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금융·노동·교육 부문에서의 '구조 개혁'과 재정·통화 정책 확장 기조 유지를 골자로 하는 '2015년도 경제정책 방향(안)'을 22일 내놨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이 '활성화'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면, 이번에 발표된 대책은 '구조조정'이란 표현에 더 걸맞은 모습이다.
효율성·역동성·유연성 강화로 포장된 '구조 개혁' 정책들은 대체로 어느 한 경제 주체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조만간 발표될 '비정규직 대책'으로 더 구체화될 정규직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의 대책은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내년은 큰 선거가 없는 해인 만큼 새누리당 또한 사회 일각의 저항과 우려를 무릅쓰고 정부 정책에 의기투합할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오전 새누리당에 이러한 경제정책 방향을 보고하며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낯 뜨거운 '자화자찬'…"경제 회복 모멘텀 강화"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 경제 관계부처가 이날 합동으로 내놓은 '2015년 경제정책방향(안)'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과 함께 시작된 '2기 경제팀'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시작한다.
새 경제팀이 지난 7월 16일 출범한 후 "확장적 거시 정책 패키지, 주택 시장 정상화 등을 추진하여 경제 회복 모멘텀(추진력)을 강화"했으며 "가계 소득 증대 세제 3대 패키지 등을 통해 구조적 내수 부진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자기 평가다.
정부는 이처럼 새 경제팀이 "과감한 기조 전환"으로 침체한 경제 분위기를 일신시키는 데 기여한 결과 내년부터진행될 '구조 개혁'을 위한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대책에 최경환 경제팀의 확장 정책으로 늘어난 가계 부채와 그 때문에 커지는 금융 시장 불안정성에 대한 평가는 비중 있게 담겨 있지 않다.
정부는 "가계부채 부담과 금융·외환 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 등은 향후 경기 흐름의 위험 요인"이라면서도 "정부 정책 효과와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주택 매매시장이 정상화 과정을 지속해 왔다"고 주장했다.
노동·금융 등 구조 개혁…정부 "고용 격차가 일자리 창출 제약"
정부는 이처럼 그간의 경제 정책으로 경기 회복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노동·교육·금융·공공 부문에서의 구조적 '낙후성'과 '비효율성'이 경제 도약을 '제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시장의 경우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뉜 이중 구조 속에서 생기는 고용 보호 격차와 불합리한 차별이 생산성 둔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제약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또 교육이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제대로 양성·공급하지 못해 인력수급 불일치가 심화했고, 이 때문에 청년고용 부진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고도 했다.
금융산업의 경우엔 "보신주의"란 표현을 여러 차례 쓰며 "소극적인 대출·투자 행태로 시중 자금이 실물 경기 회복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석 속에 나온 정부의 2015년도 경제정책 방향은 '확장 기조 유지'와 '구조 개혁'으로 이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년 내놓는 '구조 개혁 평가 보고서'에서의 '구조 개혁' 개념을 동일하게 언급하는 것이며, 실상은 개혁보다는 경제 '구조 조정'에 가깝다.
[공공·교육 부문] 공무원연금 이어 사학·군인·국민연금도 손댄다
2015년도 정부가 진행할 구조조정은 앞서 '낙후한 구조'로 지목된 4개 분야 모두에서 강도 높게 진행된다.
우선 공공 분야에선 '재정 건전성 강화'란 미명 아래 공무원 연금은 물론 군인·사학 연금과 국민연금 또한 수술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번 대책에선 구체적인 개편 방향이 나오지 않았으나 '재정 건전성 강화'를 명시적 목표로 한 터라, 공적 연금으로서의 보장성 강화보다는 연금 기능의 축소로 개편 가닥이 잡히지 않겠느냐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외에도 정부안은 민자 사업 대상을 확대하고 사업절차 소요기간을 대폭 축소하는 등 공공 부문으로의 민간 자본 참여 확대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교육 교부금 산정 기준을 학생 수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바꾸어 교육 현장의 인력 구조를 조정하고 동시에 학교 통·폐합 등에 대한 인센티브도 강화하겠다고도 밝혔다.
학교로 가는 예산을 수단 삼아 교육 현장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겠다는 발상이다.
커다란 노·정(勞政) 갈등을 낳았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도 쉼 없이 계속된다. 민간 경쟁의 타당성과 수익성 등을 종합 점검해 공공기관으로 현재는 미지정돼 있는 자회사까지 모든 기관의 기능과 조직을 재설계하겠단 계획이다.
