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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왜 <인터뷰> 개봉을 부추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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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왜 <인터뷰> 개봉을 부추겼나?

[정욱식 칼럼] 미국, '북한 악마화' 수순밟기?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저질 코미디 영화 <인터뷰>의 나비 효과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영화 상영 시 보복을 위협했던 북한은 막상 영화가 개봉된 직후 "물리적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사태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그러나 새해 들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추가적인 금융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북한이 소니 해킹의 배후에 있다는 이유를 근거로 들고선 말이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첫 조치"라고 말해 추가적인 조치도 예고하고 있다.

<인터뷰> 및 소니 해킹 사건의 나비 효과가 어디까지 번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런데 두 가지 악재가 한반도 상공을 배회하고 있다. 하나는 미국 의회를 중심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의회가 이러한 법안을 제정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북·미 관계는 가장 험악했던 1기 부시 행정부 시절로 돌아갈 공산이 커진다.

또 하나는 국내 일부 탈북자 단체가 이 영화를 담은 DVD와 USB 메모리를 풍선에 담아 북한으로 보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미국의 인권재단(HRF)으로부터 <인터뷰>가 담긴 DVD 5만 개, USB 5만 개 등 총 10만 개를 제공받기로 했다며, 1월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이 영화를 풍선에 달아 북한에 살포하겠다고 밝혔다. HRF의 홈페이지를 확인해본 결과, 박 대표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대북 삐라 살포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음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 영화 <인터뷰>의 한 장면. 북한으로 김정은 인터뷰를 위해 들어간 주인공(왼쪽)이 김정은과 함께 북한 탱크에 탑승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터뷰> 공식 예고편 갈무리

오바마 행정부, <인터뷰> 상영 독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미국 정부의 태도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2월 10일까지는 소니 해킹과 북한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불과 9일 만에 이러한 입장을 번복하고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이전 칼럼을 통해(☞관련기사 : <더 인터뷰> 뺨치는 미국과 북한의 사이버전쟁)을 통해 소니 영화사 해킹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미국 정부의 발표는 과학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듯, 해커들이 당초 노린 것은 <인터뷰>가 아니라 돈이었다는 점도 관련 자료를 통해 입증한 바 있다(☞관련기사 : 소니 해킹의 목적은 '돈'이었다). 더구나 소니 해킹은 이 회사에서 해고된 내부 관계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미국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의 분석도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또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소니 영화사가 이 영화를 두고 고심하고 있었던 작년 6월 하순,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관여해 영화 상영을 독려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소니 영화사의 <인터뷰> 상영 취소 방침을 두고 12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실수"라고 비난한 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로이터> 통신이 입수해 12월 17일 보도한 이메일부터 살펴보자. 소니 영화사 회장인 마이클 린턴은 소니의 법무 자문관인 니콜 셀리그먼(Nicole Seligman)에게 6월 26일 메일을 보냈다. 미국 국무부의 동아태 담당 차관보인 다니엘 러셀과의 면담 결과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메일에서 린턴은 <인터뷰>가 "미국인들의 안전과 북·미 관계에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고 러셀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러셀은 "북한은 이 영화가 나오든 말든,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북한은 이 영화를 구실로 삼아 미국에 대한 자신들의 불만을 추가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린턴의 메일에 따르면 "러셀은 또한 그 영화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문제는 소니 영화사의 권리"라고 설명하면서 "이것이 북한에 의한 핵 공격을 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매우 확신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 보도가 나가자, 미국 국무부는 린턴과 러셀이 만난 것은 사실이라며 "공개적이든, 사적이든 우리의 메시지는 같다. 우리는 예술가와 영화사가 그들의 선택에 따라 작품을 만들 권리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린턴은 러셀을 만나기에 앞서 '랜드 연구소'의 북한 전문가인 브루스 베넷에게 <인터뷰>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비스트>(Daily Beast)가 12월 17일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메일을 입수해 보도한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본 베넷은 린턴에게 6월 25일 메일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김정은의 암살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북한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영화의 엔딩을 톤 다운시킬 필요는 있겠지만, 김씨 정권의 제거와 북한 사람들에 의한 새로운 정권의 창설에 대한 스토리는 남한 내에서뿐만 아니라 DVD가 북한에 흘러들어 간다면(이건 거의 확실할 것이다) 북한 내에서도 진지한 사고를 불러일으키고 것이라고 믿는다. 이에 따라 개인적으로는 엔딩을 그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베넷은 <인터뷰>의 엔딩을 언급했는데, <데일리 비스트>에 따르면 엔딩은 김정은이 타고 있는 헬리콥터가 전차에서 발사한 포탄에 피격당해 김정은의 머리에 불이 붙어 터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삭제 버전에는 이 장면이 5분 안팎에 걸쳐 상세하게 묘사되었지만, 잔악한 장면에 부담을 느낀 소니 영화사는 이 부분을 대폭 줄였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같은 날 린턴이 베넷에게 보낸 답장이다. "브루스, 내가 국무부의 고위 관료와 (비밀리에) 얘기해봤는데, 그는 당신이 말한 것을 모두 동의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앞선 메일을 보면, 린턴이 말한 '국무부 고위 관료'는 다니엘 러셀 차관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자 베넷은 다음날은 26일 린턴에게 메일을 보내 "몇 분 전에 킹 대사를 만난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그가 말한 킹 대사는 로버트 킹 북한인권 대사였다. 베넷은 "킹 대사의 사무실은 6월 20일 자 북한의 보복 경고는 북한의 전형적인 공갈협박(bullying)이고 이에 따라 후속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판단하고 있다"며 "킹 대사는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고 어떤 결정도 소니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소니 영화사는 당초 <인터뷰> 개봉에 부담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료들, 특히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오히려 영화 개봉을 독려했다. 더구나 <인터뷰>는 영화로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오바마가 12월 17일 전격적으로 쿠바와의 관계정상화 방침을 발표하는 장면을 보고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들었다. '오바마가 뒤늦게 노벨평화상 값어치를 하는구나'와 함께 '북·미 관계가 더 험악해지겠구나'라고 말이다. 적을 필요로 하는 미국 체제의 특성상 쿠바 및 이란과의 관계 개선 시도는 '북한 악마화'를 그 대가로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인터뷰> 및 소니 해킹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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