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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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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인터뷰] 영화 <카트>의 부지영 감독

"연예인 스케줄이에요."

영화 <카트>의 부지영 감독을 만나던 날, 약속 장소에 들어서던 부지영 감독을 소개하며 제작사 '명필름'의 관계자가 말했다. 오는 13일 <카트>의 개봉을 앞두고 부 감독이 얼마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지를 농담처럼 설명한 것이었다.

2007년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에서 출발한 영화 <카트>는 개봉도 전부터 반응이 뜨겁다. 그런 반응들을 보며 부 감독은 "많은 분들이 반가워하시는 걸 보면서 <카트> 같은 영화를 참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왜 그런 영화를 기다렸을까. 부지영 감독을 지난 5일 만났다.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상업영화, 그 영화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를 만든 부지영이라는 사람 이야기도 함께였다.

▲영화 <카트>의 부지영 감독. ⓒ프레시안(최형락)


"싸우는 그들도 다 가족이 있다"…신문 사회면이 말하지 않는 몇 겹의 고민들

영화 <카트>는 '현실적'이다. 극으로 만든, 지어낸 이야기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현실에서 가져왔다. 영화를 본 뒤, 그 '현실'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영화 속 많은 에피소드들이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농성장에 색색의 종이학이 매달려 있던 사소한 모습까지. (☞관련 기사 보기 : <카트>는 '영화'가 아니다)

"현실은 더하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요. 절대 과장이 아닌데. 오히려 영화에서는 더 '유하게' 만들었다면 만들었지. 현실이 너무 드라마틱하니까."

사실 고통은 점점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면, 처음에는 놀랐다가도 어느 순간 그러려니 하게 된다. 부 감독의 말대로 "뭔가 상식적이지 않은 사회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도, "피곤하니까" 그 생각을 곧 잊어버린다.

"세상을, 사회를 신경 쓰기에는 다들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잖아요. 저도 그럴 때가 많아요. 영화로 선동할 수는 없죠. 그저 자기 안의 닫힌 마음이 깨지는 순간이 있다면 좋겠어요."

그 순간을 위해, 부 감독은 '사람'에 집중한 듯 보였다. '진상' 고객 때문에 탈의실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던 혜미(문정희 분)도, 정규직이 되기 직전 해고 당하고 '투사'로 변신해가는 선희(염정아 분)도,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된 태영(도경수 분)도 모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싸우는 사람들도 다 가족이 있잖아요. 회사랑 싸우는 노동자들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가족이 있다는 것을 인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또 그것 때문에 가족과 싸우기도 하죠. 그런데 신문 사회면에는 이런 몇 겹의 고민은 사라지고, 노조원, 회사와 싸우고 떼 쓰는 사람이라는 간단한 프레임만으로 사건을 보여주죠. 영화는 이야기니까, 그 프레임을 탈피할 수 있거든요. 이 사람들의 힘든 싸움을 인간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것이 가족의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 감독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 영화"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 있다. "언론에서 우리가 늘상 보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다고 '리얼리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토리에 선입견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 감독은 사실 그 자체보다 "이야기의 완결성"을 더 고민했단다.

태영의 성장과정이 보여주는 '희망적 암시' "최소한 이 아이는 다르지 않을까"

▲ 부지영 감독은 "시스템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에 대한 부 감독의 고민은 영화 <카트> 안의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특히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는지 물어봤다. 부 감독은 조연이었던 '최 과장(이승준 분)'을 꼽았다.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들을 '탄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했던 회사 간부였다.

"최 과장이 악(惡)인지, 악이 아닌지, 이승준 씨랑 엄청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제 결론은 '이 캐릭터는 악이 아니다'였어요. 이 캐릭터만 없애면 좋아지는 건가요? 자기도 모르는 거예요. 구조 안에서 누군가를 억압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시스템을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카트>는 사람의 이야기지만, 결국 사회 구조 안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였던것이다. 일할 때는 바빠서 급식비 내는 것도 '까먹더니', 잘린 뒤에는 집은 내팽겨치고 싸우는 엄마 선희를 아들 태영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태영이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장면은, 본인 스스로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의 싸움에 냉랭한 우리 자신의 모순을 드러내는 듯 보였다. 물론 그 역시도 사회 구조의 산물일지 모른다.

