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에볼라에 대한 관심이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에볼라 신규 발병자 수가 감소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에라리온의 경우 신규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WHO가 지난 11월 23일 발표한 공식 통계상 전 세계 에볼라 감염자는 1만5935명이고, 사망자는 5689명에 달한다. WHO 브루스 에일워드 사무부총장이 강조하듯이 "감염률이 줄고 있다는 것과 종결됐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번 에볼라 유행은 머지않아 종결될 것이라고 본다. 공기 전파가 아닌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서만 감염되고,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환자와 접촉했다 하더라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두 가지 특징은 이러한 희망을 뒷받침해주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희망이 에볼라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불거진 문제점들을 진지하게 해결해나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에볼라 사태가 다시 우리를 위협할 것이다.
문제점 1: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
역학적으로 볼 때 에볼라 발병의 일차적인 원인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인 과일박쥐와의 접촉이다. 이런 점 때문에 에볼라 발발 초기 서방 언론들은 부시 미트(박쥐나 유인원을 먹는 풍습)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에볼라의 원인을 아프리카의 "미개성"으로 규정짓기 바빴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 깊은 숲 속까지 들어가 왜 과일박쥐와 접촉하거나 과일박쥐를 사냥하게 됐는지가 더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미 툴레인대학의 바이러스 전문가 대니얼 바우슈 교수가 <미국의 소리>에서 지적했듯이 "병원균을 옮기는 박쥐 등은 보통 사람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낮은 깊은 숲 속에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먹을 것과 자원을 구하러 숲 속 깊이 들어가는 바람에 이것이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불러온 것"이다. 즉, 이번 에볼라 발생 원인의 중심에는 빈곤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전염병이 발생한 이후 어느 정도까지 확산되는가 하는 문제는 해당 지역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미국 내 주요 생존자들의 치료를 주도한 에모리대학병원 전염병센터 브루스 리브너 박사가 <CNN>에서 밝혔듯이 지맵(에볼라 실험 약물)이나 완치자의 혈장이 "도움이 됐는지 아니면 회복을 지연시켰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톰 프리든 소장의 말처럼 "탈수가 되지 않도록 체내 수분과 전해질 수치를 유지하는 것"이 생사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즉, 전염병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질 수 있고, 탈수와 전해질 조절과 같은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수준의 의료체계만 구축되어 있었더라도 에볼라가 이렇게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으리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왜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숲 속까지 들어가야만 하고, 기본적인 보건의료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할 정도의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아프리카를 지원한다는 수많은 사설단체와 국제기구들의 활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프리카는 전혀 변화하지 못하는 것일까?
서구가 망친 아프리카 경제, 에볼라 전파에 기여
우리에게 비춰지는 고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아프리카가 늘 그렇게 가난에 찌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호황기에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해마다 6% 정도의 경제 성장을 했었다. 이러한 경제 성장을 토대로 교육과 의료 분야에도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더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 많은 해외 자금을 끌어들여 수출 부문을 확대하였는데, 이는 1970년대 초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아프리카가 경제 불황에 빠지자, 우리도 경험했듯이 IMF와 세계은행이 개입했다. 그리고 IMF와 세계은행은 아프리카 나라들에 공공부문과 공공시설의 민영화, 농업 보조금 철폐 등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했다. 결국 독립 이후 구축해 온 교육과 보건 체계는 몇 년 만에 거의 붕괴했고, 초국적기업들이 경제를 장악하면서 일반 민중들의 삶은 더욱 척박해졌다. 개선될 줄 모르는 경제 불황은 곧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졌고, 많은 나라에서 내전이 발생했다.
