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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서 죽은 아들, 엄마는 왜 처벌 포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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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서 죽은 아들, 엄마는 왜 처벌 포기했나

[신해철 사망, 이젠 '환자 안전'이다 <3>·끝]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하는 김영희 씨

가수 신해철 씨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유족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 비슷한 사고를 겪은 이들일 것이다. 9살 정종현 군의 어머니 김영희 씨도 그런 경우다. 김 씨는 지난 2010년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4년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 종현이 어머니 김영희 씨는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여전히 대구와 서울을 오가고 있다. <프레시안>과 만난 지난 24일에도 김 씨는 꼭두새벽부터 국회에 갔다. 일명 '종현이 법'이라고 불리는 환자안전법을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사고가 생기면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 김 씨의 소망이자 환자안전법의 취지다.

김 씨는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마지막 임시회의가 12월에 열린다는데, 환자안전법이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통과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함께 지난 1일부터 '환자안전법 국회 신속 통과 촉구 대국민 1만 명 문자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편집자

"종현이라면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랄까?"

사고가 난 지 4년이 넘었지만, 종현이 엄마 김영희 씨는 아직도 가끔 혼자 눈물을 쏟는다.

백혈병을 진단받았던 종현이(9)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2010년 5월 29일이었다. 치료 예후가 좋았던 종현이는 종류가 다른 마지막 항암 주사 두 대를 각각 정맥과 척수강에 맞고 갑자기 전신 마비 증세를 보이다가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긴 항암 치료 일정의 끝을 앞두고, 아무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김 씨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처음에는 극단적인 생각만 들었다. "누군가 해코지를 하고, 나도 죽을까"도 생각했다. 그러다 한 기사를 봤다. 부인이 산부인과에서 사망했는데, 남편이 병원 복도에서 담당 의사를 죽이고 본인도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저런 결말이 무슨 의미가 있지?'
김 씨는 '종현이라면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랄까?' 생각했다. "너무 힘들지만, 종현이는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겐 그 결심이 중요했어요." (☞관련 기사 : 주사 한번 맞고 죽은 9살 종현이…"의료사고가 남 일?")

▲ 2009년 7월, 당시 8세였던 정종현 군. ⓒ김영희

"병원이 시스템을 고치기를 바랐어요"

처음에는 아들이 왜 떠나야했는지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종현이가 2007년 10월부터 3년간 수도 없이 정맥에 맞았으나 아무 문제없었던 항암 주사의 이름은 빈크리스틴이다. 단, 이 항암제를 정맥이 아닌 척수강에 투여하면 환자는 전신 마비를 겪으며 열흘 안에 사망한다. 종현이가 보였던 증상과 같았다. 김 씨는 척수강에 놓아야 할 다른 항암 주사와 정맥에 놓아야 할 빈크리스틴이 뒤바뀌었으리라고 확신했다.

김 씨는 2010년 민사 소송을 걸었다. 2년간 이어진 소송의 시작이었다. 다만, 처벌을 원하지는 않았다. 주사를 놓은 의사의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다시는 종현이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병원이 환자 안전 시스템을 마련하기를 바랐다.

"또 다른 종현이가 안 나오려면 처벌을 포기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진실이 밝혀지면 개인을 처벌하는 방향이 아니라 병원이 반성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했어요. 주사를 잘못 놓은 사람이 있겠지만, 그건 병원이 시스템으로 막았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김 씨는 생각했다. '그날 병원 측이 정맥과 척수강에 놓아야 할 두 가지 주사를 동시에 맞히지 않았더라면, 빈크리스틴에 반드시 정맥에만 투여하라는 주의 문구만 있었더라면, 종현이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공부를 거듭한 김 씨는 이미 외국에서는 그런 매뉴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가 이미 오래 전에 이슈가 된 터였다. 그러다 다른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의 시작이었다.

"(재발 방지 대책이 없다면) 한 아이가 항암 치료받다가 죽는 것만 되잖아요. 환자안전법이 있어야 또 다른 희생자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환자안전법 제정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김영희 씨.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일명 '종현이 법', 환자안전법

환자안전법은 의료사고가 났을 때 병원이나 의료진이 자율적으로 보고하는 대신, 제보자의 신변을 철저히 보호하는 법이다. 의료 과실 처벌과 무관하게 익명으로 수집된 정보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토대로 쓰인다. 국가는 이 정보들을 모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환자 안전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환자안전법을 일종의 '환자 안전 매뉴얼'을 만드는 법안이라고 생각했다. 연구가 거듭될수록, 매뉴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매뉴얼만 지킨다고 환자 안전이 저절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보고를 받고 실수를 보완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미 그런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보고가 제대로 되려면 내부 보고자의 익명성을 보장해야 해요. 지금은 환자와 의사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잖아요. (의료사고가 나면) 환자는 의사더러 '가재는 게 편'이라고 비난하고, 의사는 일부 환자가 폭력을 휘두르니 '의료인 폭행 가중 처벌법'을 제정하자고 해요. 두 갈등의 골을 해결하고 싶어요."
지난 1월 발의된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합의 후 묻히는 의료사고들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을 구상하는 동안이었던 2012년 8월, 김 씨는 병원 측과도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병원 측이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다. 하지만 합의 과정에서 그동안 수없이 묻혔을 의료사고들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았다.
"처음에 병원 측이 제시한 합의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첫째, 이런 사망 사실이 있다. 둘째, 합의금을 지급한다. 셋째,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고, 이 사건을 언론 등에 공표하지 않는다. 어기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그래서 그 합의문에 서명 못하겠다고 했어요. 환자안전법도 제정해야 하지만, 언론에도 알려야 해요. 병원뿐 아니라 국민도 사고에서 배워야 하는데, 그런(세상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덮는) 합의는 해도 찜찜할 것 같았어요."

최종 합의문에는 종현이의 사망 원인이 '약물 투약 오류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고, 병원 측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며, 병원 내에 종현이 추모 액자를 건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종현이 사고를 언론에 공표하지 않는다는 문구는 빠졌다.

이런 식으로 '묻혔을' 다른 합의들을 생각하니, '종현이 사고 이전에 누군가가 세상에 알려줬으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더 간절히 들었다.
▲ 환자안전법 제정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김영희 씨.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의료사고 해결 방안, 사회가 같이 마련해야"

김 씨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함께 '종현이와 환자안전법'이라는 이름의 홈페이지를 꾸리고 있다. 자신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난 1일부터는 이곳을 통해 환자안전법 제정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바로 가기 : http://www.psafety.kr/)

특히 의료사고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본인을 해치는 행동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의료사고로 가족을 잃고 자살 사이트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고 했다. 가족을 잃은 심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납골당에 갈 때마다 종현이 아빠랑 저랑 종현이한테 편지글을 썼어요. 종현이가 제일 바라는 건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다른 가족들에게도 주고 싶어요. 사고를 당한 가족들에게는 본인을 해치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싶고, 사회 전체에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해결할 방안을 같이 마련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김 씨는 환자안전법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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