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과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거론하며 직접 교체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유진룡 전 장관의 증언으로 뒷받침되자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와 여권 전체가 당혹감에 휩싸였다.
유 전 장관은 당시 청와대로 불려가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지시를 직접 받았던 주무장관이다. 박 대통령이 이름까지 거명하며 교체를 지시한 노 모 체육국장과 진 모 체육정책과장은 '비선 실세' 의혹을 사고 있는 정윤회 씨의 딸이 출전한 승마대회에서 판정시비가 일자 감사를 진행한 인사들이다.
유 전 장관은 두 사람의 교체 과정에 박 대통령의 측근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김종 문체부 2차관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유 전 장관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이 정윤회 씨의 딸까지 챙긴 셈이어서 정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실제로 입증되는 증거가 된다. 정윤회→이재만→박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인사 개입의 고리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인사 조치를 직접 지시한 박 대통령도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그동안 정 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담긴 문건 유출 사태의 파장이 김기춘 비서실장까지는 구두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박 대통령은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논란을 일축한 게 전부였다.
경우에 따라선 출범 초부터 '깜깜이 인사'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의 인사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청와대로선 '최후의 방어선'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유 전 장관의 폭로와 관련해 "인사는 장관의 책임 하에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민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인사 조치 지시가 실제로 있었냐는 질문에도 "제가 어제 보도된 내용은 사실 확인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 안에 다 함축돼 있다"고만 했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사안 자체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확인이라는 절차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곤혹스러워했다.
전직 주무장관의 폭로로 쑥대밭이 된 쪽은 문체부도 마찬가지. 이재만 비서관과 함께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된 김종 차관은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항변하며 유 전 장관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우상일 문체부 체육국장이 김 차관에게 "여야 싸움으로 몰아가야"라는 내용의 메모를 전달하다 발각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청와대와 정부가 허둥대는 사이 새누리당에선 유진룡 전 장관을 거칠게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도대체 왜 이런 분을 장관에 임명해서 나라 일을 맡겼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라며 "인사가 만사라고 했는데 최소한의 됨됨이라도 좀 검증을 해서 장관을 시켜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언론에서 대통령을 모셨던 전직 비서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는데, 이제는 전직 장관인 유진룡 씨까지 나서고 있다"며 "한 나라의 장관을 지낸 분까지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동참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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