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차라리 내가 대신 다쳤으면…'
9살 우성이 엄마 엄경자(39) 씨는 매일같이 생각한다. '내가 그날 아이들만 두고 집에서 혼자 나오지 않았다면, 라이터를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었다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을 때는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엄 씨는 2011년 1월 그날을 잊지 못한다. 엄 씨가 짐을 가지러 잠시 집 밖에 나간 사이, 우성이는 여동생과 라이터로 장난을 쳤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우성이 옷에 불이 옮겨 붙었다.
엄 씨가 짐을 챙기는 사이 집 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계단에서 불타면서 내려오는 애가 설마 우리 애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그는 미친 듯이 우성이의 옷을 잡아당겼다. 불똥이 뚝 떨어졌다. 우성이는 전신 40%에 3도 화상을 입었다.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식간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사고 당시 임신 6개월째였던 엄 씨는 부른 배를 안고 부산에 있는 베스티안 화상 전문 병원으로 아들을 옮겼다. 병원에 가니 아들의 얼굴과 온몸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살은 다 탔고, 뼈와 피만 보였다. 붕대에 감긴 우성이가 말했다. "엄마, 집에 가자. 괜찮아요. 나 집에 가고 싶어." 그런 우성이를 뒤로 하고 의료진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우성이는 피부를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이어 8개월간의 길고 긴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빚이 수천만 원대로 늘었다. 근근이 살던 우성이 가족은 순식간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애어른' 된 우성이
임신 중이었던 엄 씨는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막내 우진이(3)를 낳았다. 병원의 재롱둥이였던 우진이는 첫 돌도 병원에서 맞았다.
시간이 흘러 우성이도 의식이 돌아오고 차츰 몸도 회복됐다. 여러 차례 수술 끝에 살이 녹아서 몸에 붙었던 양팔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됐고, 목에 붙었던 턱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대신, 우성이는 '애어른'이 돼 있었다.
"5살 때 자기가 하는 말이 그래요. '나는 죽기 싫었다. 엄마하고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나는 엄마하고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몸부림쳤다. 그래서 살았다.' 그러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 심장이 뭐라 해야 하나."
"엄마만 있으면 돼"
그렇게 우성이는 지난 3년간 10여 차례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온몸에 물집이 꽉 차 있어 조금만 부딪히면 터지고 고름과 핏물이 올라온다. 고름을 짜고 약을 발라야 하는데도, 어린 우성이는 한 번도 짜증내거나 투정 부린 적이 없다. 엄 씨는 그런 우성이가 기특하면서도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다른 (화상 입은) 애들은 거울로 자기 몸도 보기 싫어하기도 하는데, 얘는 안 그렇더라고요. 자기 몸을 사랑스러운 몸처럼 여겨요. 우성이는 수술하러 병원에 갈 때도 울지 않았어요. '엄마만 있으면 돼, 엄마만 있으면 참을 수 있어.' 그래요."
동생의 실어증
우성이도 상처를 입었지만, 가족들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남았다. 사고 당시 오빠가 다친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한 우성이의 여동생 하람이(7)는 실어증을 겪어 학교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성이는 그런 하람이에게 "말을 안 하면 내가 안 해야 하는데 왜 네가 안 하노"라고 한마디 한다. 동생들을 끔찍이 돌보는 우성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우진이만 방긋방긋 웃는다.
아이가 아프니, 부모도 지쳐갔다. 엄 씨 자신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초반 몇 개월간은 어쩌다 잠깐 잠들어도 자꾸 불타는 꿈을 꿨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아이에게 약을 발라줄 때마다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부모 입장이라면 누구나 그럴 거예요. 한창 자랄 나이인데, 차라리 내가 대신 당했으면…."
10여 차례 수술이 끝이 아니다. 엄 씨는 우성이에게 매일 보습 크림과 약을 발라주고, 우성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수술을 해줘야 한다. 아이는 자라기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피부를 늘려줘야 한다. 아이 셋을 키우기가 녹록지가 않고, 한 달에 100만 원 넘게 드는 약값도 만만치 않다.
"우성이 자식 크는 거 보는 게 소원이에요"
힘들 때도 많지만, 아이들은 엄 씨가 살아갈 큰 희망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새끼들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절로 웃음이 난다.
엄 씨에겐 꿈이 있다. "우성이가 장가가서 새끼를 낳는 거 보고, 그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죽는 것"이다. 그 전에는 이 악물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속은 문드러져도 겉으론 웃고 다닌다"고 했다. "제가 밝아야 애들도 밝으니까. 애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밝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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