이번 에볼라의 주요 발병국인 라이베리아, 기니, 시에라리온에 국한지어 살펴보면, 이 세 나라는 UN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 순위가 187개국 중 각각 175, 179, 183위로 아프리카 안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구체적인 상황을 보면, 라이베리아는 이미 거의 한 세기 전부터 환금 작물을 위해 농지가 이용된 나라였다. 기니는 GDP 중 외국직접투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였고, 특히 기니의 에볼라 발병 지역은 최근 해외 자본이 기업식 농업을 위해 집중적으로 땅을 사들인 곳이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로 잘 알려졌듯이, 시에라리온은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정부군과 반군의 오랜 내전으로 국가 경제는 물론 민중들의 삶이 붕괴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경작할 땅을 잃고, 내전에 시달린 민중들은 숲에서 먹을거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초국적 기업들이 밀어버린 삼림길(서아프리카 세 나라 모두 국토 75% 이상을 삼림벌채 했다)을 통해 에볼라의 자연 숙주와 접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중보건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실제 이들 국가의 의료체계는 행여 소규모 진료소가 있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많은 지역에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전염병 전문가인 폴 파머가 최근 라이베리아 출장 후 쓴 일기를 보면 "에볼라 감염이 가장 심한 지역에 간호사와 의사가 거의 없었으며", 서아프리카 3국 중 그나마 경제 수준이 나은 라이베리아만 하더라도 "현재의 위기 이전에조차 인구가 400만 명이 넘는 이 나라에서 공중보건에 종사하는 의사가 50명도 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프리카 원조금액 6배, 서구와 초국적기업으로 빠져나가
우리는 많은 경로를 통해 아프리카 지원과 관련된 소식을 접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아프리카에 국제 사회의 경제적 지원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을까? 영국의 보건빈곤행동(HPA) 등 영국·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NGO 14곳이 서방으로부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47개국에 유입·유출되는 자금 내역을 분석한 '정직한 장부' 보고서를 보면 당혹스럽다. 순수 원조의 목적으로 아프리카에 유입되는 자금은 295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 보고서는 순수 원조금을 포함해 아프리카 유입되는 자금 총액은 1337억 달러인 반면, 매년 아프리카에서 서방 정부와 초국적기업으로 유출되는 자금은 순수 원조금액의 6.4배인 1919억 달러로, 사실상 아프리카는 매년 582억 달러(64조 원)의 순손실을 보고 있다고 추산했다. 즉, "주민 1명당 매년 62달러를 서방 국가와 기업에 바치는 셈"인 것이다. 유출 금액을 분석해보면 초국적기업들이 463억 달러를 벌어갔으며, 엉뚱하게도 아프리카 국가들과 거의 상관없는 저탄소 경제 성장 비용과 기후 변화 대책 비용으로 366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문제점 2: 아프리카에 대한 보건의료 지원의 문제
경제적 원조는 차치하더라도, 보건의료 지원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을까? 국제보건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는 WHO는 제대로 대응하고 있었을까? 에볼라는 2014년 처음 발병한 질병이 아니다. 과거 40년간 에볼라는 아프리카에서 간헐적이지만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연할 필요 없이 그 40년간 국제사회가 에볼라 대응에 대해 어떤 준비도 갖추고 있지 못했음을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WHO는 에볼라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해지면서 비난이 거세지자 "WHO의 역할이 에볼라 진료소를 운영하거나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들에 에볼라 대처 방안을 조언해주는 것"이라고 발뺌하기 바빴다.
대부분 국제기구가 그렇듯이 WHO 역시 주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한계가 이번 에볼라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에 대해 영국의 보건학자인 앨리슨 폴록 교수는 미국의 진보언론 <카운터펀치>와 한 인터뷰를 통해 "미국 등 주요 강대국들은 지난 20여 년 간 WHO의 예방의학이나 공공보건 분야에 거의 지원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WHO의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현재 WHO의 연간 지출 예산은 20억 달러(2조 원)인데, 이는 미국 질병관리본부 예산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이 예산 중 에볼라와 같은 유행성 질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대응하는 부서의 예산은 절반 가까이(2600억 원가량) 삭감된 상태다.
