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공장에서 일하던 성준호(41) 씨는 지난 9월 일하다 화상을 입었다. 병원에서 석 달째 치료를 받은 그는 아직 퇴원을 못 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산재가 불승인돼 병원비를 못 내서다. 일하다 다쳤는데, 치료받으면서 산재 승인을 요구하는 준비까지 해야 한다.
"다른 외상도 아니고. 만약에 골절이라면 뼈가 붙고 완쾌한 뒤 다시 일하면 되는데, 화상은 평생 가잖아요. 근데 이렇게, 하…. 산재도 안 되고. 그럼 병원비 부담은 어떡해요."
아는 사람 소개로 8~9명 규모의 영세 구두 공장에 취직했던 성 씨가 사고를 당한 때는 지난 9월 15일이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출근해서 구두에 화학물질을 칠하고 열 드라이기로 구두 표면을 말리는 일을 했다. 그러다 열 드라이기가 톨루엔이라는 화학물질이 담긴 통에 떨어져 불이 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 전신 25퍼센트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특히 손을 심하게 다쳤다.
연락 끊긴 회사
회사 쪽에서는 처음에는 공상 처리를 하자고 했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화상을 입으면 후유증이 심하고 병원비도 많이 나오는 데다, 언제 재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산재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후로 회사 쪽과 연락이 끊겼다.
"해고된 거나 마찬가지죠. 제 후임을 구해서 벌써 일이 돌아가고 있대요. 처음엔 '치료비를 대줄 테니까 나으면 다시 일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병원비가 많이 나오고 제가 산재 이야기도 꺼내고 하니, 등을 돌린 거예요."
성 씨는 지난 9월 30일 산재를 신청했다. 9월 치료비만 1900만 원이 나왔다. '주소지 불분명'으로 건강보험이 말소됐던 탓에,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에 11월에 건강보험도 다시 살려놨지만, 그간 생긴 병원비는 건강보험 적용이 소급되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답을 들었다.
믿을 건 산재 인정밖에 없었다. 11월이 되자 병원비는 이미 3000만 원 가까이 쌓이고 있었다.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가 아니래요"
지난 19일 근로복지공단에서 답이 왔다. 불승인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였다. '일하다 다쳤는데 왜?'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는 성 씨가 기본급 없이 구두 한 켤레당 600원~800원을 받기로 했고, 회사에서 각종 수당·상여금·휴가비를 받은 사실이 없으며, 회사의 취업규칙·복무규정·인사규정을 적용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성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봤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20년 넘게 구두 만드는 일을 해오면서 여러 공장을 거쳤지만, 자신이 직원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치기 직전에 그는 공장에서 주 6일간 거의 매일 출근해 하루 평균 10시간씩 일했다. 회사가 지급한 자재로 공장에 출근해 제품을 만들었다. 비록 화학약품에 녹아버려서 쓰지는 못하고 맨손으로 작업하기는 했지만, 회사에서 비닐장갑을 제공받기도 했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이사님'한테 불려가서 혼나기도 했다. 사업주의 노무 관리 아래 있었으므로 자신은 '근로자'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게다가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던 다른 환자들도 산재를 인정받는 것을 본 터였다. 근로복지공단 다른 지역 지사의 산재 심의 결과 자료를 보면, 성 씨와 마찬가지로 구두 공장에서 한 켤레당 2800원을 받고 일했다가 화상을 입은 한 노동자가 산재를 승인받은 바 있다.
산재 승인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청구인이 팀장 소개로 사업주의 면담을 통해 채용된 점, 켤레당 2800원을 지급받기로 하고 팀장이 노무 관리를 한 점, 사업주가 기계와 자재, 작업 장소를 제공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청구인은 근로자로 판단된다"고 판정했었다. 모든 작업 환경이 성 씨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성 씨는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 논리대로라면, 성남이나 경기도 광주에서 건당 돈을 받으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수백, 수천 명이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가 된다"고 토로했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하긴 했어요. 저 하나를 승인해주면, (지역 공단 쪽에 미칠) 파급 효과가 크다고요." 성 씨처럼 산재를 거절당할 처지에 놓인 공장 노동자들이 더 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음의 병
성 씨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피부 이식을 받은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돼서 압박 장갑을 껴야 하고, 다친 손으로는 제대로 주먹을 쥘 수도 없는 상태다. 산재보험 급여로 받을 수 있는 재활 치료도 못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밀린 방세와 끊긴 휴대전화 때문에 억지로 퇴원해 일이라도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일하기 무리라는 건 아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한참 말이 없던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이 또한 지나가겠죠."
화상환자 자조모임 '해바라기' 오찬일 회장의 생각은 다르다.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한 마음에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더 크게 다친 사람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는 "산재로 다친 사람들은 요양 급여를 받으면서 재활병원에서 재활 훈련을 받고, 현직에 복귀할 때까지 충분한 회복기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몸이 아픈 것도, 직장을 잃은 것도, 믿었던 산재 때문에 마음 졸이는 것도, 쌓여가는 병원비도 다 걱정이지만, 성 씨는 자신을 버린 회사 때문에 생긴 마음의 병도 크다고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회사에서 제 연락을 안 받는 순간부터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 같아요. 잠도 잘 못 자고. 몸의 외상은 나아가도 마음의 병은 깊어지는 거죠."
"회사 근로 감독받았다면 실질적 근로관계"
성 씨가 일했던 구두 공장의 이사는 "성 씨는 도급으로 일해서 산재가 안 된 것으로 안다. 계약서는 체결하지 않았다. (산재 문제 등) 사실관계는 본인에게 물어보라"고 답한 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 관계자는 "도급 형식으로 건당 단가대로 돈을 받고 구두를 만드는 '객공'은 행정 해석상 근로자로 보지 않는다"며 성 씨를 "개별 사업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 씨와 비슷한 다른 환자가 산재를 승인받은 데 대해서는 "매뉴얼대로 불승인한 것들이 개별 사례에 따라 재심사를 통해 산재로 승인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소속 류하경 변호사는 "근로자성은 형식적인 자료뿐 아니라 실질적인 근로관계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성 씨가 회사의 지휘명령을 받고, 근로 감독을 받고, 업무 보고를 했다면 사업주와 실질적 근로관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재심사 청구를 할 계획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성 씨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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