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부터 현재와 비슷한 형태를 갖춘 독일의 선거제도는 그동안 조금씩 개정되어 왔다. 초반에는 비례대표 비율이 40%일 때도 있었고, 1956년에는 봉쇄조항이 만들어졌다. 의석수 배분방식을 둘러싸고 1983년까지는 동트(D'Hondt)식, 1985~2005년에는 헤어/니이마이어(Hare/Niemeyer)식, 2008년부터는 생-라게/쉐퍼스(Sainte-Laguë/Schepers)식이 적용되어 왔다. 가장 최근의 변경은 2013년 2월 연방선거법 개정인데, 그 주요 내용은 주별 인구수에 따른 의석배분, 최소의석 보장을 위한 조정의석(Ausgleichsmandat)의 도입 등이다.
아래 표들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적용하였을 때 의석수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기존의 생-라게/쉐퍼스 방식을 중심으로 주별 의석배분, 봉쇄조항 등 독일식 산정방식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도입하였다. 19대 결과에서 지역구 당선은 그대로 가져오고, 비례대표를 위한 정당투표를 독일식 정당득표(제2투표)로 전환시켜 적용하였다. 다만 정당들이 현행 전국단위 비례대표(전국구)가 아닌 광역시·도 단위별(권역별)로 후보를 냈다고 가정하였다.
독일식 적용의 결과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적용하여 시뮬레이션 한 최종결과는 <표1>과 같다. 먼저 총 의석수가 300석에서 331석으로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례의석이 54석에서 85석으로 31석 증가하였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권역별 비례대표를 적용하여 다수의 초과의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18석, 민주통합당은 10석의 초과 의석이 나타났다.
독일식을 도입하면 의석이 감소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정당별 의석에서 실제보다 새누리당은 4석, 민주통합당은 1석이 증가하였다. 새누리당은 자유선진당과 연합할 경우(실제로도 그렇게 됐지만) 167석(50.4%)으로 과반을 넘어섰다. 이 결과는 새누리당이 국민들의 여망인 정치개혁에 부응하여 전략적으로 독일식 선거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소수당인 통합진보당과 자유선진당은 예상대로 각각 20석과 6석이 증가하였다.
기존 시뮬레이션들의 결과가 이와 달랐던 가장 큰 이유는 권역의 설정방식이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권역을 시·도 단위로 하지 않고, 예를 들어 인천·경기·강원도를 하나의 권역으로 하는 식으로 1개 권역의 범위를 넓게 잡았다. 그렇게 하면 권역을 광역단위별로 적용할 때보다 초과의석이 감소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거대 양당의 의석수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독일도 16개 주별로 명부를 작성하고 있고, 또 비례대표의 지역대표성, 지방정치의 활성화 등을 고려한다면 권역의 숫자를 무리하게 줄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최소한 현재 17개 광역단위를 굳이 5~6개의 권역으로 묶는 식의 통합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권역의 설정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논의하겠다. <표1>의 결과는 일단 현재 17개 권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독일식 산출방식은 다음 3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에서는 각 정당의 정당득표수로 연방하원의 기준의석을 나누어 정당별 의석수를 결정한다. 2단계에서는 그렇게 결정된 각 정당의 의석수를 권역별(주별)로 배분하는 것이다. 끝으로 3단계에서는 주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석수를 산출, 합산하여 최종의석수를 결정한다.
정당별 의석수 산정
1단계에서는 봉쇄조항을 통과한 각 정당의 전국적 정당득표수(제2투표)를 집계한다. 이 정당들의 득표수를 모두 더하면 유효한 '전체 정당득표수'가 된다. 이를 전체 의석수로 나누면 '의석당 득표수(제수)'가 나온다. 각 정당의 정당득표수를 이 의석당 득표수로 나누면 정당별 의석수가 결정된다. 이러한 계산은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
위에서 계산한 각 정당의 의석수는 유효한 정당득표수의 전체합계 대비 각 정당의 정당득표수의 비율을 계산하여 총 의석수에 곱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비율을 계산할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봉쇄조항을 고려하여 5% 미만 또는 3석 미만 정당들의 정당득표수를 제외하고 전체 정당득표수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2>를 보면 새누리당은 전국적 정당득표로 약 913만 표를 얻어 전체의 42.8%를 기록했지만, 의석수를 계산할 때는 46.1%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봉쇄조항에 걸린 기타 정당들의 153만 표를 제외하고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정당들의 정당득표수 합계는 2180만 표이지만, 여기서 153만 표를 빼면 실제 계산에 유효한 정당득표수의 합계는 약 1980만 표로 줄어든다. 따라서 살아남은 각 정당의 실제 정당득표율은 매번 조금씩 상향조정된다.
