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하고자 하는 시간을 보장한다는 계약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고용주와 합의한 '나의 근로시간'은 손님이 적다는 이유로 쉽사리 꺾입니다. 일을 하고 있다가, 혹은 일을 하러 아르바이트를 가고 있다가 '오늘 손님이 없으니, 집에 가'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서울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있는 A(22) 씨의 말이다. '꺾기 노동'이란 근로계약서 등을 통해 정해진 노동시간이 있음에도 강제로 '조퇴'를 시키거나 늦게 출근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시간당 임금을 받기 때문에, 강제로 조퇴하거나 늦게 출근하게 되면 그만큼 받는 돈이 작아진다. 근로시간을 명시한 근로계약서가 있는데도 '꺾기 노동'을 시켰다면,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그러나 이런 '불법'은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다.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이 18일 발표한 '맥도날드 알바노동자 근로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1625명 가운데 73%가 이런 꺾기 노동을 당하거나 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 64% "손님 없다고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라는 요구 받았다"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할 것을 요구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1036명, 응답자의 64%가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없지만 다른 알바생이 이런 요구를 받는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다"는 대답은 154명, 9%였다. 매주마다 이른바 '근무 스케줄'이 나오지만, 손님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셈이다.
알바노조 이혜정 사무국장은 "꺾기 노동은 오래 전부터 만연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국장은 "각 매장은 매출 대비 인건비 비율을 정해놓기 때문에 매출이 적은 날은 알바생들을 강제로 조퇴시켜 인건비를 떨어트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님이 별로 없어 매출이 적은 매장은 '꺾기 노동'을 시키고, 손님이 많은 곳은 '호출 노동'도 한다. 일하기로 한 시간이 아닌데 급하게 매니저가 호출해 일을 시키는 것이다.
'호출 노동' 역시 불법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꺽기 노동'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수입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알바생'에게는 이중의 고통이다. 이런 꺽기 노동 관행은 지난 5월 알바노조의 폭로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번 조사를 통해 이런 관행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고작 36%만이 "일한만큼 월급 제대로 받았다"…"맥도날드, 매출액 채우려고 알바생 근태기록 조작"
심지어는 일한 만큼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설문조사 응답자 가운데 "월급을 제대로 받았다"는 사람은 36%에 불과했다.
22%는 "임금 체불을 경험했다"고 대답했고, 24%는 "월급이 맞는지 계산해 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월급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잘 모른다"는 대답도 18%로 나타났다.
임금 체불의 이유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는 44%가 "실제 근무한 시간과 월급에 반영된 근무 시간이 달랐다"는 것을 꼽았다. 알바노조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자기 근무시간을 지문으로 기록하는 단말기와 매니저가 실제 근무시간을 입력하는 단말기가 달라 매니저가 임의로 근무시간을 조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A 씨도 "맥도날드에서 1년 넘게 일하면서 근태시간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는데 조작이 되지 않은 근태시간 기록표와 조작이 된 기록표를 봤다"고 말했다. A 씨는 "목표 총 매출액을 채우기 위해 중간 관리자들이 근태기록을 조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주휴·연장·야간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대답도 28%였다.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13%)거나 "매니저나 점장이 벌금이라며 월급을 깎았다"(9%)는 응답도 있었다.
A 씨는 "노동의 목적은 '임금'인데 맥도날드는 총 목표 매출액 관리를 이유로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임금에 손을 댄다"면서 "노동자의 임금을 훔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12%는 "근로계약서 작성 안 했다"…근로계약서 썼어도 "서명만 했다"도 8%
문제는 대부분의 패스트푸드점이 아르바이트 노동자와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알바노조의 이번 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12%는 아예 근로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해당 사업주에게 과태료가 부과된다.
근로계약서를 쓰고 일을 시작한 경우에도 "읽어볼 시간도 없이 빈 칸에 시키는 대로 썼"거나(26%),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서명만 한"(8%)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혜정 사무국장은 "근로계약서에 요일별로 노동 시작 시간과 끝 시간을 적게 돼 있는데 근로시간 항목 자체를 빈칸으로 작성하거나 최대 시간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알바노조 실태조사, 전국 각지의 맥도날드 '알바생' 1625명 참여알바노조가 실시한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근로실태 조사는 지난 6일부터 14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이 조사에는 맥도날드에서 일한적이 있거나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 1625명이 참여했다. 현재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981명, 전체 응답자의 60%였다.높은 참여율에 대해 알바노조는 "약 500여 명의 맥도날드 노동자들이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에서의 태그 방식으로 자신이 아는 맥도날드 노동자들을 릴레이 '소환'해 설문조사를 홍보했다"고 설명했다.특히 응답자 가운데 1100여 명은 자신이 일하고 있거나 일했던 매장과 위치 등을 밝히기도 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을 비롯해 제주까지 전국 각지 매장에서 일해 본 노동자들이 고르게 분포한다.응답자 가운데 현재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60%(981명)였다.근로 기간을 보면 △6개월에서 1년 사이와 △2년 이상이 같은 22%로 공동 1위였다.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와 △1년에서 2년 사이도 18%로 같았다.이번 조사는 지난 9월 알바노조 조합원인 이가현(22) 씨가 해고된 것이 계기가 됐다. 맥도날드 역곡점에서 일하던 이 씨는 지난 5월 알바노조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꺽기 노동' 관행을 폭로했고, 계약 기간이 만료된 이후 석연찮은 이유로 계약 연장을 거부 당했다. 이가현 씨는 지난 12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체신청을 낸 상태다.
"맥도날드, 알바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지사장 고발운동 벌일 것"
알바노조는 맥도날드 측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알바노조 구교현 위원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맥도날드 불법관행의 윤곽이 확인됐다"며 "맥도날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알바노조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위원장은 "맥도날드가 교섭 요구를 계속 거부할 경우, 구체적 사례를 수집해 한국 지사장 처벌을 요구하는 고발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지지 발언에 나선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노동부는 한국 맥도날드 전국지점 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업계 전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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