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카카오톡 사태' 덕분에, 최근 들어 감청과 압수수색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감청과 압수수색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 따라서 이러한 강제 수사의 방법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야만 한다. 즉 법관은 수사기관이 청구한 내용을 살펴보고, 수사의 진행이라는 공익과 이로 인해 침해되는 기본권을 저울질하는 심사숙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결국 영장주의는 인권의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에 관한 한 우리네 보루가 그리 미덥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디지털의 특성을 제대로 감안하지 못한 맹목적인 '아날로그'형 영장주의의 실천이라는 현실이 작지 않은 모순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 미비와 법원의 부실한 통제가 어우러져, 소위 전방위적인 감청과 싹쓸이식 압수수색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난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감청을 생각해 보자. 고전적 의미의 감청은 통신이 끝나면 휘발되어 그 통신의 내용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경우를 상정한다. 과거 유선전화나 무전기 정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즉 그 실시간을 놓치면 더 이상 지득 또는 채록할 수 없기 때문에 종래의 감청은 당연히 실시간으로 진행되었고, 따라서 굳이 실시간이라는 요건을 법문에다 명시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통신비밀보호법이 상정하고 있는 아날로그 마인드이다.
혹자는 감청과 압수수색의 구분 기준을 시점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즉 송․수신의 완료 여부를 기준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감청은 영장의 발부 시점으로부터 '장래의 통신'을 대상으로 하고 압수수색은 '과거의 통신'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의 문제점은 긴급 감청에서 발생한다. 긴급 감청은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에 일단 감청을 시행하고 사후 영장을 발부받는 제도인데, 만약 며칠간 저장되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 대해 긴급 감청을 시행하고 영장을 신청한다면 이는 감청 영장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과거이므로 압수수색영장인 것인가? 논리적 모순을 피할 수 없다. 여기서의 '긴급'과 '사후' 영장의 의미는 놓쳐버릴 수 있는 실시간을 보호하겠다는 의미이고, 그 말은 결국 휘발성을 상정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요즘의 디지털 통신은 저절로 휘발되지 않는다. 디지털 통신에서의 휘발은 어디까지나 옵션일 뿐이다. 비휘발, 즉 저장 옵션이 선택되는 한 디지털 통신의 내용은 마치 결재를 위한 서류마냥 차곡차곡 쌓여 통신이 끝나면 한 권의 책처럼 추려져 수사기관에 전달된다. 그 결과 서버로 날아오는 통신 데이터를 서버 입구의 앞에서 수집하면 감청, 서버입구의 뒤에서 수집하면 압수수색이 된다. 즉 메기를 보(洑)의 앞에서 잡느냐 뒤에서 잡느냐의 차이일 뿐, 전화를 엿듣느냐 범행도구를 찾느냐의 차이가 아니다. 다시 말해 디지털 통신에 있어서는 감청과 압수수색의 본질은 같다. 둘 다 복사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디지털 통신의 경우 그 당사자와 내용이 과거 아날로그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일대일(1:1) 통신'이라는 말을 상기해 보라. 유선전화의 시대에 이런 말이 어디 어울리기나 하겠는가? 우리는 현재 무한 통신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여기서의 당사자는 이미 헤아릴 수 없다. 이 말은 곧, 1인에 대한 감청으로 침해되는 통신 비밀의 당사자가 더 이상 '일 더하기 일(1+1)'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감청 영장의 발부를 고민하는 법관은 '일 더하기 무한대(1+∞)'의 기본권침해를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아날로그 감청 영장은 가벼우나 디지털 감청 영장은 헤아릴 수 없이 무거운 것이라는 것이다.
'1+∞'의 부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위 '패킷 감청'이라 불리우는 회선 감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음성 통화를 제외한 모든 데이터 통신에 대한 감청을 말하는데, 쉽게 생각하면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모든 행위를 퍼 담는 것이다. 무선 공유기를 사용하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어떤 이가 패킷 감청의 대상이 되면, 그 사무실의 모든 사람이 함께 털리는 것을 알고 계시는가? 공유기가 임의로 분배하는 'MAC table'을 수사기관이 알아낼 방도가 없기 때문에, 과장님도 부장님도 동시에 털릴 수밖에 없다. 그 내용 또한 가관이다. 만약 요즘 유행하는 결합 상품을 신청한 집이라면, 서재에서 옷을 구입하는 엄마의 웹서핑부터 거실에서 IPTV로 보고 있는 아빠의 뉴스 프로그램은 물론 핸드폰으로 찍은 '셀카'를 클라우드에 백업하는 동생의 사진까지, 몽땅 털린다. 물론 감청 영장이 허가하는 대상은 혐의 사실과 관련된 사항(probable cause)일 뿐이므로 굳이 의미 없는 패킷들까지 열어보겠느냐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일단 맛을 봐야 단지 쓴지 구분이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점쟁이가 아닌 이상, 일단 털고 난 뒤에야 골라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압수수색에 있어서도 똑같다. 핸드폰이 이미 압수된 자에 대해 디지털 저장 매체의 압수수색을 허가한 어느 영장의 문구를 살펴보기로 하자. 영장은 그 대상에 관하여 "위의 장소․차량․신체에 소지․관리․보관․사용하고 있는 컴퓨터(PC), 카메라, 캠코더, 녹음기, 차량 네비게이션, 디지털 정보 저장 매체(USB, CD, HDD, MP3, PDA, 전자수첩, 디지털테이프, 프린트기, 기타 각종 메모리 등) 및 동기기․매체에 수록된 내용"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로 뭐가 더 있을 수 있을까? '모든 디지털 기기의 종합'이라는 표현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적어 놓은 것과 다름없다. 즉 무형의 정보인 디지털의 특성상 미리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상상 가능한 모든 기기를 쭉 나열해 놓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영장은 싹쓸이를 허가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를 두고 강제수사의 비례성이 충족된 영장이라 평가할 수 없음은 물론, 대상물을 특정해야 한다는 영장주의의 취지 또한 무색하여 '포괄 영장(general warrant)'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은 방도가 없기 때문이라고들 하면서, 현실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즉 디지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 보장을 위한 헌법 원리는 오히려 고도의 침해 수단으로 둔갑되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 한 개인의 내밀한 프라이버시가 영장의 정당성을 통해 철저하게 침탈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주소이다. 이는 곧 디지털에 관한 한 헌법 원리의 적용을 상당부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법관이 해야 할 숙고의 초점은, 단지 적법․위법의 절차적 문제만이 아니라 오히려 '프라이버시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권(reasonable expectation of privacy)에 관한 면밀한 심사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인 어떤 재판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사용자의 데이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당도하자, 해당 통신사가 현존하는 데이터는 물론 사용자가 이미 삭제한 데이터까지 복원시켜 담아준 사례이다. 이에 재판장은, 증인으로 나온 통신사 직원에게 그 영장이 삭제된 데이터를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통신사 직원은 대상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대상 기간 내의 데이터는 모두 해당한다고 답변하였다. 이에 재판장은, 그 대상 기간의 데이터 중 삭제된 데이터까지 포함한다는 표현이 영장에 나오는지를 재차 물었다. 통신사 직원은 답변은 이러했다. "삭제된 데이터까지 포함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상 기간 내의 데이터이기 때문에 증인은 위와 같이 생각합니다." 이에 재판장은 더 이상 아무런 질문을 하지 못했다. 이렇듯 채증의 대상으로서 디지털은, 디지털 고유의 특성 때문에 종래 아날로그 시대의 법리와 체계에 정합성을 가질 수 없다. 이미 끼워 맞추기는 한계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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