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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개새끼? 눈을 낮춰라? 처절한 전쟁 안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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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개새끼? 눈을 낮춰라? 처절한 전쟁 안 보이나

[프레시안 books] 전다은·강선일·나해리·정은주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

언제부턴가 늘 작년의 기록을 갈아치우거나 몇 십 년 만에 최고인 통계들이 있다. 경기 침체, 취업난, 겨울 한파. 매번 경기는 안 좋고, 그래서 취업의 문은 바늘구멍보다도 좁고, 하반기 대기업 공채가 끝난 겨울바람은 차다 못해 쓰다.

서른한 살의 나는 2009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당연히 그때도 취업의 문은 좁디좁았다. 사회당이라는 작지만 내 신념과 부합하는 정당에서 상근할 예정이었던 나는 동기들 중 유일하게 취업한 졸업 예정자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취업 얘기가 시작되면 이력서 100번 써서 100번 다 떨어진 문과대 선배 이야기가 왕왕 회자되었다. 토익은 열풍이 아니라 기본 소양이었고, B+ 이하는 당연히 재수강해야 했다. 다음 카페인 '취뽀'(취업 뽀개기)와 '닥취'(닥치고 취업) 게시판의 글을 프린트해서 갖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기자를 준비했던 나의 '절친'은 토익 950에 하루 4가지 신문을 6시간 동안 정독하고 스터디를 3개씩 하며 과외를 일주일에 2개씩 하는 초특급 성실파였지만,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나오지 못해서인지, 27세 여자여서 그랬는지, 미스유니버시아드대회에 출전한 지원자와 같이 면접을 봐서 그랬는지, 인턴기자 경력이 없어서인지 번번이 낙방했다. 친구는 왜 떨어졌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20번 넘게 각종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사회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자괴감을 매일 토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위로해주고, 웃겨주고, 맞장구쳐주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빛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친구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부족한지도 정확하지 않았고, 무엇을 더 해야 면접에서 붙을 수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취업 준비를 그만두고, 꿈을 좇아 무엇을 한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학자금 대출 상환이 무서웠고, 부모님께 미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것을 하고 싶다'는 꿈이 없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저 '평범하게' 취업해서 단란한 가정 꾸미며 사는 게 소망의 전부였던 내 친구들에게 취업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뛰는 것 말고 인생의 다른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놈의 '평범'이 사실은 범상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도 어쩔 수 없었다.

모두 입을 모아 과잉 스펙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에 반기를 들고 토익, 학점 관리, 봉사 활동, 공모전 등 모든 것을 때려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들은 그렇게 꾸역꾸역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터널을 걷고 걸어 어떤 방식으로든 제 살길을 찾아 나섰다. '절친'은 결국 3년 만에 기자가 되었고, 대학원에 간 동기는 작년 말 박사 학위를 따서 올해 드디어 취업했다. 기간제 교사를 하는 친구도 있고, 전공과 무관하게 영업사원을 하는 친구도 있다. 취업한 이후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졌지만, 어찌됐든 제1터널은 통과했다.

악인은 없지만 패자는 가득한 전쟁

ⓒ더퀘스트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터널은 더 어둡고,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먹고살고 있지만, 내가 만나는 20대들은 더 좁고 긴 터널에서 버둥거리고 있다. 알바노조 활동을 하다 보면 '알바'하는 청춘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대부분 집도 가난하고, 학벌도 명문대는 아니고, 학점도 아주 높지는 않은데다, 토익 공부는 하긴 하지만 평균도 헉헉거리면서 맞춰가는 평범한 대학생들이다. 이 '평범한 대학생'들은 '알바'도 해야 하고, 그다지 쾌적하지 못한 주거 환경 속에서 취업도 준비해야 한다. 왜 '알바'를 하는지 물어보면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낮에는 논문 쓰고 밤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는 대학원생, 작곡과를 졸업했지만 취업 자리가 없어서 카페 '알바'를 하며 공부 중인 '알바', 지금은 '알바'지만 취업이 정 안되면 맥도날드에 말뚝(?) 박을 거라는 대학생,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번역 '알바'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호프집 '알바'를 동시에 하는 '알바'까지 모두 당장 돈을 벌어야 하고 벌고 있지만, '제대로 취업해서' 돈을 벌려고 준비 중이다. 어서 빨리 이 시급제의 늪에서 벗어나 사원증을 달고 커피를 마시며 출근하는 꿈을 꾼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당사자들이 느끼는 취업의 문은 잔인하도록 좁다. 그리고 미래에는 더 좁아질 것이다. 2008년인가, 작은 논술 학원의 강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들에게 '꿈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세 명 모두 공무원이라고 답했다. 그럼 소원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공부 좀 그만하고 쉬는 것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그중 한 명은 그다음 날 코피를 쏟았는데, 알고 보니 학원을 4개, 학습지를 5개나 하고 있었다. 원장은 이 사건을 어머님이 알면 분명 학원을 줄이려고 할 텐데, 자기 학원이 도마에 오를까봐 전전긍긍했다. 열 살밖에 안된 아이가 밤 12시까지 숙제를 하다 잠들고 '공무원이 돼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지' 하며 되뇌는 이 나라가 지금 제정신인가.

