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사법시스템 운용에 뿌리깊게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권력 살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지난 24일 '퍼거슨 시 흑인 청소년 무차별 사살 사건'을 일으킨 백인경찰에 대해 불기소 결정이 내려지면서 흑인사회의 분노가 폭발해 폭력사태로 비화됐다.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인근 퍼거슨 시를 중심으로 한 폭력사태는 미주리 주 정부가 25일 밤부터 주 방위군의 숫자를 기존의 세배인 2200명까지 늘려 투입하면서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워싱턴DC와 뉴욕, 로스앤젤레스, 댈러스, 애틀랜타 등 미국 주요도시에서도 심야 집회와 시위가 있었으나 폭력사태는 없었다. 하지만 미국 전역 곳곳에서 백인도 동참하는 항의시위가 있었고, 영국 런던에서는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손 들었으니 쏘지마"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등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사태가 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이 지난 24일 밤 시민운동가들과 전화통화를 갖고 퍼거슨 시 사법당국의 사건 처리에 대해 '신속하고 강도높은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사태 수습에 직접 나섰다. 미국 법무부가 퍼거슨 시 경찰이 조직적으로 시민권리를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리면 이를 금지하는 1994년 연방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퍼거슨 폭력사태의 의미(The Meaning of the Ferguson Riots)'라는 사설을 통해 '제2의 LA 폭동' 사태로 비화될 것인지 주목받고 있는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사태'에 대해 "미국의 사법체계가 인종이 다를 경우에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질타했다. 제도가 있어도 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따라 불신만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 진단은 한국의 사법체계가 "힘 없고 돈 없는" 계층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현실의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대배심에 자료만 주고 기소 결정 떠넘겨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의 대배심(시민들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 그러나 이 사건 대배심의 경우 백인이 대부분. 편집자)이 지난 8월 비무장 10대 소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한 백인 경찰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떤 결정이 나와도 분노와 실망을 초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 수사 담당자 로버트 맥컬러크 검사는 흑인사회에서 경찰과 한통속인 인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며, 이 민감한 사건을 최악의 방식으로 다뤄 사태를 최대한 악화시켰다.
첫번째, 그는 제이 닉슨 미주리 주 주지사가 임명하는 특별검사로 하여금 이 사건을 담당하는 방안을 거부했다. 또한 대배심 절차를 극도로 악용해 사법절차에 대해 불신을 초래했다. 원래 대배심에 앞서 검사는 수사를 해서 대배심원들에게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기소 여부에 대해 참고할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맥컬로크 검사는 대배심에 모든 것을 맡겨버렸다. 백인 경찰 대런 윌슨을 기소할지 여부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배심원들에게 방대한 자료를 넘겨 기소 여부를 결정하라고 떠넘겼다.
대배심의 결정은 검사 측에서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면 통상 며칠 내로 나온다. 이번 사건은 무려 3개월이나 걸렸다. 대배심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렇게 질질 끄는 대배심 절차로 맥컬러크 검사가 윌슨이 무죄방면되도록 분명한 목적을 갖고 고의적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증폭시켰다.
이것으로 부족했는지, 맥컬러크 검사는 대배심 결정 내용을 발표하는 과정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하루종일 발표를 늦추다가 대배심이 불기소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저녁 늦게 발표했다. 대배심 결정이 이뤄졌다는 소식에 이미 길거리에 몰려나온 주민들이 격분해 폭력사태를 일으킬 경우 대응하기 어려운 시각을 택한 것이다.
또한 맥컬러크 검사는 대배심이 불기소 결정에 이르게 된 과정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달하기보다는 마치 윌슨을 변호하는 듯이 발표했다.
퍼거슨 시 흑인 주민들은 마이클 브라운이 사살되기 전부터 지역경찰에 오랫동안 일상적으로 시달려왔다. 지역 경찰들은 벌금 적발 건수 채우기 등을 위해 가난하고 힘없는 주민들을 표적으로 삼아 걸칫하면 검문해 왔다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이런 경찰이라면 주민들에게 기피대상이고, 마치 점령군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분노는 뉴욕, 시카고, 오클랜드 등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경찰에 의해 젊은 흑인이 살해되는 일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흔한 사건이고, 흑인 부모들이라면 전국 어디에서건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총알 맞고도 영혼없는괴물처럼 달려들었다"
<프로퍼블리카>가 지난달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몇년 사이의 통계 조사 결과 젊은 흑인 남자가 젊은 백인 남자보다 무려 21배나 경찰에 의해 사살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는 많은 경찰관들이 흑인 남자들을 인간이라기보다는 도시에서 제거해야할 존재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윌슨이 대배심에서 진술한 내용에서도 이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윌슨은 총을 맞은 마이클 브라운에 대해 "내가 총을 쐈다는 것에 미쳐버린 듯 총알을 맞으면서도 영혼없는 괴물처럼 달려들었다"고 묘사했다(윌슨은 비무장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브라운에게 최소 6발을 쐈다. 편집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사건은 퍼거슨 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문제의 핵심을 짚은 것이다.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거리를 휩쓴 폭력사태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분노는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미국 시민사회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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