"태영의 이야기는 '서브 플롯(sub plot)'입니다. 선희의 갈등과 태영의 갈등이 언젠가 만나 화해의 과정으로 승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투쟁하는 이들에게도 당연히 자식이 있잖아요. 그 자식들은 부모의 파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엄마가 태영을 돌봐주지 못하면서 태영은 '알바'를 하게 되는데, 결국 그 알바를 하면서 생기는 갈등을 엄마를 통해 해소하죠."

부지영 감독은 태영의 그런 성장 과정이 "희망적 암시"라고 했다. 구체적인 의미를 다시 물어봤다.

"엄마를 통해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고, 엄마를 이해하게 된 태영이 사회에 나갔을 때, 그나마 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최소한 이 아이는 좀 다르지 않을까."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하는 현실의 수많은 '태영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한 번 품어보는 것"이란다.

"미완의 마지막 장면? '해피엔딩'이라 생각했다"

도경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른바 핫한 '아이돌'의 '노동을 소재로 한 영화 출연'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대해 조금 더 물어봤다. 부 감독은 "캐스팅 디렉터가 보여준 사진만 보고는 워낙 개구쟁이 같아 보여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런데 실제로 만나니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굉장히 밝은 친구인 줄 알았는데, 말수도 없고 차분했어요. 여러 이야기는 안 했고, 대본 리딩을 하는데 꽤 잘하더라고요. 서너 번 하니까 대사의 느낌을 살리는 걸 보고 '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순발력이 있더라고요. 생각도 못한 친구를 캐스팅하게 돼서 저야말로 고마워요. 제가 뭘 알았겠어요. 전 '엑소'가 뭔지도 아무 것도 몰랐는데.(웃음)"

부지영 감독은 노동을 소재로 상업영화를 만드는 시도 자체가 "시작부터 전형을 깼던 것이기 때문에 아이돌 캐스팅이나 SM엔터테인먼트라는 기업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연기를 잘 하는데 아이돌이라고 못할 건 또 뭐가 있냐"면서.

그런데 1993년생 도경수에게 이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됐을까.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그 친구가 '이해는 잘 안 되는데 좋은 내용 같다'고 했어요. 본인 이야기와도 좀 맞물리기도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기집에서 '알바'를 하기도 했었다더라고요. 다만 부모에게 반항을 한다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부분은 천성적으로 (도경수의) 캐릭터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속에 담아두는 성격이어서 엄마와 부딪히는 장면을 연기할 때 어렵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연기할 때는 잘 했어요."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편집까지 했던 부지영 감독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과 아쉬운 장면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몇 번을 봐도 늘 '짠한' 장면은 선희와 혜미가 공중전화로 통화하는 장면, 태영이가 선희에게 '알바비'를 주는 장면, 그리고 제일 마지막 장면이에요. 앞의 두 장면은 굉장히 감성적인 장면인데도 배우들이 잘 누르고 담담하게 표현해줘서 숨겨진 그들의 감정까지도 상상하게 했어요. 아쉬운 장면은 시간관계상 보여주지 못하고 잘린 부분이에요. 초반에 매장 점거를 하면서 한 사람씩 손을 드는 비장한 장면이랑 제일 처음에 조회 장면을 좀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는데 지루할까봐 잘랐어요. 물론 후회는 없어요."

부 감독이 "볼 때 마다 점점 더 짠해진다"는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는 싸움의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비록 자막을 통해 현실에서의 '결말'은 관객에게 전하지만, 영화 안에서 그들의 싸움은 미완이다. 부지영 감독은 그 결말을 "해피엔딩이었다"고 말한다.

"회사의 회유로 복직하게 된 동료들이 다시 나와 계속 싸우는 것을 보여준다면, 영화의 스토리 안에서는 충분히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현실과 결부시켜 생각해보더라도, 이 싸움은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잖아요. 여기서 끝맺음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의 결말 외에 다른 결말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이들이 연대해서 싸운다는 것 외에 뭐가 더 있어야 할까요?"

"비정규직 문제 해법?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우는 연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영화 <카트>는 노동자 이야기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다. 여성 노동자도 우리 사회의 소수지만, 여성 비정규직은 그 안에서도 또 소수다. 사람들은 여성 노동을 여전히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저 생활비 벌러 나오는 거거든요. 반찬값 아니고요" 하는 선희의 대사는 그런 시선에 대한 일침이다.

