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만(臺灣, 타이완)의 한 정치 광고가 매우 흥미를 끌고 있다. 대만의 집권당인 국민당이 야당인 민진당을 비난하며 찍은 광고에 한 여자가 한복을 입고 등장한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민진당이 중국과 대만 간의 경제협력에 관한 입법을 저지할 동안 한국은 중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어 대만보다 훨씬 앞서나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최근 대만에서 부는 여당 국민당에 대한 비난과 그로 인한 11월 29일 지방선거에서의 악영향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을 활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국민당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민진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와 비슷한 대만, 대만의 혐한(嫌韓)과 라이벌 의식
여기에서 더욱 재미있는 것은 국민당이 이러한 총체적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1992년 이후 형성된 '혐한'(嫌韓) 분위기와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이용하려던 것이다. '그렇게 싫은 한국이 중국과의 FTA로 우리보다 앞서 나간다, 만약 민진당이 중국과의 경제협력기본협정에 관한 세부 입법에 반대만 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한국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민진당은 잘못했다' 뭐 이런 식의 논리를 펴기 위해 한국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럼 대만은 왜 우리를 싫어할까? 사실 대만과 우리는 과거 '형제의 나라'였다고 한다. 우리와 상당히 비슷한 과거와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그럴 것이다.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이루어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인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1945년 8월 15일 같은 날 광복을 맞았던 과거, 같은 민족끼리 이념대립의 희생양으로 미국의 영향 하에서 사회주의와 대치하고 있는 현재 등 상당히 많은 역사가 우리와 유사하다. 당시에는 우리가 중국 대륙을 '중공'(中共), 대만을 '자유중국'(自由中國)이라고 부르며 함께 군사 훈련을 하던 적도 있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대만을 가보면 거리의 풍경, 민풍(民風) 등이 우리와 상당히 비슷해 우리나라를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들 정도이다.
하지만 문제는 1992년에 발생했던 한 사건에서 기인한다. 당시 우리는 대만을 한 '나라'로 인정하며, 그들에게 한 나라에 하나뿐인 '대사관'을 주었다. 이때 새로운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과의 국교수립이 눈앞에 이르러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중국은 자신들과 국교를 수립하려면 자신들의 철칙인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하나의 중국은 대만을 나라로 인정하지 말고, 그들을 중국의 일부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즉, 대만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대사관을 둘 자격이 없으니, 대만 대사관 자리를 자신들에게 양보하고 대만은 '영사관'으로 격하시키라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중국과의 교류가 대세라고 생각했기에 우리 역시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형제의 나라', '운명공동체' 등을 부르짖던 한국이 이익을 위해서 매몰차게 자신을 버린 것을 보며 대만 사람들이 느꼈던 커다란 배신감은 쉽게 상상이 간다.
이 외에도 대만이 우리에게 느끼는 라이벌 의식은 우리의 경제 성장에서 비롯된다. 천하쟁패를 위해 공산당과 자웅을 겨루었던 국민당이 결국 패전하여 대만으로 피난 갔지만, 중국 내 지식인과 각종 문화재들을 싸가지고 갔던 것은 매우 유명한 일이다. 그 보물들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대북(臺北,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이다. 보물이 얼마나 많은지 일설에 의하면 소장품들을 3개월 단위로 바꾸어 전시해도 10년이 넘게 걸린다고 할 정도이다. 국민당의 대만 집권 초기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낼 수 있었던 이면에도 이 때 가지고 간 중국의 보물들이 큰 힘이 되었다는 것 역시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대만은 비슷한 과거와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일제의 수탈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한국과는 출발부터가 달랐다. 비록 과거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며 대만과 한국이 함께 거론되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대만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 특유의 불굴의 정신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IMF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현재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단순한 비교지만, 1인당 GDP를 보면 현재 대만은 2만 1572 달러(세계 40위)인데 반해 우리는 2만 8739 달러(세계 29위)로 격차를 보이고 있다. 비슷한 과거를 갖고 있지만, 아무 것도 없었고 비교조차 안 됐던 한국이 이렇게 성장하자 대만에서 라이벌 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한 예로, 대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인데, 그중에서도 한국전은 마치 우리의 축구 한일전처럼 매우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대만의 대(對)중국 경제협력, 앞 차의 교훈
대만 사람들이 여당인 국민당에게 등을 돌린 근본적인 원인은 지나친 그 '친중'(親中) 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현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집권 초기에는 친중 정책으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전의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집권 시 독립을 주장하여, 중국과 일촉즉발의 긴장된 관계가 지속되었는데,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 집권 이후 친중으로 돌아서면서 중국과 대만의 관계, 즉 양안(兩岸, 바다를 끼고 서로 마주보다) 관계가 대폭 개선되었던 것이다. 또한 2010년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사실상의 FTA이지만, 나라 대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사용) 체결 후,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대만은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럼 대체 대만 민중들이 친중 정책을 비난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는 현재 중국과의 FTA 체결로 장밋빛 꿈을 꾸고 있는 한국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대만은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을 맺은 후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등 경제 성장은 확실하게 달성했다. 하지만, 수많은 대만의 기업들이 대만에 비해 낮은 임금과 넓은 시장을 향해 중국 대륙으로 몰려가면서 오히려 대만에 대한 투자가 급감했다. 대만 상인들은 중국 대륙에서 2000억 달러를 투자하며, 2500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지만, 정작 대만에서는 여전히 4%라는 높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즉, 대만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결국 대만의 부유층들에게만 이익을 가져다주고, 오히려 대만의 서민들은 손해만 입게 됐다. 대만 서민들의 이와 같은 불만은 결국 11월 29일의 지방선거에서 참패라는 씁쓸한 결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비슷한 길을 걸어온 대만.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 행해졌지만, 대만의 대중경제협력에서의 문제점은 분명히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부자들의 지갑만 두껍게 하고, 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렵게 만든 점 등은 분명히 우리가 피해야 할 최악의 상황이다. 앞차가 빠진 경험은 뒤차의 스승이 된다는 뜻의 '전차지감, 후차지사'(前車之鑑, 後車之師)라는 말이 있듯이 대만의 실패는 우리에게 매우 좋은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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