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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당시 수뇌부 무능 고발 문건…지금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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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당시 수뇌부 무능 고발 문건…지금 어디에?

[군사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비극] <21> 합동참모본부의 실체 (6)

미국의 1981년에 이란 인질구출 작전이 각 군의 손발이 맞지 않아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그 이듬해에 브라운 합참의장은 퇴임연설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작전이 진행될 당시에 내 부하는 여비서 한 명 밖에 없었다. 각 군에서 파견 나온 합참의 장교들은 각 군의 로비스트이거나 정보원들이었다"

천안함 사건에 군의 준비태세와 대응이 처참한 실패로 판명되자 6월 이상의 합참의장은 폭탄선언을 했다. 합참 전 장교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합참 전 장교들이 한쪽 발은 합참에, 또 다른 한쪽 발은 계룡대에 올려놓고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해선 안 된다. 이런 조직 이기주의가 육·해·공군의 합동성을 저해하는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막상 작전이 실패하고 나면 합참과 각 군, 특히 해군은 감정적 앙금과 갈등을 표출하는 양상으로 치닫는다. 천안함 사건 이후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그리고 1년이 더 지난 2011년 12월에 이상한 사건이 터진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차장을 역임했던 O모(육사 36기) 준장은 한미연합사 화력처장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고 있었다. 군 검찰단 지휘를 받는 수사관들이 그의 사무실과 용산의 숙소를 쳐들어와 각종 자료와 노트북을 압수하고, 이어 2주간 강도 높게 조사한다.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라고 했다. 그리고 이듬해 초에 그는 조용히 옷을 벗는다.

필자는 그의 동기생을 통해 만남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여, 직접 휴대전화 메시지로 재차 만남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필자가 취재한 바로는 그는 A4 용지 약 300장에 이르는 방대한 원고를 집필하여 출판을 앞두고 있었으나 군 검찰이 이를 알고 급습하여 출판을 좌절시킨 것이다. 이 원고에는 천안함 사건 직후 합참에서 예하 부대를 조사한 내용이 전부 수록되어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서 합참 수뇌부의 작전 관계자들이 어떻게 대비를 했고, 그것이 왜 실패했는지, 이후 혼란 상황에서 군 수뇌부가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무엇인가 조작하고 기만하는 아수라장이었다는 걸 기록한 고발장이다.

그는 이를 출판하고 군 수뇌부의 무능을 고발하는 일종의 대국민 양심선언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사건 직후 합참은 어떻게든 여론의 질타로부터 피해 가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쳤다. 북한의 도발이 아니라 국내 여론의 질타가 더 두려웠던 것이다. 합참의 장교들은 인사권자인 참모총장과 지휘권자인 합참의장 사이에서 요동쳤다.

국가의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국민은 누굴 믿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국민들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사회가 마비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의 국민에 대한 통제 기능 유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규모 재난과 같은 국가 위기상황을 실증적으로 분석해보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 정작 국민은 그럴 정도로 동요하지 않는데 향후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는 국가 엘리트들이 먼저 공황 상태에 빠진다. 레베카 솔닛은 그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이를 '엘리트 패닉'이라고 개념화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진 엘리트들이 시민 안전보다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다가 재난을 더 악화시키는 경로를 추적한다.

엘리트 패닉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중이 패닉에 빠질 것"이라는 엘리트들의 예상 때문이다. 대중을 신뢰하지 않는 엘리트들의 불안한 정신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이 무엇이었나? 합참 전체가 혼란과 기만의 수렁에 처박힌 엘리트 패닉이 아니었던가? 부하를 믿지 못하고 상관을 믿지 못하고, 유니폼이 다른 타군을 믿지 못하는 불안한 정신이 냉철한 군인정신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런 가운데 작전에 실패한 조직이지만 합참의 근무는 고되었다. 멍청한 조직일수록 더 바쁘게 마련이다. 매일 쏟아지는 정보, 수시로 반복해야 할 보고서 작성, 상급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번잡스러운 업무까지 합참의 일상은 고생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안함 사건이 3개월이 더 지난 6월경에 합동작전과장 박 모 대령(육사 41기)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러면 남아있는 장교들은 더 고달팠다. 각종 회의자료 작성하는 행정적인 일이 업무의 60%를 넘었다. 그들은 작전술의 전문가가 아니라 작전 행정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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