그렇다면 빌 게이츠와 같은 거부들이 아프리카를 위해 쓴다는 돈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번 에볼라 사태를 계기로 게이츠재단의 아프리카 농업 진흥 관련 기금에 대한 의문이 불거졌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게이츠 재단이 아프리카를 위해 쓴다는 30억 달러(약 3조 원) 중 대부분이 미국과 영국 등 부국에 지원됐고, 단 10%만 아프리카에 쓰였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 기금의 절반인 약 15억 달러는 세계은행, 유엔 기관들, 아프리카에서 첨단농업을 촉진하는 단체, 글로벌 농업 연구조직에 지원됐으며, 나머지 절반도 선진국들의 주요 연구기관 및 개발기관에 제공됐다. 엘리슨 폴록 교수의 말에 따르면, 빌 게이츠와 같은 거부들이 기부하는 자금은 "결국 머크(MERK)와 같은 거대 제약회사에 떨어지고, 그 개발 분야도 C형 간염 등 서양인들에게 중요한, 한 마디로 돈벌이가 되는 질병의 치료 약이나 백신 개발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초국적 제약사, '돈이 안 돼서' 에볼라 백신 개발 미뤄
폴록 교수 주장의 타당성은 에볼라 백신 개발의 지연 문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 연구진이 이미 2004년 동물실험에서 100% 효과를 보이는 에볼라 백신을 개발했으며 그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게재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 백신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와 제약회사로부터 외면당했다. 당시 연구진은 "2년 안에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돌입하고 2010∼2011년 사이에 백신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백신 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갤버스턴 텍사스대학 의과대학의 토머스 게이스버트 교수는 "에볼라 백신 시장이 컸던 적이 없다. 큰 제약사로서는 어디에다가 약을 팔 수 있었겠느냐"며 백신 개발이 지연된 이유가 제약회사의 이윤 논리 때문임을 언급했다. 결국 그동안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백신은 만들어지지 못했고, 선진국의 환자가 발생하고 난 지금에서야 이 VSV-EBOV 백신은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이 백신이 진작 개발됐다면 이번 에볼라 사태가 이토록 크게 확산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수 천 명의 아프리카인 사망자의 가치보다 몇 명의 선진국 사망자의 가치가 이토록 큰 것일까? 만약 이번 에볼라 사태에서 선진국 사망자들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선진국 내 전파 가능성이 없었다면, 과연 이 백신이 이제라도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김영미 <시사인> 국제문제 전문편집위원이 잘 지적했듯이 "고도로 발달한 세계 자본주의의 첨병들은 원시 정글 땅속 깊은 곳의 지하자원까지 '수익률 높이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에볼라 바이러스도 '개발'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수익률 중심의 서구 자본주의(의료) 시스템은 이에 철저하게 무능"했다.
문제점 3: 국내 전염병 대응 체계의 문제
한국 정부는 12월 13일 시에라리온에 '에볼라 위기대응 보건인력' 본진 1개 팀을 파견한다. 첫 파견 팀은 의사 4명과 간호사 6명인데, 민간 인력 5명(의사 2·간호사 3)과 군 인력 5명(의사 2·간호사 3)으로 구성된다. 이후 2개 팀을 추가로 파견하여, 총 3개 팀, 모두 30명을 내년 상반기까지 파견한다. 활동 일정을 살펴보면, 이들은 영국 런던에서 약 5일간 안전교육을 받고 시에라리온에 입국하여 약 한 달간 근무하고, 한국에 돌아와 공항 근처 격리소에서 21일간 머문 후 귀가한다.
개인적으로 국제적인 재난을 막기 위해 의료인을 파견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추진 절차나 국내 전염병 대응 체계 구축의 문제에서만큼은 부정적인 시각을 거둘 수 없다. 현지에 파견된 한국 보건의료팀은 이탈리아 비정부기구인 '이머전시'가 운영하는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 인근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소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시에라리온은 현재 유일하게 신규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으로 거의 매일 100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에볼라에 감염돼 로마로 후송된 이탈리아 의사 역시 시에라리온에서 활동했으며, 바로 '이머전시' 소속이었다.
정부는 만일 한국 의료진이 현지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영국·스페인·노르웨이·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 소재 진료소로 이송할 것이라고 한다. 자국민의 생명을 다른 나라에 맡기는 게 정치적,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일지 모르나, 국내 전염병 대응 체계를 봤을 때, 지원자나 한국 국민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에어 앰뷸런스가 중간 급유를 하지 않고는 시에라리온 현지에서 한국까지 올 수가 없기 때문에 의료적으로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하나, 이는 이유치고는 사실 구차한 감이 있다. 그보다는 "파견을 자청한 보건의료 인력을 면접하면서 본인이 감염됐을 때 어디에서 치료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을 때 '가까운 유럽에서 최상의 치료를 받는 게 본인들로서도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의 설명이 훨씬 타당해 보인다.
한국 정부는 에볼라 대응 체계 제대로 구축했나?