[금융] 경쟁 촉진·규제 완화…업계 이해 그대로 반영했나
금융 부문에서의 구조 개혁은 '경쟁 촉진'과 '규제 개선'이 골자다. 금융 시스템 안정성 강화보다는 관련 업계의 이해관계가 투영된 대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는 우선 IT·금융 융합지원방안을 3월 중에 마련해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여건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또 대형증권사의 외화 신용공여를 허용하고 외화 차입 신고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외환 업무 범위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으며, 최근 국내에서도 '그림자 금융'문제가 대두하고 있음에도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 대한 신용공여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올해 7월 발표한 금융규제 개혁 방안을 차질 없이 추진함과 동시에 2단계 금융규제 개혁 방안 또한 마련할 계획이다.
이 '2단계 개혁 방안'에는 헤지펀드·PEF 규제 완화와 독립판매채널·복합점포 활성화 등의 경쟁 제한 규제책이 담길 예정인데 이와 관련해서도 "감시·관리 권한이 강화된 금융 감독 체계 개편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아울러 '모험 자본 활성화'란 이름으로 사모펀드 운용자 요건 완화와 사모투자재간접펀드·적격투자자제도 도입 등도 준비하고 있다.
[노동] 노사정위 합의 불발에도 연내 대책 발표될 듯…"공약 전면 파기"
이미 '정규직 정리해고 요건 완화'가 주 내용일 것으로 알려진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해선 이번 대책에는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
이는 지난 주말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5차 회의에서도 정부가 제시한 합의문 초안은 물론, 전문가 그룹의 중재안마저 합의안으로 연결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노사정위는 이번 주 안으로 본회의를 다시 열어 최종 타결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노정 간 이견이 워낙 커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특히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명분으로 한 정규직 고용 유연성 확대는 노사정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으로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책 방향이다.
한국노총은 앞서 "경제민주화, 소득분배 개선 등 노동계 요구는 배제되고, 정부가 노동계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과 임기 초반 국정과제에는 지금 추세와는 정반대로 정리해고 요건 '강화'와 "일방적인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 방지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 설립"이 담겨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발표될 '비정규직 대책'에 기간제 사용 가능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올리는 내용까지 포함된다면, 노동 공약에 있어선 '전면 폐기'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공부문에서의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해선 2015년까지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했었고 최저임금 결정 시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소득분배 조정분을 반영해 인상 폭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경제 대책에 최저임금 관련 내용 또한 "단계적 인상" 정도에 그쳤다. 목표 수준과 기준, 목표 시점 그 어떤 것도 제시되지 않아 선전 구호에 불과하단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노사정위 합의가 불발되더라도 노동 부문의 구조 개혁 대책을 연내에 내놓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연석회의에서 "노동 시장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로 이 벽을 넘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도 어렵다"고 말했다.
확장 정책 기조 계속…노사 임금 협상 '가이드라인'마저 제시?
정부는 이 같은 "구조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에 해오던 확장적 거시 정책 운용을 계속할 계획임도 명확히 했다.
많은 비판 속에서도 상반기 중앙·지방 재정 조기 집행(58%)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경기 여건에 따라선 탄력적으로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 등 경기 파급효과가 큰 사업인 경우엔 60%이상을 조기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적정 임금 인상 유도"를 위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업종별 생산성 증가지표를 마련해 임금·단체교섭 지도 방향에 반영토록 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는 노사 자율로 진행해 온 임금·단체 교섭에 정부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계부채 대책은 '원론' 수준…"소득 주도는 어디로 가고 규제 완화만 남았나"
주택 시장에서는 민간 주도의 '임대시장 활성화' 대책이 본격화한다.
LH 등 공공기관의 보유 토지 중 장기 미매각 토지를 할인 매각하는 등 적극 활용하고 택지 용지 공급 조건(할부조건 등)을 완화하며 개발제한구역 해제 요건 완화 등을 추진한단 계획이다.
한편, 가계부채와 같은 위험 요인에 대해선 "가계부채 모니터링 강화를 통한 연착륙 유도"라는 원론적인 수준의 계획만 밝혀놨다.
세부 대책으론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회사의 프리워크아웃을 활성화하고 대출 통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단 내용을 담긴 했으나, 이런 것들이 가계부채 규모 '완화'를 끌어내는 대책은 아니다.
이 같은 정부의 2015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대해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소득 주도는 어디로 가고 규제 완화만 남았느냐"며 "있어야 할 알맹이는 없고 없어도 될 구태를 모양만 요란한 포장으로 가리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정책 방향으로 상당한 희생을 치르게 될 노동계에서도 반발이 크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015년도 경제정책방향은 전체 노동자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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