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환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대학엔 가서 뭐하나 하고 대학을 비웃고 있을 때, 동국대학교 농업경제학과 입학을 결심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던 분이고,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깨우쳐주신 교수님이셨습니다. 이렇듯 34년 전 주종환 교수 존함 석자만 듣고서 선생님이 계신 대학과 학과를 결정했던 저로서는 선생님을 향한 그리움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뵙던 1981년 어느 봄날, 교내 식당 한켠에서 열린 신입생 환영식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첫마디를 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주종환 올시다”라고 입을 여시던 그 모습, 그 소리에 가슴이 얼마나 뛰었던지…. 철들고 나서 처음으로 남자를 보면서 설레었던 경험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해방 후 시대의 혼돈이 밀어닥쳤을 때 밀항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대 경제학부와 대학원(1954년)을 졸업하고 조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가난과 궁핍에 찌든 참담한 나라, 인구의 80%가 농민이던 한국의 현실에서 농민과 농촌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선생님. ‘토지공개념’을 일찍이 제창하였고, 당시엔 그 개념조차 생소했던 농업개방의 문제를 제기하며 <농업경제학연구>(1974), <농업기계화와 영농조직>(1981) 등을 집필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학문적 역량과 시대의 변화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경제학자였습니다. 80년대부터 재벌 중심의 경제가 가져올 폐해를 지적하며<재벌경제론>(1985)을, 그리고 <한국자본주의사론>(1988), <한국현실경제와 이론>(1994)을 집필하셨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의 ‘식민지근대화론’의 한국적 ‘아류’이자 그 추종자들을 통렬히 비판한 <뉴라이트의 실체 그리고 한나라당>(2008)(일본에서 <식민지근대화론 비판>이란 제목으로 출판)으로 이어졌습니다.
2008년 촛불시위가 타오를 때 따님과 함께 시청광장을 지키시던 백발신사의 그 꼿꼿함, 그리고 2011년 진보통합이라는 무거운 과제에 힘겨워하고 있을 때 전화로 격려와 당부를 하시던 그 따뜻한 목소리를 이제 그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런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핵심을 놓치지 않는 지성의 힘, 늘 기품과 웃음을 잃지 않으며 후배들을 격려하시던 지식인, 자신이 옳다 생각하면 나이를 잊고 열정적으로 함께 하던 주종환 선생님.
진보적 경제학자, 평화통일운동가였던 선생님의 삶과 가르침은 민주주의와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우리의 가슴깊이 살고 살아 어두운 현실에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11월 22일, 너무도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신 교수님이 그립습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것들 다 잊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남겨진 모든 것, 우리가 잊지 않고 실천하겠습니다.
부디 편안한 영면의 길에 드시길 바랍니다.
교수님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14년 11월 25일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빌면서 제자 조승수 올림
약력 및 저서주종환 교수는 일본 동경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한 후 동국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한국일보사 논설위원, 동국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농과대학 학장·도서관장, 한국농업경제학회 회장,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초대 이사장, (사)민족화합운동연합 상임의장, 시민사회남북연석회의 추진위원회 공동의장, 청소년 평화통일 숲가꾸기 상임의장, 중립화 통일연구회 공동의장, 6·15 공동선언 실현 남측본부 공동의장 및 고문 등을 역임했다.제 7회 다산경제학상과 한국경제학상 등을 수상했고, 경제학개론, 한국자본주의사론, 한국현실경제와 이론, 재벌경제학, 사람중심 희망의 공동체사회를 만들자, 덴마크형 복지국가를 위하여 등 16권의 저서와 4권의 역서 및 100여 편의 논문과 시사평론이 있다< 저 서 >농업경제학연구 1974농업기계화와 영농조직 1981재벌경제학 1985재벌경제론 1985경제학 1985한국적 경제학 1985경제원론 1987한국자본주의사론 1988현대농업정책론 1989한국자본주의론 1989한국농업정책 평론집 1994한국 현실경제와 이론 1994뉴라이트의 실체 그리고 한나라당 2008덴마크형 복지국가를 위하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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