"중요한 포인트죠. 마트나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대부분이 재취업한 40~50대에요. 다 비정규직이죠. 그들은 가정 안에서 가사노동과 감정노동, 돌봄노동을 하는데, 나와서도 또 그런 노동을 합니다. 관리자들도 여성의 노동을 하찮게 생각해요. 늘 집에서 하는 일, 나와서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죠. 비전문적인 노동이라는 거에요. 고마워할 줄 모르는 거죠."

"그런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잘리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노동을 가치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비하하게 된다"는 부 감독은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라며 잠깐 말이 없었다.

"일단 그냥 노동의 대가만이라도 제대로 지불하면 좋겠다, 계약 기간이라도 지켰으면 좋겠다. 사실 제가 정책 전문가는 아니니까 뾰족한 답을 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카트>에서도 정규직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싸우잖아요. 이건 굉장히 중요하죠. 법이 있어도 그 법이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사람들끼리 연대하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뿔뿔히 흩어져 있으면, 무기력하면, 회사는 그걸 악용하잖아요."

부 감독 역시 여성이다. 전작들을 보더라도 여성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은 특별해 보인다. 계기가 있었을까? 부 감독은 "결혼과 출산"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았다.

"성장 과정에서 주변에 여자가 '바글바글'하긴 했어요. 아빠 없이 엄마, 할머니, 언니들과 살았고 우연하게도 여중·여고·여대를 나왔어요. 결혼 전에는 독립적으로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고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육아 문제 같은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페미니즘 책은 읽은 게 없고 대학 때도 여성학 수업 하나 안 들었어요.(웃음)"

부 감독의 여성에 대한 고민이 본인의 삶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가 '사람의 삶'에 집중하는 이유를 더 잘 알 것 같았다.

"지금도 저는 제 살 깎아먹으며 살고 있어요. 애들이 11살, 10살인데 집 치울 시간도 없고, 애들한테 책 사다주는 것도 매일 잊어버리고요. 남편이랑 살가운 시간을 가져본 적도 없어요."

남편도 '영화인'이다. 남편은 <카트>의 촬영감독을 맡았다. 부모가 함께 일에 바빴던 석달 동안, 제주에서 사는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도 '싱글맘' 혜미는 농성장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아이 아빠가 있었더라도 그랬을지 모른다. "여자들 싸우는데 남자들이 애 봐주지 않잖아요"라며 부 감독은 웃었지만,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살고 있어서 더 "왜 (육아를)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만 하는지 의문"이라고 부 감독은 말했다. "지금까지의 삶도 내내 투쟁이었다"면서.

▲ <카트>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여성 비정규직'의 이야기다. ⓒ프레시안(최형락)


대학 내내 본 영화라곤 2편이 전부였던 부지영이 영화 감독이 되기까지…

삶은 '투쟁'이지만, 영화가 주는 "몰입의 즐거움"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영화광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대학 시절 본 영화라고는 <파업전야>와 <시네마 천국> 단 두 편 뿐이라는 그가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었을까 궁금했다.

"다 하찮은 이유들인데.(웃음) 우선 어렸을 때 'TV광(狂)'이었어요. 영상매체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런데 드라마와 영화는 정말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TV에서는 같은 배우가 여러 작품에 나오잖아요. 저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걸 딱 알겠더라고요. 그런데 영화는, 대부분 외화를 봤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뒤가 궁금했어요. 스크린 속 영화가 삶으로 보였던 거죠. 경외감을 갖게 하는 매체였어요.

두 번째 이유는 제가 어린 시절 4~5년 정도 그림을 배웠는데, 그림이 저에게 '몰입의 즐거움'을 알려줬어요. 대학 졸업 후 영화사 마케팅 일을 우연히 하게됐는데, 그 일은 잘 안 맞았어요. 그런데 그때 영화를 한꺼번에 많이 보게 됐고, 어느 순간 내가 그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몰입의 즐거움'을 다시 찾고 싶었죠."

그래서 사표를 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정부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지 궁금하다"는 말로 마지막 질문을 대신했다.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 즈음, 하필 정부는 '문제의' 비정규직법을 다시 손보겠다고 밑작업이 한창이다.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을 늘리는 것이 당사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부 감독의 답변은 이랬다.

"아마 우리가 원하는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상상, 이상한 프레임으로 영화를 읽지 않으실까.(웃음)"

▲부지영 감독이 생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법이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사람들끼리 연대하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부 감독의 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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