지원자들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우리나라에서 치료받는 게 안전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맞는 얘기다. 정부는 질병관리본부를 컨트롤타워로 해서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에볼라 대응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한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모 방송국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지적했듯이, 부산의 에볼라 의심 환자 한 명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핫라인이 가동하기는커녕 질병관리본부와 연락조차 제대로 안됐고, 국가지정병원은 자신들이 국가지정병원인지도 모른 채 서로 떠밀기 바빴다. 당시 세 차례 시도 만에 연결된 질병관리본부 핫라인 담당자가 기껏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신고자에게 던진 말은 "에볼라 얘기는 하지 말고 아프리카 같은 이야기도 하지 마시라. 의사 선생님들 너무 불안하게 하지 마시라"였다. 이는 한국 에볼라 대응 체계의 컨트롤타워라고 하는 질병관리본부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부산소방안전본부는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제대로 된 통제를 받지 못한 채 부산대병원에 연락했으나 부산대병원은 국가지정병원인 울산대병원에 가라고 했고, 울산대병원은 "우리는 국가지정병원이 아니니" 거꾸로 부산대병원으로 가라며 입원을 거부했다. 그러나 두 병원 모두 보건복지부에서 에볼라 대응을 위해 지정한 국가지정병원이었다. 이렇게 병원 스스로도 국가지정병원인지 모르는 상황을 초래한 것 역시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이 크다. 질병관리본부는 국가지정병원을 관리 감독하기는커녕 "(에볼라 국가지정병원에서) 병원 명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반대가 많아 17개 병원을 공개할 수 없다"며 병원 눈치 보기에 급급한 나머지 아직도 전국 17개 국가지정병원 명단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제일 우선시해야 할 것은 병원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일 텐데 말이다. 결국 에볼라 의심 환자는 말라리아에 걸렸던 것으로 판명되긴 했으나, 적절한 초동 조치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말았다.
한국은 이미 국제적인 국가다. 파견된 의료진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에볼라 환자가 들어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에볼라 환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의심 환자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는가이다. 이는 국가가 공공의료를 위해 공공병원을 얼마나 컨트롤할 능력이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나 한국은 실상 OECD 국가 중 공공병원이 가장 적은 데다, 그나마 있는 공공병원마저 적자 경영 운운하며 시장 논리로 내몰고 있다. 국가가 공공병원이 공중보건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을 견인하기는커녕 이를 망각하라고 부추기는 형국이다. 이러한 공중보건 정책의 모순으로 일부 국가지정병원에서는 십 수억이나 되는 국민의 혈세를 들여 지은 격리 병상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병원 경영에 급급한 나머지 일반 병실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SDS 상장으로 번 돈, 일부만 공중보건 체계에 투자한다면
지금까지 국제, 국내 차원의 에볼라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에볼라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병원체가 던져준 문제점들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그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너무나도 커 보인다. 그러나 에볼라는 아주 작은 경고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에볼라가 아니라 만약 공기 전파가 가능한 전염병이 발생한다면 정말 재앙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현대의 전염병 전파 가능성은 과거 육로나 배를 통해 몇 달씩 걸리는 교류밖에 불가능했던 시절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국제 사회가 아프리카 빈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요한 한 가지 방편을 꼽으면, 아프리카의 빈곤을 통해 이윤을 얻고 있는 국가와 기업이 아프리카의 빈곤과 공중보건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UN에 따르면 현재 에볼라를 통제하는 데 약 1조 원이 필요하다는데, 이는 옥스팜의 분석결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36시간 만에 모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한다. 국내로 시각을 돌려보면, 박근혜 정부와 함께 의료 민영화를 견인하고 있는 삼성 일가가 삼성SDS 상장으로 하루 만에 번 돈(3조~4조 원)의 일부만 투자해도 한국의 공중보건 체계는 물론, 전 세계 공중보건 체계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이 간단해 보이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에볼라 치명률만큼이나 높은 민중들의 저항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 이 글은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의 12월 이슈 브리핑 '우리가 풀어야 할 에볼라의 숙제' 전문입니다. 건강과 대안 홈페이지(http://www.chsc.or.kr/?post_type=paper&p=88406)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WHO, Ebola response roadmap - Situation report, 2014. 11. 26http://www.who.int/csr/disease/ebola/situation-reports/en//배재정의원 국정감사 녹취록_http://jjreport.net/m/post/1633Honest Accounts-report, 2014. 7http://www.healthpovertyaction.org/wp-content/uploads/downloads/2014/08/Honest-Accounts-report-web-FINAL.pdf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시사인 364호: 공포의 에볼라, '인재'인 까닭Erika Check Hayden, Nature: The Ebola questions, 2014. 10. 29http://www.nature.com/news/the-ebola-questions-1.16243Joel G. Breman, M.D., D.T.P.H., and Karl M. Johnson, M.D., NEJM: Ebola Then and Now, 2014; 371:1663-1666 October 30, 2014DOI: 10.1056/NEJMp1410540PHM report, Ebola epidemic exposes the pathology of the global economic and political system, 2014. 9. 26Tokunbo-oke, Socialist Review : A catastrophic failure to act, 201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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