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를 권유할 때 KT의 모습은 '살아있는 지옥'의 모습이에요. 2주 동안 매일 한두 시간씩 (명퇴를 압박하는) 면담을 시켜요. 나는 안 바뀌는데 면담자는 계속 바뀌지요. 지사장, 팀장, 지부장, 노사협력팀에서도 나오고. 계속 상대가 바뀝니다. 그들은 특별하게 트레이닝을 받은 사람이에요."
"왕따 때문에 못 견딘 거죠. 예를 들어 저녁에 회식이 있는데 저한테는 안 알려 준다거나,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못 하겠다고 다음에 하자거나 그런 거죠. 가장 괴로운 건 저를 도와준 사람이 직접 피해를 받는 거예요."
KT에서 명예퇴직을 거부한 노동자들이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명퇴 거부자들은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능력 밖의 업무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과 KT 새노조, 인권운동사랑방은 4일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이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에는 KT에서 명예퇴직을 거부한 뒤, 신설 조직인 CFT(Cross Function Team)에 배치된 노동자 2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와 16명(노조 활동자 8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 결과가 담겼다.
조사 결과 응답자 221명 중에 75%는 강압적인 명예퇴직 압력을 받았고, 명예퇴직을 거부했을 때 인사상 불이익을 경고받거나(57%), 기존 업무에서 배제되고(55.7%), 사내에서 집단 따돌림(12.7%)을 당했다고 답했다.
일례로 전화국에서 일했던 KT 직원 ㄱ 씨는 명예퇴직을 거부한 뒤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그는 "어느 날 부서 전체에서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했다"며 "나랑 친하던 직원들도 내 인사를 안 받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명예퇴직 대상자 ㄴ 씨는 "회사 밖에서 만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둘이 타면 아는 척을 하고 대화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끼면 모른 체 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고 말했다.
"책상에 있을 필요가 왜 있어? 저기 가서 대기해"
업무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명예퇴직 대상이었던 ㄷ 팀장은 윗사람으로부터 "팀 업무를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심지어 "책상에 있을 필요가 왜 있어? 저기 가서 대기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는 "갈 데도 없고, 대기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컴퓨터 전산실에 딸린 작은 방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고 말했다.
팀 회의에서도 모욕감을 느꼈다. 그는 "팀장 일을 하지 말라고 해서 팀장들이 들어가는 주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더니, '왜 안 와'라고 해서 다시 나갔다"며 "들어가 보면, 나는 업무에 빠져서 업무를 모르는데 업무에 대해 묻고는 내가 업무도 모른다고 망신을 준다"고 덧붙였다.
다른 직군 출신이 전신주 심는 곳으로 전보 발령된 경우도 있었다. ㄹ 씨는 "더운 여름에 전신주 구덩이를 파러 곡괭이질을 했다"며 "내가 KT에 남았으니까 (회사에서) 고통을 주는데, 대학은 나왔지만 (자존심은) 다 갖다 버린다는 심정으로 적응하려 했다"고 말했다.
전신주 구덩이 파는 데 적응할 만하니, 회사는 ㄹ 씨를 아파트 단지에 고장 난 전화기 고치는 곳으로 보냈다. 그는 "아파트마다 배치도가 달라서 도면을 외울 정도로 숙련도와 적응 기간이 필요한데, 내가 도면을 조금 외울 만하면 또 다른 아파트 단지로 발령보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응답자들은 일반인보다 심한 강박증, 우울, 불안, 적대감, 편집증, 정신증 등을 겪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앞서 KT는 지난 4월 '특별 명퇴' 신청을 통해 8300여 명의 노동자를 퇴출시킨 바 있다.
이번 보고서에 대해 KT는 입장 자료를 내고 "회사가 일부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가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제시된 설문조사는 소규모를 대상으로 했을 뿐 아니라 검사 방식이 적절하지 않아 결과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KT는 "명예퇴직은 사업 합리화와 대규모 조직 개편의 하나로 당사자의 자발적 신청에 따라 이뤄졌다"며 "CFT 역시 현장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신설된 조직으로 직원 퇴출을 위한 부서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반면, KT새노조 등이 지난 4월 명예퇴직을 신청한 KT 직원 1055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응답자의 48%는 '잔류 시 가해질 불이익' 때문에 명예퇴직을 결정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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