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와 노동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현대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 측이 사실상 승소했다. 법원이 노동조합의 직급별 대표 23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단 2명의 상여금 일부만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2부(마용주 부장판사)는 이날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 23명이 상여금과 휴가비 등 6개 항목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2년 가까이 계속되어온 이번 소송은 노사 합의를 통해 선발한 직급별 대표 소송으로, 원고 23명에 대한 법원 선고가 현대차 5만1600명의 조합원에게 같은 효력을 미치게 된다.
옛 현대차서비스 조합원 통상임금만 '일부 인정'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을 계산하기 위한 '가상의 기준'으로, 범위가 확대되면 연장근로 및 연차휴가 수당, 퇴직금 등이 연쇄적으로 증가해 노동자의 급여가 크게 늘어난다. 재판부가 노조의 손을 들어줄 경우,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약 16.8% 정도 오를 것으로 추정돼 현대차가 인건비로 5조3000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업계의 관측도 나왔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현대차 노조원 중 옛 현대차서비스 출신 조합원에게 지급되는 상여금 가운데 일할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나머지에 대해선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봤다.
앞서 현대차는 지난 1999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현대차서비스와 통합했는데 현대차와 현대정공의 상여금 시행세칙에는 '15일 미만 근무자에게 상여금 지급 제외' 규정이 있지만, 현대차서비스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일정한 일수 이상을 근무해야만 상여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경우 고정성 요건을 갖추지 못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소송을 냈던 23명 가운데 실제로 통상임금이 인정된 사람은 2명으로, 금액은 각각 389만 원과 22만 원 정도다. 당초 현대차서비스의 노조원 대표는 5명이었지만, 나머지 3명은 입증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해 통상임금을 인정받지 못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전체 현대차 노동자의 8.7%에 불과한 서비스 출신 노조원의 상여금만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만큼, 이를 지급하는 것이 중대한 경영상의 위기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보고 회사에 3년치 소급분을 지급하라고 했다.
현재 현대차 전체 노조원 5만1600여 명 중 통상임금을 인정받은 현대차서비스 출신 조합원은 5700명 수준이다.
노동계에 불리한 판결…노사정위 논의 영향 미치나
노동계의 입지가 크게 줄어든 이번 판결에, 현대차 노조는 즉각 아쉬움을 표했다.
이경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판결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그룹 계열의 각 주식회사에 동일임금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데, 법원이 옛 현대차서비스 출신 조합원에 대해서만 통상임금을 인정해 아쉽다"고 밝혔다. 노조는 내부 논의를 거쳐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국내 최대 규모 사업장인 현대차에 대한 이번 선고 결과는 노사정위원회의 통상임금 후속 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노사정위는 올해 3월까지 통상임금 제도 개선 방안을 '3대 현안' 중 하나로 논의키로 하고, 지난 9일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노사정 각자의 입장을 제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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