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의 내부 문서가 유출된 가운데,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의 관리 부실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원전 내부 자료가 18일부터 21일 현재까지 인터넷상에 돌아다니고 있지만, 한수원은 유출 원인이나 경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출된 문서가 별 것 아니다'라는 취지의 해명을 하고 있다.
'원전반대그룹'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는 고리, 월성 원전의 배관 설치도와 제어 프로그램 해설서, 1만여 전·현직 임직원의 상세 개인 정보, 원전 사용 프로그램 매뉴얼 등이다.
문서 유출 논란이 커지자 한수원은 지난 20일 "지금까지 유출된 자료는 일반적 기술 자료라 원전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며 "사이버공격 발생에 대비해 종합대응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같은 날 오후 한전과 가스공사, 석유공사 등 에너지공기업 사장단과 함께 '사이버보안 점검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정부와 한수원의 대응이 이뤄진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추가 내부 자료가 공개됐다.
게다가 '원전반대그룹'은 이외에 추가로 "10만여 장의 한수원 내부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 파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은 지난 9일 다른 에너지공기업 등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신자로부터 악성코드가 담긴 이메일을 받는 등 사이버공격을 당한 바 있다.
한수원은 컴퓨터에 보안패치를 설치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했으나, 해킹 흔적은 찾지 못했고 정보 유출 경로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문제가 커지자, 정부는 21일 뒤늦게 문서 유출 범인 추적에 나섰다.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 부장검사)은 '원전반대그룹'이라고 밝힌 SNS 사용자의 IP 위치를 추적해 수사관을 급파했고, 자료가 유출된 고리, 월성 원전에도 수사관을 보냈다.
지금까지 4차례의 문서 유출이 벌어질 때까지 정부가 '늑장 대응'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잦은 뒷돈 거래, 원전 고장, 시험성적 위조까지
한수원의 보안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보안감사 결과, 원전 직원 19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용역업체에 유출된 사례가 적발된 바 있다.
원전 내 보안 시스템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원전 내 CCTV는 설치 근거 없이 운영돼왔으며, 저장 기간도 지정되지 않은 채 가용돼 왔다. 또 CCTV의 77%는 잦은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으로 한수원은 신뢰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수원은 원전 비리 사건과 잦은 원전 고장, 시험성적 위조 사건 등으로 국민의 불안감을 키워왔다.
지난해 5월에는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의 원자로에 시험성적표가 위조된 제어케이블 등 불량 부품이 사용된 것이 적발된 바 있다. 이 같이 시험 성적이 조작된 건만 해도 전국에서 총 20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시험성적을 위조한 한수원 직원들과 납품업체 간에 금품이 오갔고, 한전 최고위층부터 말단직원까지 금품을 나눠 갖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1일에는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구속된 이청구 한수원 부사장은 21일 부산고법으로부터 징역 8개월과 추징금 1500만 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뒷돈 거래, 시험성적 위조가 잦다 보니 원전 고장으로 물의가 빚어지기도 했다. 올해만 해도 원전이 고장으로 가동을 멈춘 경우가 7건에 달한다.
노후 원전 고장은 더 심하다. 1978년 상업 가동한 노후 원전인 고리 1호기의 경우, 지금까지 총 130회의 사고와 고장이 생겼다. 2007년 수명 연장 이후에도 5차례 사고와 고장으로 가동이 정지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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