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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꿈의 학기',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민들레] 자유학기제, 중학생들의 쉴 틈이 될 수 있을까

자유학기제의 원형, 아일랜드를 가다

요즘 아이들에게 '여유'라는 단어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에 내몰린다. 남들 눈치 보면서 남부럽지 않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도 경쟁한다. 한글도 익히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 세계화 시대라는 이유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중학교 한 학기 동안 시험을 없애고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꿈과 끼를 찾아가게 하자는 취지로, 2016년부터 전면 도입될 '자유학기제'(교사 스스로 교과 진도를 정할 수 있고, 강의식 수업에서 벗어나 토론, 실습, 프로젝트 수업 등 학생 참여형으로 개선된다)마저도 이런 경쟁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어른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의지가 아이들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유학기제 기간에는 핵심적인 성취기준만 도달하면 되기 때문에 교사에게 자율성이 상당히 보장된다.

지난 1년 동안 자유학기제를 취재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에는 학부모도 있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부모는 자유학기제를 통해서 엎드려 있던 아이들이 깨어나 활기차게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런데 분명 자유학기제가 주는 놀라운 변화가 있지만, 본인은 여전히 자녀를 학원에 보낸다고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도 같을 것이다.

자유학기제의 가장 큰 특징은 시험이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체험을 해볼 기회가 주어지지만, 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여유로워진 시간을 통해 다른 효과를 얻으려는 부모가 생겨나기도 한다. 강원도 정선에서 만난 한 학생도 자유학기제를 통해 여유를 얻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시험을 안 보니까 앞으로의 성적이 걱정된다고 했다. 시험을 볼 기회가 없으니까 불안한 모양이다.


자유학기제의 원조인 '전환학년제'를 취재하기 위해 40여 년간 이를 시행해온 아일랜드에 다녀왔다. 아일랜드 사회는 한국과 유사하다.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입시학원이 존재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사회다. 이웃한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IMF 위기를 경험한 것까지도 비슷하다.

땅은 메말랐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만 했다. 입신양명의 유일한 길이 바로 공부였고,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길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아이들은 경쟁에 내몰려야 했고,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위해 밤을 새워야만 했다.

학교 폭력이 심각해지고, 왕따 같은 사회문제가 나타나자 1974년에 아일랜드 정부는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만 15세의 나이에 1년간 갭이어(gap year) 성격의 전환학년제를 도입했다. 전환학년제는 아일랜드 교사 출신이자 교육부 장관이던 리처드 버크(Richard Burke)가 학교 교육이 시험을 위한 지식습득에 몰두하고 사회와 유리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제안한 프로그램으로, 만 15세 아이들에게 1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오전에 최소한의 핵심 교과만 하고, 나머지는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선물하는 것이다. 아일랜드 사회는 이를 통해 학생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학교가 사회와 유리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에서는 학생 스스로 그 학교에서 진행하는 대형 프로젝트, 이를테면 뮤지컬 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고,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기업이나 대학에서 자발적으로 학생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면 학생들이 지원서를 내고 참여하기도 한다.

쉬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자신의 능동적 선택으로 달려가는 시기가 되기도 한다. 교사는 조언자가 될 뿐, 체험할 곳을 섭외하고 지원서를 내는 일은 모두 학생들 스스로 해야 한다. 40여 년의 경험이 말해주듯 아일랜드 사회는 아이들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미 전환학년제를 경험한 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은 전환학년제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의 사회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지역과 함께하는 자유학기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바로 문과냐 이과냐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만난 교사의 말이다. 사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선택의 기회를 빼앗았다. 자유학기제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동아리, 교사나 학교가 만든 프로그램의 참여 여부 정도다. 자유학기제라지만 진정한 자유가 보이지 않는다. 아일랜드의 경우에는 전환학년제 참여 자체도 학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직업체험의 경우에도 1년에 2주간 두 번씩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학생 스스로 이력서를 써서 체험할 곳을 섭외한다.

'위대한 성취'를 의미하는 청소년 도전 성취 프로그램 '가시카'(www.gaisce.org)와 '어린사회사업가'라는 뜻의 '영소셜이노베이터스'(www.youngsocialinnovators.ie)가 대표적인 선택형 프로그램이다. 영소셜이노베이터스는 팀별로 활동해야 하며 왕따, 노숙인, 기아, 국제 난민 등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청소년들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행동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1년에 한 번 한자리에 모여서 성과를 나누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는 아일랜드 총리가 직접 참석해 학생들을 격려한다. 두 프로그램 모두 대대적인 국가적 관심과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지만 학생들의 강제 참여는 없다. 원하는 학생이 홈페이지를 통해 스스로 신청하면 된다.

