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 넘는 긴 싸움을 통해 우리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해고법'임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마음대로 부려먹다가 3년이 되기 전에 폐기 처분하는 '해고 대책'입니다."
7년 전에도 비슷했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며 내놓은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보호법이 그들을 한 순간에 길거리로 내몰았다. 불 꺼진 마트에서의 농성, 몇 번의 강제 진압과 이어진 천막 투쟁, "반찬값 벌러나온 아줌마들이 무슨 파업이냐"는 비아냥…. 그 500일 동안, 그들은 영화 <카트>의 '선희'이고 '혜미'였다.
<카트>의 실제 배경이 된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대량 해고 사태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변향순 씨는 12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았다.
지금도 마트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변 씨는 "노조에 가입할 당시엔 구호도, 투쟁도 아무것도 몰랐다"면서 "지금도 (마트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 같은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511일의 파업 끝에 다시 계산대 앞에 섰지만, 노조 지도부 12명은 복직 대상에서 제외됐다.
울먹이는 그의 손을 옆에서 꼭 잡은 이경옥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은 당시 복직에서 제외된 지도부 중 한 명이다. 당시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이었던 그는 "비정규직 보호를 명목으로 제정된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10년 이상 일했던 비정규직들이 해고되는 것을 봐야 했다"며 "비정규직 고용 제한 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달 중으로 발표할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비정규직 고용 제한 기간을 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포함시킬 것을 검토 중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지난달 23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실제 만나본 30세 이상의 기간제 근로자들은 기간 연장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노동자 입장에선 '2년 안에' 실직하는 것보다 비정규직일지언정 '3년 안에' 실직하는 것이 더 오래 근무해 낫지 않겠느냐는 발상이다.
이 장관은 "당사자가 원하면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은 기간 연장이 아니라 기간제법의 폐지다. 7년 전의 악몽이 아직 그들에게 또렷하기 때문이다.
2006년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보호법(기간제법, 파견법)이 2007년 7월 시행을 앞두자, 이랜드그룹은 홈에버의 계산 업무를 외주화하기 위해 비정규 노동자를 무더기로 해고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한을 2년으로 제한해 그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간주토록 한 기간제법의 적용을 피해기 위한 '꼼수'였다.
하지만 문 의원의 뒤늦은 사과와 별개로, 그들이 만든 비정규직법의 굴레는 현재까지도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해고된 뒤 자살한 기간제 여직원의 사례만 봐도, 중앙회 측은 기간제법상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2년 동안 7차례에 걸쳐 2~6개월 씩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여성은 입사 2년이 되기 이틀 전 해고됐고,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때문에 노동계에선 그간 기간제와 관련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 원칙'임을 명시하고,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 근로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비정규직 사용의 '기간'을 제한하는 것이아니라,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쪽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이번 제한 기간 연장이 "이후 기간 제한없이 자유롭게 계약직을 사용하면서 '정규직으로의 채용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술수가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고, '민간 고용서비스 활성화'란 이름으로 유료 직업 소개소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고령자를 중심으로 파견직이란 불안정 일자리가 양산되고, 고용 불안 뿐만 아니라 민간업체를 통한 중간 착취 역시 확대될 수 있다.
<카트>의 주인공들이 "7년 전 우리들이 일손을 멈추고 막아서려고 했던 '악법'이 박근혜 정권 치하에서 더 치명적인 '악마의 법안'이 되어 나타났다"고 반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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