이 유효 정당득표수를 전체의석 300석으로 나누면 1석당 약 65,990표(제수)임을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의 913만 표를 이 제수로 나누면 138석이 된다. 이는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 46.1%에 300석을 곱해도 유사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이런 식으로 다른 정당들의 의석수도 결정할 수 있고, 그 합계는 300석이다.
이렇게 산정된 1차 결과(300석)를 19대 총선의 실제결과(300석)와 비교해보면, 새누리당은 14석, 민주통합당은 9석이 감소한 반면, 통합진보당은 20석, 자유선진당은 6석이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독일식을 도입할 경우, 거대 양당은 손해가 확실하다. 하지만 이것이 각 당의 최종의석은 아니다.
각 정당의 권역별 의석수 산정
2단계에서는 1차 결과에서 나온 각 정당의 의석수를 다시 권역별 의석수로 배분한다. 이 권역별 의석수에서 해당 권역의 지역구 당선자를 빼면 그 권역의 비례대표 당선자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의 138석을 시·도 단위로 배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표3>처럼 새누리당의 17개 광역단위별 정당득표수를 파악한다. 새누리당의 전체 정당득표수 913만 표를 자기 당에 할당된 138석으로 나누면 1석당 6만 6164표(제수)를 얻을 수 있다. 시·도별 정당득표수를 이 제수로 나누면 각 시·도의 의석수(배정의석)를 알 수 있다.
이 배정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빼면 비례대표 당선자를 산출할 수 있다. 새누리당의 서울시 배정의석은 29석인데, 여기서 지역구 당선자 16석을 제하면 13명의 비례대표 당선자가 나옴을 알 수 있다. 새누리당 서울시의 최종의석은 원래 배정의석 그대로 29석이다.
그런데 부산시의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정당득표에 의해 12석이 배정되었지만, 지역구 당선자가 16명으로 이미 배정의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경우 비례대표 당선자는 0이고, 초과한 4석은 지역구에서의 당선을 존중하여 그대로 의석으로 인정한다(초과의석). 따라서 새누리당 부산시의 최종의석은 배정의석 12석보다 4석이 늘어난 16석이 된다.
<표3>에서 서울시와 경기도를 보면, 정당득표에 의한 배정의석에 비하여 지역구 당선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음을 알 수 있다. 비례대표가 없다면 과소 대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식을 도입하면 이 지역들에서는 그 지지도를 감안할 때 최소 23석은 늘어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일부지역에서는 과대 대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과의석 18석이 그 증거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의 최종의석은 원래 배정되었던 138석보다 18석이 늘어난 156석이 된다. 이는 실제 152석보다도 4석이나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똑같이 민주통합당에 적용하면 <표4>의 결과를 얻게 된다. 먼저 새누리당과 반대로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약간의 초과의석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호남지역에서는 의외로 초과의석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2석).
영남지역의 의석수는 실제로는 3석에 불과했지만, 독일식 제도를 도입할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17석이 늘어나게 된다. 부산, 울산, 경남에서 12석, 대구와 경북에서 5석의 당선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힘입어 전체 의석수는 128석으로 실제 결과인 127석보다 1석이 늘어난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전체적으로 의석수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으면서, 특히 영남지역에서 약진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일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같이 독일식 제도를 도입할 경우, 소규모 정당들의 국회진입이 수월해질 것이다. 이는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제도권 진입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사회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승자독식을 방지하고 지역주의 현상을 완화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장점도 있다.
다만 초과의석이 발생함에 따라 총 의석수가 원래 의석수보다 늘어나는 점은 감수해야 한다. 이는 불가피한 것이고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새누리당이 이 제도를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시급한 개혁대상을 꼽으라면 보통 국회나 정치권이 빠지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의원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경우에 따라 세비를 삭감하고 특권을 내려놓고 혁신하겠다고 다짐한다. 다음 편에서는 과연 의원수를 축소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또 의원급여의 수준이 적정한 것인지 독일의 경우와 비교하여 살펴보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