는 것은 최근에 알았다. 요즘 송 씨의 입맛은 무척 쓰다. 그의 한숨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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