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간의 문제"라며 천안함 사건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미국과 중국이 갑자기 서해에서 격돌하자, 이제껏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남북한은 납작 엎드리며 사태를 지켜보기만 했다. "일체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청와대 지침에 따라 국방부는 5.24조치에서 표방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도 취소해버렸고, 서해 한미연합훈련도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했다. 악화된 한중관계 때문에 김태영 장관의 중국 방문도 취소되었다.
국제체제에서 상위에 강대국 정치가 있다면 남북한의 충돌이란 그 하위에 있는 약소국 정치다. 이제까지 서해에서 분쟁의 요인은 하위 정치 영역인 북방한계선(NLL) 문제였다면 2010년 여름에 전개된 분쟁은 그게 아니었다. "서해는 항해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해"라는 미국에 대해 "서해에 공해란 없다, 중국의 근해일 뿐"이라는 중국의 입장이 충돌했다. 그런데 미국은 1981년 발효된 국제해양협약에 30년 넘게 가입하지 않은 나라다. 그러니 서해에서 어떤 규범이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혼란 그 자체다.
이렇게 상위의 영역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선물로 준 G20 의장국이라는 선물에 도취되어 어쩔 줄 몰랐다. 경제유발 효과가 100조, 200조라는 허수가 난무하는 이 국제회의 개최에 장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대통령이 직접 회의장을 찾아가 소파 쿠션까지 점검했다.
회의 날짜가 다가오자 서울 전 지역에 냄새가 난다며 음식물 분리수거조차 금지시켰다. 회의장 바깥 감나무가 보기 좋다고 감이 떨어지지 않게 철사로 동여맸다. 정상회의가 개최된 11월 10일까지 서해에서는 5개월 이상 훈련이 금지되었고, 5.24조치에서 표방한 군사조치는 자취를 감췄다. 적어도 이 시점은 마치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처럼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싸우는 것은 오직 미국과 중국일 뿐이었다.
한반도 문제는 마치 남북한 간에 일어나는 국지적 위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강대국이 이에 개입하게 되면 남북한은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한 방관자가 되고 만다. 평소에 부단히 준비하지 않은 정권은 위기가 벌어지면 강대국 정치에 그대로 종속되는 보조적 위치로 전락한다. 서해 분쟁에서 이익의 당사자인 남북한이 단역으로 밀려나고 강대국이 그 주역이 되고 만 것이다. 한미동맹이라는 동맹의 담론보다는 미·중 관계라는 국제정치의 담론이 우리에게는 더 현실적인 문제다. 미·중 관계의 변화 양상에 따라 한국과 미국의 이익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서로 다를 수 있다! 이것이 한반도 지정학이다. 마치 동맹이 우리에게 생존의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2010년 정세를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한미동맹을 넘어 한미일 3국의 전략적 공조, 군사적 공조로 중국을 견제하자는 냉전식의 주장은 우리의 이익과 정체성에 대한 의도적 외면이자 기만이다. 어찌 이 3국의 이익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이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전쟁을 하는 보수, 즉 호모 밀리테리쿠스의 유전자보다 경제를 하는 보수,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유전자가 더 강했다. 그런데 이것이 2010년 11월의 또 하나의 불행한 사건의 배경이 된다.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 5개월 이상 연기된 한국군 군사훈련이 한꺼번에 실시되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이다. 11월 23일에 실시된 연평도 인근에서 해병대의 사격훈련은 예전에 매달 진행되던 사격훈련의 몫까지 전부 소화하는 이례적 대규모 훈련이었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하던 것을 한꺼번에 다 한다는 의미에서 이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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