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보다 사흘 전엔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대통령 최측근으로 통하는 정윤회 씨의 딸이 승마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고 국회에서 주장했다. 문체부는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기자 브리핑까지 열었지만 이 일로 유진룡에게 진작 박혔던 미운털은 빠지지 않는 대못이 됐다는 얘기가 나돈다. (…)"
지난 7월 21일자 <동아일보>의 '김순덕 칼럼'에 적힌 이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정국 속에 폭풍의 핵으로 떠오른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교체 배경에 정 씨가 얽혀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최근 보도돼 파문이 일고 있는 정윤회 씨의 문체부 인사 개입설과 맥락이 일치한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유 전 장관을 청와대 집무실로 부른 뒤 수첩을 꺼내 문체부 국장과 과장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는 의혹이다. 유 전 장관은 "어디서 들었는지 대충 정확한 정황 이야기"라고 폭로해 의혹을 뒷받침했다.
<동아일보> 칼럼과 최근 의혹을 종합하면 한 줄로 이어진다. 정 씨의 인사 개입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와 갈등을 겪은 유 전 장관도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것. 그리고 이는 최근 '정윤회 국정개입 파문'이 불거지기 전부터 문체부 주변의 알 사람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조차 '정윤회 인사 개입'의 여파로 물러난 게 사실이라면 파장은 커진다.
실제로 후임 장관이 확정되지 않았고 1차관도 공석인 상황에서 단행된 문체부장관 인사는 아무도 예상 못했다. 그것도 '면직'. 문책성 인사라는 뜻이다. 유 전 장관은 면직 처분을 받은 7월 17일, 퇴임식도 열지 않고 짐을 쌌다. 박 대통령이 국정공백을 초래하면서까지 유 장관을 서둘러 면직 처분한 까닭을 두고 당시에도 뒷말이 많았다.
첫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그가 "내각 총사퇴"를 제안해 박 대통령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추측이 나왔다. 내각 총사퇴 제안을 박 대통령이 "그만 하세요"라고 제지하며 거부하자 유 전 장관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유 전 장관은 이로 인해 바른 말 하는 '소신 장관'이라는 세간의 칭찬을 얻었지만 박 대통령에겐 '찍혔다'. 박 대통령과 유 장관의 거리가 결정적으로 멀어진 계기였다고 한다.
둘째, 유 전 장관이 장관 취임 초부터 인사 문제로 청와대와 갈등이 잦았다는 설이다. 산하기관의 국·실장, 기관장 인사와 관련해 유 전 장관의 인사권이 청와대에 의해 제약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일례로 2013년 3월,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인사를 두고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고 사장은 대선 때 박 대통령 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인물. 당시 유 전 장관이 고 사장 인사에 반대하자 박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해 관철시켰다는 소문도 들렸다.
인사에 관해 유 전 장관이 청와대와 맞붙은 일은 박근혜 정부가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서 '면직'됐다. 아리랑TV 부사장 등의 인사와 관련해 당시 청와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등과 빚은 갈등 끝에 물러났었다. 인사 청탁을 폭로한 죄라고들 했다.
당시 그가 물러나며 문광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담긴 '소오강호(笑傲江湖 : 강호의 패권싸움을 손톱의 때 만큼도 여기지 않음)'란 말이 화제가 됐다. 이로 인해 붙은 소신 장관 이미지를 박 대통령이 높이 사 문체부 장관에 임명했으나, 박 대통령도 그의 '소오강호'에 된서리를 맞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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