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두 손으로 잡고 머리 위까지 올렸다가 바닥에 내팽개친다. 총 여섯 차례 같은 행위를 했다. 폐쇄회로(CCTV) 화면에 그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CCTV가 설치된 곳 아래로 아이를 데리고 가서 한 행동이었다. 또 다른 아이도 같은 폭행을 한 차례 당했다. 그날만 그 교사는 총 일곱 차례 아이들을 바닥에 내던진 것이다.
지난 17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개된 CCTV 영상을 우연히 보고는, '보지 말 걸 그랬다'는 즉각적인 후회와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47세나 되는 보육 교사는 "낮잠 시간인데 잠을 안 자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그 얘기 역시 접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진실'이 언제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17년간 어린이집을 운영한 이은경 원장이 낸 책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북오션, 2014년 11월 펴냄)도 그랬다. 50가지 이야기 중에 10가지 이야기도 채 읽지 않았는데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곧바로 책장을 덮고 책상 한구석으로 책을 치워버린 뒤,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안다고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어린이집 폭행 사건을 다루는 언론 보도를 외면하고픈 것과 꼭 같은 마음이다.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아닐 거야, 나와 아침저녁 인사하는 교사는 폭행을 휘두를 사람이 아니야'라고 믿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외면은 사실 자기최면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최면을 완전하게 깨트린다. 그것도 모두 저자인 이은경 원장이 직접 보고 들은 '실화'란다.
"우는 소리 나가면 안 돼", 우는 아이 입에 가제 수건 쑤셔 넣는 원장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다 결국 어린이집 교사를 그만둔 교사가 이은경 원장에게 털어놓은 얘기다. 이 교사는 원장이 "우는 아이를 빈방에 가두고 20∼30분씩 방치"하거나 우유를 먹기 싫다는 아이의 "입에다 흰 우유를 들이붓는" 것도 봤다고 했다.
사실 어린이집 폭행 사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의 한구석을 차지한다. 12월에만 해도 인천 어린이집 이전에 고양, 여수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알려졌다. 11월에는 부천의 한 어린이집 교사가 현장 학습에서 아이들에게 벌레를 강제로 먹이려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에 신고된 어린이집 아동 학대 현황을 보면 2009년 67건에서 2010년 100건, 2011년 159건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은경 원장은 알려지지 않은 학대는 더 많다고 얘기한다.
보통 영유아 학대라고 하면 온몸에 멍이 들고 피를 쏟아야 언론을 통해 드러나고 그제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건 학대에 대해 너무도 관대한 범위다. 어린이집 안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학대는 언론에서 다루지도 않는다.
30센티 자를 세워서 영유아 머리를 내려치거나 수건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얼굴을 때리는 일도 서슴지 않고 일어난다. 육중한 어른 손으로 뺨을 때리거나 하는 행위는 안 했다고 하면 끝이다. 멍이 들어 표가 나는 것도 아니고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다 짜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면, 영유아가 어린이집 가기 싫어서 "어린이집에서 때려요"라고 거짓말하는 거라고 하면 밝혀낼 도리가 없다. 아이가 낮잠 자기 싫다고 하면 원장이 소리를 지르고 그래도 안 잔다고 하면 때리는 일도 허다한 일이다. 아직 모든 면에서 움직임이 미숙한 영유아를 어른이 밀쳐 보육실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어린이집 보육실에 CCTV 설치가 보편화되어도, 이런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국공립 어린이집이라고 다르지 않다. 언론에 보도가 되면 당장이라도 어린이집이 문을 닫을 듯 난리가 나지만, 막상 처벌 수위는 약하다. 백기종 전 수서경찰서 강력팀장은 지난 23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가해 교사가 기소돼도) 집행유예를 받거나, (해당 어린이집은) 시설 보수나 교육을 더 잘 시키라는 경고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썩은 달걀'은 없어도 닭 한 마리로 90명분 삼계탕을 끓인다
사실 물리적 폭력은 덜 성숙한 일부 보육 교사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일상적인 비리와 그 비리를 낳는 구조적 문제일지 모른다. 이은경 원장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직한 어린이집'은 없다"고 했다.
물리적 폭력만큼이나 아이 부모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바로 먹거리다. 파프리카 2개로 80명에게 나눠주고, 사과 한 개를 얇게 썰어 한 반의 모든 아이에게 먹이고, 냉동실에 너무 오래 둬 곰팡이가 핀 송편을 씻어 다시 쪄 주고, 닭 한 마리로 끓인 삼계탕으로 90명을 먹이는 어린이집을 상상할 수 있을까? 세상에 알려진 '썩은 달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린이집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제공하지 않는 것은 일상이란 얘기다.
주방에서 받아 온 밥은 성인 남자 2명이 먹으면 딱 맞는 분량이었다. 20명의 아이들에게 병아리 모이 주듯 밥을 나눠 주니 밥은 이내 텅텅 비었다. 비엔나소시지는 한 개를 3등분한 것으로 20명의 아이들에게 3조각씩 나누어 주니 딱 6조각이 남았다. (그날 2명이 결석했으니 아이 한 명당 비엔나소시지 3조각, 즉 하나가 돌아간 것이다.) 교사는 더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한 쪽씩 나눠 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리고 잘게 썬 김치 조금, 김, 그리고 아무리 봐도 소고기는 보이지 않는 소고기무국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식단표에 있는 브로콜리는 빠져 있었다. 당일 시세가 너무 비싸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이은경 원장은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닭 한 마리로 '90명용 삼계탕'을 만들어 먹인 재주 많은(?), 양심 불량 원장 한 사람의 인격적 결함으로 치부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낙관적인 믿음과 무관심이 어린이집의 급식 비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종의 '내부 고발'과 같은 책을 쓴 것도 그래서다.