학교나 교사의 편의로 기획된 체험 프로그램은 한계가 있다. 학생들이 선택할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자유학기제는 성공할 수 없다. 전환학년제를 꾸준히 연구해온 제리 제퍼스 국립아일랜드대 교수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데 가장 큰 제한은 바로 교사들의 상상력"이라면서 아이를 어른의 생각에 가두지 말라고 강조했다. 1년 동안 기획 취재를 하면서 여전히 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다. 사실 자유학기제를 위해 기업과 대학 등 지역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방안을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유학기제는 학교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체험을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의 소통이 필요한데, 특히 기업은 주목적이 이익 창출이다 보니 수익과 관계없어 보이는 학생의 성장과 교육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이에 대해 최상덕 한국교육개발원 자유학기제지원센터 소장은 기업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학생들의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기업도 사람이 모여 이뤄진 곳이고,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키워내는 데 투입되는 재원은 낭비가 아니라 더 효과적인 투자라는 것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지역사회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전환학년제 기간에 이뤄낸 성과를 나누는 장을 마련하고 있었다. 성취가 크건 작건 그 상황을 꼭 지역사회와 나눈다. 예를 들어 사진 수업을 진행했다면 결과물을 활용해 전시회를 열고, 그 자리에 지역사회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진관 주인도 초대하고, 그 지역 의원도 초대한다. 그러면 지역사회는 학교가 무엇을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조금씩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방문했던 킹스허스피탈이나 스툰파크스쿨, 말라하이드커뮤니티스쿨의 경우 뮤지컬, 드라마, 다큐멘터리 제작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공연이나 상영회를 통해 가족은 물론 지역 정치인, 후원 기업인들을 초대해 전환학년제 기간의 성과를 나눈다. 우리도 사회를 교육의 장으로 넓히려면 자유학기제 동안의 성과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 단위가 힘들다면 권역별로 학교가 연합하거나, 국가적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의 상황을 보면 자유학기제가 정착되더라도 강의식 수업에서 벗어나 토론하고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얻었던 경험들은 아이들에게 한순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자유학기제를 마친 학생들은 또 시험을 봐야 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며, 대학에도 진학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 관문마다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2016년 자유학기제가 전면 도입되고 이를 경험한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2019년의 고입제도, 더 나아가 2022년 대학입시에서는 자유학기제의 경험이 이어지게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 2013년 12월 열린 '자유학기제 성과발표회'에서 서울 수서중학교의 한 관계자가 학샐들의 미래 소망을 담은 '소망 나무'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서 자유학기제가 성공하려면

취재 중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은 아일랜드에서 만난 일부 학부모도 한국의 부모와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아이들을 놀리면 되겠느냐고 걱정스러운 시각을 보였다.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가 아이들에게 쉼의 기간이 되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찾게 하는 기간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경쟁이 사라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아일랜드에서도 흔히 사람들이 원하는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일류대학에 입학해야 하는데, 대입 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어야 한다. 이렇듯 40여 년의 시간 속에서도 전환학년제를 통한 아일랜드의 교육개혁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심지어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1년 동안의 취재를 통해 전환학년제의 성공 열쇠는 시간이 주는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일랜드에서 만난 한국인 목헌(트리니티대학 화학과 교수)도 한국에서 자유학기제가 성공하려면 그 기간에 사교육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자기 시간을 갖게 해줘야 하는데, 과외가 성행한다면 결코 학생들의 잠재력을 깨울 수 없다면서, 고등학교 과목을 선행학습 하려는 학부모에게는 이 기간이 '꿈의 학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자기와 만날 시간을 갖게 해줘야 한다'는 그의 조언은 어찌 보면 청소년기에 필요한 진정한 쉼을 부모가 빼앗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일랜드에서는 이미 전환학년제를 긍정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사회에 진출했고, 성인이 된 그들이 더 나은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어 아이들의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그 힘은 바로 경험에서 나온다. 우리도 자유학기제에서 좋은 경험을 쌓은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둔다면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자유학기제는 다소 느리더라도 학생 스스로 그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기간이 돼야 한다. 결국 쉴 틈이라는 건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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