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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 엎드리려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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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 엎드리려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그들

[기고] 쌍용차 해고노동자 굴뚝 농성 현장 방문기

김정은 조합원은 프레시안 조합원이자 녹색당 당원입니다. 김 조합원은 2014년 올 한 해 무척 바빴습니다. 밀양 할머니들의 생명을 건 송전탑 반대 투쟁에 함께했고, 300여 명의 목숨이 사그라진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운동에도 동참했습니다. 누군가 고통받고 신음을 흘리는 현장을 찾아 연대의 미덕을 발휘했습니다. 아리따운 외모만큼이나 타인의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김 조합원. 그래서 2030 조합원 사이에서 그는 '녹색당 여신'으로 통합니다. '녹색당 여신'이 최근 밟은 고통의 땅은 경기도 평택입니다. 추운 겨울, 김 조합원이 70미터 굴뚝 위에 올라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훈훈한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편집자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떴던 지난 25일, 녹색당에서는 쌍용차의 굴뚝에서 고공 농성 중인 해고자 두 분과 연대하기 위한 평택 공장 방문을 기획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이후 내내 무거웠던 마음을 덜어내고자 나는 이 연대 방문에 기꺼이 동참했다.

판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 당원과 영화 <카트>를 관람했었다. 부당 해고-파업-천막농성-경찰의 폭력 진압을 보여주는 화면이 차례로 이어지자 밀양, 청도, 쌍용차, 용산 참사 현장이 미친 듯이 겹쳐져보였고, 나는 <카트>가 더 이상 영화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저리도 같은 패턴일까' 하면서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그 날 당장 평택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렀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2월 25일에야 방문하게 되었다.

당일, 출발하기 전에 프레시안 조합원들에게 혹시 연대할 사람이 있는지 무심코 던져봤다. 그런 내 말에 안종길, 오지은 그리고 정혁 조합원은 흔쾌히 응해주면서, '제안해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게 프레시안 조합원들과 녹색당원들은 함께 평택으로 향했다.

ⓒ프레시안 김정은 조합원

우리가 평택에 도착했을 때에는 며칠 전까지 지속되었던 지독한 추위는 없었고 비교적 따스하게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남은 당원들을 기다리기 위해 사무실에서 대기했다.

지난달 13일 대법원의 쌍용차 정리해고 적법 판결은 쌍용차 해고자들에게는 사실상 자살을 명령한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들에게는 세 가지 경우의 수가 남았었다. 포기하느냐, 죽느냐, 회사에 투쟁하느냐 중 어떤 판단을 내려도 잔인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26번째 사망자가 발생했고, 같은 날 이창근 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굴뚝으로 올라가 그들의 의지를 보여줬다. 그로부터 13일이 흘렀다. 2주가 조금 안 되는 기간이지만, 굴뚝에 올라선 그들에겐 1년과도 같은 시간이 아닐까.

ⓒ프레시안
ⓒ프레시안

기다리던 나머지 당원들이 도착하여 우리는 다같이 평택 공장 남문으로 이동했다. 경찰차 몇 대가 쭉 늘어서 있고 철조망 너머로 2개의 굴뚝이 보였다. 유해가스가 포함된 연기가 나온다는 오른쪽 굴뚝에 그들이 서 있었다. 영하 10도에는 칼바람이 불 경우 체감 온도가 거의 20도로 느껴진다는 그곳. 너무 먼 거리여서 머리만 겨우 보일 정도의 거리였는데도 그들이 우리를 향해 외치는 소리는 너무나 또렷이 들려왔다. 제대로 끼니도 못 챙겨 먹고 난방도 안 되는 곳에서, 또 차가운 음식을 먹으며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벌이는 사람의 목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그래서 더 슬펐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다 아는데. 그들이 강한 인간이 아니라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올라갔다는 것을. 세상에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찢겨지는 옷을 추스를 새도 없이 얼마나 급박하게 어떤 마음으로 굴뚝을 올랐는지를…. 굴뚝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굴뚝 농성 후 3일 차까지는 노조원들도 굴뚝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사측은 그 이후로는 출입을 불허했다. 믿을 수 있는 노조원들이 직접 굴뚝으로 식사를 올려주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노조원들은 사측에서 식사를 올려주다 보니 올라가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길 수가 있다며 불안해했고, 식사를 올릴 수 있도록 계속 요구 중이라고 했다. 방문 전날인 24일 각 언론은 회사가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노조와 협상하겠다는 식으로 보도했으나, 사실은 농성자들이 굴뚝에서 일단 내려와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고 했다. 해결 방안이 먼저 나오고 협상을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게 순서인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전제 조건을 단다는 것은 협상을 안 하겠다는 것과 같고 언론플레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조원들은 더 이상 동지들을 잃을 수 없고 명예 회복과 함께 당당하게 승리하여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며 공장 앞에서 이를 끝낼 것이라고 했다.

농성자들이 끼니조차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현실. 영혼 없는 협상 제의. 농성 13일간 뭐 하나 제대로 진전된 것은 없는 상황이었다. 뭐가 그리 복잡한 것일까. 농성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함께 살자는 것이다. 회사가 경영 위기를 맞았다면 잘못된 점과 책임 소재를 밝혀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경영상 필요에 의해 해고를 한 것이 아니다. 분사, 외주화 및 대량해고를 통해 노조를 억누르고 쌍용차를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우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 이는 비단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 유연화란 이름으로 저임금과 계약해지로 손쉽게 통제되고 있으니 이들은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있는 힘껏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굴뚝 농성 중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과 화상 전화로 이야기하는 모습. ⓒ프레시안
ⓒ프레시안

화상 전화를 통해 그들이 무사함을 확인했고, 우리는 각자 연대의 메시지와 함께 녹색당원 이송님이 정성 들여 만드신 플래카드 문구를 펼쳐 보였다. 이 순간 휴대폰이라는 차가운 기계는 따스한 온기를 뿜어내는 작은 우주인 양 그렇게 숨 쉬고 있었다.

고공 농성 지지 방문을 마치고 모두 뒤풀이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앞자리에는 해고자의 가족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그늘이 없어 보이고 화목해 보이는 솔비네 가족이 있었다. 솔비 어머님은 너무나도 진심이 묻어나는 표정과 눈빛으로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고 아버님은 고기를 구워주시며 말없이 앉아있는 나와 지은 씨를 챙겨주셨다. 솔비는 연신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친근감을 드러냈다. 키우는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고 마늘을 먹는 나를 보며 "엄마! 언니도 마늘 먹는데 왜 엄마는 마늘을 안 먹어!" 라며 핀잔을 주기도 하는 보통의 9살짜리 여자 아이였다. 솔비 아버님이 파업 이후로 몸무게가 10kg 정도 감량되고 파업 때 하루라도 맞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으며, 어머님은 옥쇄 파업 때 4살밖에 안 되는 솔비를 업고 공장 옥상 해고자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온갖 고생을 하셨고, 이제 9살인 솔비는 아빠에게 줄어든 근육량을 늘려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솔비네 가족은 그런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그들은 더욱 돈독해지고 서로를 믿고 지지하게 된 동지 같은 느낌이었다.

ⓒ프레시안


박노해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6년간 해고자로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투쟁하는 것, 어떤 형태로든 끊임없이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해주는 것. 어느 하나 대단하고 위대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작은 행위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이 행위들이 결실을 맺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함께 끝까지 간다는 것은 실로 위대한 일이다. 그 위대함으로 쌍용차 해고자들이 복직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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