"왜 하필 이 시대, 이 나라에 그것도 내가,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 해요."

편집자 서문에 나오는 이 말을 보고 순간 소름이 확 돋았다. 6년 전, '절친'이 취업을 준비하며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이 시대, 이 나라에, 내가, 태어났다는 것이 절망스러운 사람은 과거로부터 시작해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저주 같은 좌절이 담겨 있는 한마디처럼 들렸다.

<대한민국 취업 전쟁 보고서>(더퀘스트, 2014년 11월 펴냄)의 취업 준비생 세 명은 담담한 말투로 이젠 일상이 된 취업 전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세대 전쟁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한정된 일자리를 갖고 지키려는 자와 비집고 들어가려는 자가 경쟁하는 이 시대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리멸렬한 일상 끝에 쟁취한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보고서다. 본인에겐 너무나 힘든 불안이지만 모두 다 불안하고 그걸 또 다 견디고 있으니까, 너무나 평범한 불안이라서 꾹꾹 참고 견디며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는 사람이 100만 명에 육박하는 대한민국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취업 전쟁은 대한민국 20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니잡, 호출형 근로 계약, 시간제 일자리 등의 세계적인 문제이며 여성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황예랑, 정은주, 김외현 기자의 나라별, 세대별 분석을 통해 20대의 취업 문제, 30대 여성들의 육아 대 일의 문제, 40대 경력 단절 여성들의 재취업 문제와 50∼60대 여성들의 저임금 일자리 문제의 현실을 살펴볼 수 있다.

책 말미, 노정태의 분석처럼 이제 <달려라 하니>의 '나쁜 기지배 나예리'는 없다. 누구나 쉽게 하니가 되라고 이야기하지만 이 시대는 타고난 신분을 바꿀 수 없는 시대다. 부유한 집에서 사랑받고 자라면 성격도 좋은데다 학벌까지 좋다. 대학에 가서도 기회가 많고, 취업 준비도 돈 걱정 없이 몰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하니들은 학벌도, 실력도, 외모도, 기회조차도 나예리를 따라갈 수 없다. 그런 20대에게 '20대 개새끼론'이니, '눈을 낮추라'느니 하는 좌우의 공격은 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현실이 어떤 것인지 모른 채 하는 말이다.


"왜 하필 이 시대, 이 나라에 그것도 내가, 태어났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취업 준비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꼭 봤으면 좋겠다. 아마도 1970∼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취업하여 열심히 살아왔을 부모들 말이다. 무엇이 취업 준비생을 힘들게 만드는지, 세 차례의 상담을 통해 상세하게 취업 준비생의 심리 분석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김환 박사의 세심함이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의 자녀가 '백수'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익명의 청춘들에게는 눈을 낮추라고 이야기하지만 친구의 자녀에게 '너는 어디 취직했니?'라는 말을 건네는 어르신들 때문에 도저히 눈을 낮출 수 없는 청춘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누구는 어디에 취업했다더라'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불안과 좌절, 초조함으로 점철된 가슴에 작은 위로를 건네주길 바란다.

7080세대가 88만 원 세대에게 위로를 건네기 위한 이해의 차원에서 이 책이 필요하다면, 중규직이라는 해괴한 해법을 내놓으며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는 소리를 해대는 정부에게는 이러한 사태의 해결을 위해 이 책이 읽힐 필요가 있다. 얼마나 더 치열하게 살아야 헌법 32조의 근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해줄 것인지 물어야 한다. 아프면 환자일 뿐 다른 무엇도 아니다. 환자에겐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 꿈쩍도 안 할 것 같은 이 무거운 현실을 짊어지고 사는 청춘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도 이 책의 몫이겠지만, 그 현실을 움직이는 데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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