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으로부터 '70억 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했다. 해당 노동자는 자살 시도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파업 노동자를 옥죄는 '손배·가압류 폭탄'에 대한 논란은 확산될 전망이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울산 비정규직지회 관계자에 따르면, 6일 새벽 현대차 울산공장 엔진변속기 사업부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성모(38) 씨가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앞서 지난 4월에도 같은 엔진변속기 사업부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해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성 씨는 자살 시도 전 새벽 3시46분께 조합원들과의 모바일 단체 채팅창에 "조합원들 모두 미안하다. 저 너무 힘들어 죽을란다. 제가 죽으면 꼭 정규직 들어가서 편히 살라. 현대한테 꼭 이겨라. 더럽고 치사한 나라(에서) 살기 싫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성 씨는 지난 9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승소해 정규직 지위가 인정된 원고 중 한 명이지만, 현대차가 곧바로 항소하면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울산지회는 긴급 쟁의대책위원회를 소집한 뒤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 예정이다.
법원 판결에도 정규직 전환은 미뤄졌지만, 오히려 수십억 원대의 '손배 폭탄'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다. 울산지법은 지난달 23일 성 씨를 비롯한 사내하청 노조원 122명에게 "현대차에 7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10년 울산지회가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벌인 공장 점거 파업과 관련해 법원이 잇따라 거액의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당초 현대차는 이 사건과 관련해 총 323명을 상대로 7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사측과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취하 및 신규채용 등에 합의한 67명에 대해서는 소를 취하했다. 법원 판결 이후 성 씨는 동료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에 대한 스트레스와 억울함 등을 표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파업 노동자 죽음으로 내모는 '손배 폭탄'…자살 잇따라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수백억 원 대의 손해배상이 청구돼,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가 65억 원의 손해배상을 판결을 받고 분신 자살했다. 배 씨는 자살 전 "6개월 이상 급여를 받은 적이 없다. 이틀 뒤면 월급날이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없을 것"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10개월 뒤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이었던 김주익 씨가 역시 손배·가압류 압박에 시달리다 높이 35m 크레인에 목을 맸다. 그는 유서에 "손배·가압류는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만들려는 노무 정책"이라며 분노했다.
배 씨의 죽음 이후 10년이 지난 최근에도 법원 판결의 추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쟁의 행위가 일어난 대다수의 사업장에서 유행처럼 번지며 배상 규모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수원지법은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경찰과 쌍용차에 46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현대차 역시 2010년 파업과 관련해 제기한 7건의 손해배상소송 가운데 지금까지 6건의 소송에서 모두 185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지난해 1월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씨는 회사로부터 158억 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된 뒤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원"이라는 유서를 넘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의 죽음 1년 뒤인 지난 1월 부산지법은 한진중공업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청구한 158억 원 가운데 59억9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동조합에 청구된 '손배 폭탄'은 올해 7월을 기준으로 1691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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