"현금으로 받는 특별활동비, 원장들 '목숨값'이다"
먹을거리로 장난을 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다. 수입은 일정하니, 비용을 줄여 수익을 남기고픈 이유일 것이라는 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성장하는 아이들의 먹을거리로도 '장난'을 치니, 다른 곳에서는 더할 것이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은경 원장은 법이 정한 보육료 외에 학부모가 부담하는 입학금, 연간 교재비, 원복비, 특별활동비, 현장 체험비 등이 비리의 온상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이 원장은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비는 원장들 '목숨값'"이라고까지 했다. 부모들에게 받는 특별활동비 가운데 실제 그 강사나 업체에 지급하는 돈은 절반이 채 안되고, 나머지는 원장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가령 100인 규모 어린이집에서 아이당 평균 3가지 특별활동을 하고 특별활동비로 5만 원을 지급한다면, 원장은 특별활동비로 월 500만 원을 받지만 실제 지급하는 비용은 45∼60만 원에 불과한데, 이런 사실을 학부모는 모른다.
원장들은 왜 이런 일을 할까? 2014년 '보육 사업 안내'에 따르면, 원장이 가져갈 수 있는 월급은 178만3320원으로 정해져 있다. 200만 원이 채 안 된다. "사회복지법인이고 민간이고 간에 어린이집 원장은 본인의 급여 말고는 더 가져갈 수 있는 게 없다"지만, 법이 정한 월급이 너무 비현실적인 건 아닐까.
게다가 민간 어린이집은 사실 본인의 재산을 털어 시설 등을 만든다. 땅을 사 건물을 짓든 집을 사거나 전세로 얻든 그 비용 부담은 개인 몫이다. 인테리어 비용 역시 마찬가지다. 국공립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이 초기 비용이 워낙 크다 보니 대부분은 대출을 받는다. 그런데 법에는 어린이집 운영비로 대출금에 대한 이자만 갚을 수 있고 원금은 상환하지 못하도록 해 놨다. 결국 200만 원이 안 되는 원장의 월급에서 대출금 원금을 갚으란 얘긴데,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대출을 많이 받은 어린이집일수록 특별활동 과목 수가 많은" 까닭이다. 특별활동비만 '장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나 조리사를 허위로 등록하고 인건비를 떼먹거나, 어린이집 운영비로 자녀 노트북을 사주는 등의 방식으로 생활비를 줄이는 원장들도 있단다. 말 그대로 비리 천태만상이다.
처참한 어린이집 비리 천태만상, 정부도 우리도 공범이다
안 그런 곳이 없다니, 그쯤 되면 개인만이 아니라 "사유재산을 '비영리'로 운영하라는 제도적 모순"의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이 원장은 "필요성 경비는 원장들의 편법화된 생활비 몫이기 때문에 관공서는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지도 점검을 하는 공무원들은 그걸 약점으로 삼을 뿐 고칠 의지는 없다"고 말한다. 보육료는 어느 어린이집을 다니든 같은 보육 포털에서 카드로 결제하는데, 특별활동비 등은 왜 정부가 통합해서 관리하지 않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그러다 문제가 되면, 그때서야 조사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리고는 마치 몰랐다는 듯이, 어린이집들의 비리나 횡령이 수십억에 이른다고 발표하면 그만이다.
문제 어린이집도 그 순간만 참고 견디면 그만이다. 2011년 썩은 달걀을 아이 간식으로 준 사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린이집은 "지금도 여전히 운영 중"이다. 특별활동비를 빼돌리다 걸려도, 아이 폭행 사실이 알려져도, 먹거리로 장난을 친 사실이 발각돼도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일은 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분노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는 문제가 생기면 그 어린이집을 권리금 받고 판 뒤, 다른 곳에서 새로 어린이집을 사거나 여는 경우도 있단다.
그런데 대체 왜 어린이집이 어떤 개인의 '생계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심지어는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처럼 취급되는 것일까? 약 4만5000여 곳에 이르는 어린이집 가운데 구립이나 시립 어린이집은 고작 3000여 곳이다. 6퍼센트 수준이다. 나머지는 전부 "서류로만 국가 목적 사업을 수행하는 허울뿐인 어린이집"이다. 보육이 '국가 목적 사업'이라면, 국가가 어린이집을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면 간단히 해결될 일 아닌가?
책장을 덮으며 어쩌면 나 역시 공범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국가가 아이의 보육을 책임지도록 만들지 못한 책임. 선거 때면 기본 안주처럼 등장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 현실이 되지 못한 책임을 '말 바꾸는 정치인' 몇몇에게만 떠넘기기에는, 현실이 너무 처참했다. 알고 싶지 않다고, 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자기최면으로 버티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가엽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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