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켤레의 주인 없는 신발이 가지런히 놓였다. 신발마다 1부터 26까지 번호표가 붙었다.
주인 없는 낡은 신발들이 놓인 곳은 쌍용자동차의 신차 '티볼리'의 출시 발표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A1관 앞. 쌍용차의 최대 주주인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13일 신차 출시를 맞아 이곳을 찾았다.
인도의 속담 중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 그 사람의 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쌍용차가 4년 만에 발표한 야심작 '티볼리'의 탄생을 기념하는 화려한 신차 발표회장 밖에서, 초대받지 않은 해고자들과 주인 없는 신발들이 묻는다. "쌍용차의 사라진 26명, 26켤레의 신발을 아는가?"
공장을 활보하던 작업화, 누군가가 사용했을 목발, 욕실에서 사라진 동료의 슬리퍼, 해고자 아내의 신발장에 남겨진 하이힐까지.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6년 동안, 26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해고가 부당하며 거리에서 싸운 시간이 햇수로만 벌써 7년째. 해고자들은 "상주가 아닌 날이 없었고, 몸에서 향 냄새가 떠난 날이 없었다"고 했다.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지난해 11월 대법원 판결 후, 두 명의 해고자가 평택공장 안 굴뚝 위로 오른 것은 그래서다. "이 잔혹한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지만, 이들이 굴뚝으로 오른 날에도 또 한 명의 해고자가 세상을 등졌다. 70미터 굴뚝 위에서 받은, 스물여섯 번째 부고장이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법원도 정부도 외면한 상황에서 이제 이 비극을 멈출 유일한 열쇠는 마힌드라 회장에게 있다"고 했다. 김 지부장을 포함해 전날까지 5박6일간 서울 곳곳에서 오체투지를 벌였던 해고자들은 쌍용차 역삼사무소에서 주한인도대사관으로 향하는 길목인 한남대교 위에서 26배를 올렸다고 했다.
이날로 굴뚝농성 32일째를 맞은 이창근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전날 마힌드라 회장에게 영어와 힌디어로 쓰인 트위터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신고 있는 이 낡은 신발을 보십시오. 기회가 닿는다면 한 번 신어도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와 대화를 나누어 주십시오."
"해고자 문제 풀 열쇠는 마힌드라 회장 결단…공장 밖서 기다릴 것"
실제 마힌드라 회장의 입국은 해고자들에겐 마지막으로 붙잡고 싶은 '희망의 끈'이기도 하다. 가수 이효리 씨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해고자들이 만든 티볼리를 타고 싶다"고 호소해 신차 출시도 전 회사가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본 데다, 마힌드라 회장 역시 지난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해고자 복직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특히 마힌드라 회장은 14일 쌍용차 평택공장을 방문해 회사 관계자들과 만날 것으로 알려져, 쌍용차노조(기업노조)와의 면담이 성사된다면 이 자리에서 해고자 복직 문제가 논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관련 기사 : 마힌드라 방한…쌍용차 해고자 문제 풀릴까)
앞서 기업노조 김규한 위원장은 지난달 1일 마힌드라 회장과의 화상 회의에서 방한 중 기업노조와 투자 및 해고자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김득중 지부장은 "방한 일정이 이미 꽉 차 있겠지만, 마힌드라 회장을 꼭 만나고 싶다"면서 "내일 공장 앞에서 새벽이든, 밤이든 기다리겠다. 스물여섯의 동료를 잃고 거리에서 7년째 싸우고 있는 해고자들의 절박함을 들어 달라"고 했다.
마힌드라 회장은 이날 신차 발표회 연설에서 "(나의) 첫 번째 임무는 쌍용차 4500명 직원들의 미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한때 그 공장 안에서 함께 일했던 해고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 '티볼리'를 함께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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