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통일·평화 교육의 강사로 초빙될 때가 제일 난감하다. 경쟁과 서열의 문화에 찌든 이들에게 뜬구름 잡는 통일이나 손에 잡히지 않는 평화를 무슨 수로 교육시키란 말인가?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데 왜 북한까지 신경 써야 하나?
그저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교육이라면, 그처럼 쉬운 것도 없다. 북한군에 대한 사진 몇 장이면 단 10분 만에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을 자신이 있다. 협박하면 되는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은 이들이 전혀 갖고 있지 못한 다른 현실감각을 요구하는 상상력의 영역이다. 그것도 박근혜식의 천박한 ‘대박’이라는 논리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풀어내야 하는 아주 설명이 어려운 과제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세대에게 다른 현실감각을 자극하기로 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웜홀 저 너머에 우리의 직관을 초월하는 다른 세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먼저 이들을 적절히 자극해야 한다. 우리 대학생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집에서 평균 6~9분 마다 부모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통제된 인생이다. 고등학교 진학하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담임선생과 학급에 강제로 편입되어 밤 10시까지 학교에 갇혀 있다. 대학 선택도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수능 점수에 맞춰진 강요된 선택이다. 군대 가면 또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중대, 소대에 편입되고 24시간 감금된다. 항상 남의 언어로 규정된 삶만 살아보았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적이 없다.
즉 이들은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산 것이다. 그래서 자기주도로 무엇을 결정할 줄 모르는 ‘결정 장애’ 세대이다. 무엇을 스스로 결정하려고 하면 부모라는 거대한 산성, 또는 학교나 군대, 집단에서 강요된 논리가 장벽처럼 버티고 있다. 예전과 달리 지금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의 질문이 없어졌다. 적극적으로 의문을 풀지 않고 교수가 말한 것을 받아 적으려고만 한다. 이런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가?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바로 그런 처지다. 바로 지독한 결정 장애, 성장지체, 발달 장애에 처해 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향한 위대한 항해를 시작할 수 없다. 독일은 어떠했는가? 패전국으로 4개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의해 주권을 박탈당하고 국가가 분단되었다. 1969년에 수상이 된 서독의 빌리 브란트는 그 엄혹한 와중에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소련의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호네커와 밀월관계를 형성하며 긴장완화 정책을 폈고, 적극적인 외교를 했다. 아마 우리 역대 대통령들 같았으면 미국의 뒤에 달랑 숨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적대와 긴장을 활용했을 것이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 번역된 브란트 수상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는 에곤 바의 <빌리 브란트를 기억하다>는 바로 이에 대한 증언이다. 신동방정책에 대한 중상과 모략에 시달리면서도 굴하지 않은 한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기억이다.
심지어 브레즈네프는 1981년의 아프간 침공 때도 동맹국보다 먼저 서독에 그 사실을 통보했고, 브란트는 미국의 퍼싱2 미사일 배치에 관해 소련과 상의했다. 이때 브란트는 분명히 “미국은 우리 동맹국이지 우리는 미국의 속국이 아니다”라며 독자 외교 노선을 폈다. 그러면서도 독일 통일에 대해 미국과 소련 모두의 지지를 축적했다. 20년 넘게 설계되고 일관성 있게 추진된 신동방정책이 없었더라면 과연 오늘날 통일 독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 호를 이끄는 선장은 역사의 나침표가 어디를 향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암초가 무서워서 항해 못하겠다고 한다. 우리의 국가전략이 무엇인지 결정 장애에 빠져 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밖에는 추워서 못 나오겠다고 한다. 미군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라고 하면 어린 애 젖 떼는 것처럼 앙앙 운다. 이들에게는 브란트가 보여주었던 강인함을 찾아볼 수 없고 원대함이나 비전 같은 것이 없는 생계형 엘리트들이다. 이런 지도자가 왜 국민을 피 흘리게 하는지 명확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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