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The interview) 제작사에 대한 해킹과 뒤이은 테러 협박, 개봉 취소 사태가 북·미 간 외교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미국 방송 CNN에 출연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검토할 것이며, 어떤 검토결과가 나올지를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테러지원국 재지정에는 분명한 요건들이 있다"며 매일 매일의 언론보도를 갖고 판단하지 않으며 시스템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쿠바, 이란, 시리아, 수단 4개국이다. 북한은 지난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으로 다음 해 1월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지만 2008년 11월 북한이 핵 검증에 합의하면서 부시 행정부 시절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된 바 있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와 관련해 통일부 임병철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가 그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문제와 관련한 동향을 예의 있게 지켜볼 것이며, 미국 당국이 북한이 사이버 테러의 배후에 있다고 확인한 부분에 대해 정부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 조치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연방법에 명시된 테러지원국 재지정 규정문제와 실제 지정했을 때의 실효성 측면, 그리고 외교적인 파장과 관련한 논란이 있어,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 재지정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우선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해킹이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될 수 있는 테러행위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필요한데, 현행 미국 연방법에 따르면 '테러'는 물리적 폭력이 수반되고 인명에 대한 위해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여기에 미국 연방법에는 위에 명시한 테러행위를 지속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확인돼야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이 가능하다.
문제는 영화 제작사에 대한 해킹과 위협이 실제 북한이 저지른 행위일지라도 이것이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을지언정, 물리적 폭력이나 인명에 대한 피해를 발생시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사이버 테러를 테러의 범주에 넣느냐의 여부와 관련된 것이라 향후 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의 핵심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것이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무역과 투자, 원조 등에서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되고, 미국과 교역에 수반되는 금융 지원이 제한되며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기금(IMF)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지원이나 신용 공여도 어려워진다. 뿐만 아니라 무기 판매와 관련한 수출 통제도 받는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비롯해 다자, 양자 차원에서 광범위하고 강도 높은 제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미국과 수출 규모가 대단히 작고 미국 정부 차원에서 별다른 원조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미국에 외교적인 부담만 안겨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미국이 재지정에 착수하면 북·미 사이에 사실상 대화 채널이 단절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최근 53년 만에 쿠바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며 2016년 퇴임을 대비해 나름의 정치적 유산을 쌓아가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가 대통령 취임 전 언급했던 ‘적과의 대화’에 포함된 국가 중 북한만이 유일하게 정상 간 접촉이 없는 상황인데, 이런 북한과 관계 단절을 감수하면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강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