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합병을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심화되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 17일 하나금융그룹 경영진과의 첫 노사 회동이 결렬된 후, 외환은행이 전 직원을 상대로 '조기 합병 동의서'를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외환은행노동조합은 20일 성명을 통해 "조기 합병 동의서 추진 등 외환은행 직원들의 양심과 자존을 짓밟는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외환은행은 부점장협의회에서 합병 동의서 제출을 결정한 뒤, 산하 지점장 등을 소집해 서명을 완료하고 이어 전 직원을 대상으로 동의서 작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프레시안>이 입수한 동의서를 보면, "본인은 불확실한 금융 환경 및 치열한 경쟁의 위기 상황 속에서 은행과 조직원의 생존을 보장하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하나은행과의 미래비전을 위한 조기 통합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며, 조속한 조기 통합 추진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노조는 "사측의 숱한 협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직원의 88%가 조기 합병에 반대했음을 잘 알면서도, 외환은행이 8000명 직원에게 양심을 배반할 것을 강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 모든 일이 '조합-지주 간 대화' 결렬 후 하루이틀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앞서 외환은행노조는 지난달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직원들을 상대로 조기 합병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응답자(3493명)의 88.1%(3076명)가 "조기 합병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한국노총과 새정치민주연합도 논평을 통해 외환은행의 '동의서 요구'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노조가 대화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인데도 동의서를 요구하는 것은 누가 봐도 강압적인 양심의 자유 침해 행위이자, 노조와의 대화를 파탄내고 조기 합병을 밀어붙이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허영일 부대변인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공식 합병 계약을 체결한 뒤 '조기 통합'에 반대하는 노조원을 탄압하는 것은 '5년 동안 독립경영'이란 노조와의 합의를 백지화하고 노조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경영진의 횡포"라고 비판했다.
이어 "외환은행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인사발령과 징계 등의 협박을 서슴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대화를 원한다고 하는 '이중 플레이'는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교언영색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외환은행은 지난 10월 사업장을 벗어나 조합원 총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참석자 900여 명에 대한 대규모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가, '노조 탄압' 논란이 커지자 징계 규모를 대폭 축소한 바 있다.
한편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지난달 29일 공식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사측으로부터 조기 합병에 반대하는 직원들에 대한 '관리 압박'을 받아온 외환은행의 한 지점장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호소하다 심근경색으로 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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