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풍자와 조롱의 차이…'만평테러'가 던진 화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풍자와 조롱의 차이…'만평테러'가 던진 화두

[기자의 눈] 약자에 대한 공감력과 '표현의 자유'

프랑스의 시사만평주간지 <샤를리 엡도>의 만평제작진들이 '예멘 알카에다'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들에 의해 '표적 살해'됐다. 이 주간지의 편집장이자 만평작가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를 비롯해 유명 만평작가 4명이 함께 살해된 12명에 포함됐다. 사망자 중 8명이 편집진이다(나머지 4명은 현장에 있었던 전직 기자 1명, 경찰 2명, 건물관리 직원 1명으로 밝혀졌다).

기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뭔가 찜찜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이번 사건이 흔히 우리가 민주사회의 절대가치로 여기는 '표현의 자유'라든가 '언론의 자유'에 대한 테러 사건일 뿐인가 하는 의구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 공동체 안에서 '만평'을 통한 표현이 불만스럽다고 보복살해를 했다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발단이 된 '만평'이 어떤 내용인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었다.

서구 언론들은 문제의 만평들을 '신랄한 풍자'라고 한다. 다시 생각해보자. 풍자와 조롱이 같은 것인가? 내가 알기로, 풍자는 강한 대상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이고, 조롱은 약한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다.

'지구촌 공동체'라고 하지만, 지금 서구 열강들이 단합해서 이슬람권 곳곳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공동체가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다.

학살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 문화가 지배하는 서구와 이슬람 문화권은 힘의 격차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신성불가침'이라고 생각하는 선지자를 서구 언론이 모욕하는 만평을 거듭 게재하고 있을 때, 서구에 의해 학살도 모자라 '신성 모독'까지 당하는 심정으로 살의를 느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표현의 자유'라든가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가 더 앞서는 것이니 '보복 테러'는 용납할 수 없다고 '도덕적 훈계'를 할 수 있을까?

나는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쪽은 약자이거나 이를 대변하는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내세울 가치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자유는 힘이 있는 쪽에서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힘이 있는 쪽이 미디어를 장악해 선전을 일삼는 반면, 이와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면 탄압을 받는다. 재벌과 권력에 기생하는 주류 언론이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이 언론답냐 아니냐는 '사실' 보도 이전에 '약자의 편'에서 강한 자에게 저항하고 비판하는 태도와 관점에 서있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실을 추구하는 보도'라고 생각한다. "기득권 질서가 진리"라는 전제 위에서 '사실 보도'를 앞세워 '기득권이 원하는 주제와 관점'만 강조하는 주류언론은 사실상 '체제 선전도구'일 가능성이 높다.

▲8일 브뤼셀 유럽위원회 본부에서 국제언론단체 관계자들이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약자를 향한 '두려움 없는 풍자'라는 모순

힘이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서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에는 '힘의 비대칭'에 따른 한계가 있어야 한다.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프랑스 내부에서도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계속 내보내겠다는 샤르보니에 편집장의 결정에 대해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르 피가로>는 "어리석은 도발"이라면서 샤르보니에 편집장의 결정을 비판했고, 로랑 파비우스 외교장관은 "선지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동영상 '순진한 무슬림'으로 촉발된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유에스투데이>는 "두려움을 모르고, 도발적인 <샤를리 엡도>는 성역은 없다는 언론자유와 세속주의의 상징으로, 모든 종교를 조롱해온 오랜 전통을 지녔다"면서 "하지만 프랑스는 다양한 인구 구성으로 인종과 종교적 갈등이 커지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샤르보니에는 지난 2012년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무슬림들이 우리 만평들을 보고 웃어넘기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프랑스 법이 지배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 나는 코란 법이 지배하는 곳에서 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처자식도 없고 차도 없다. 좀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성역이 없다'는 이 시사만평주간지의 언론 정신과 그의 '두려움 없는 풍자'가 약자에 대한 공감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지라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는 것이다.

'샤를리 엡도 참사' 이후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추모와 지지의 연대가 서구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추모와 지지의 연대가 '약자를 위한 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