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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달마산에 천황사·도갑사·미황사·땅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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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월출산, 달마산에 천황사·도갑사·미황사·땅끝까지

11월 백두대간학교

백두대간학교(교장 이철승, 백두대간 전문가) 제47강은 11월 22(토)〜23(일)일 1박2일로, <땅끝기맥 월출산 구간>입니다. 만추의 남도 명산 월출산과 달마산을 오르며 그곳에 깃들인 천황사, 도갑사와 미황사 등 명찰을 순례하고 땅끝마을까지 거닐어봅니다. 제4기(백두대간 갈래치다) 12번째의, 편안하고 안전한 산행입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월출산 추경 ⓒ월출산국립공원

이철승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산행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백두대간학교 11월 산행은 쪽빛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산행을 즐길 수 있는 땅끝기맥 월출산과 달마산을 오릅니다.

월출산은 전라남도 강진군과 영암군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장흥, 서쪽으로는 해남, 남쪽으로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는 곳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월출산은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된 야외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보기 드문 절경을 자랑하며 ‘남한의 금강산’으로 불리고, 지리산, 내장산, 천관산,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최고봉인 천황봉(809m)을 중심으로 구정봉, 사자봉, 장군봉, 향로봉, 주지봉, 국사봉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가장 작은 면적(42㎢)이지만 경치는 으뜸입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신라 때에는 달이 난다하여 월나산(月奈山), 고려 때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고 불리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月出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월출산은 그 아름다운 자태로 인하여 수많은 예인들의 시구에 등장합니다. 고려시대 시인 김극기는 “월출산의 많은 기이한 모습을 실컷 들었거니, 그늘지며 개고 추위와 더위가 알맞도다”라고 노래하였고, 매월당 김시습은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이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라고 칭송하였으며, 고산 윤선도는 “월출산이 높더니만 매운 것이 안개로다.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왜랴. 두어라 해 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거두랴”라고 천황봉을 가린 안개를 안타까워했습니다.

달이 뜨는 월출산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으로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봄에는 만발한 진달래와 철쭉이 진홍빛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여름에는 수려한 암벽에서 떨어지는 가슴 후련한 폭포수와 천황봉을 에두르는 신비로운 안개로 변화무쌍함을 선사합니다. 가을에는 바람재의 일렁이는 억새꽃과 기암괴석 병풍을 배경삼아 절정의 단풍으로 맞이하며, 겨울에는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의 설경을 선사합니다. 월출산은 보는 방향, 시간, 계절 등에 따라 다양하고 독특한 모습으로 산객들을 맞이합니다.

남도의 짱뚱어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월출산에 오릅니다. <영암아리랑 노래비>를 지나 대나무숲 사이를 걷다보면 천황사입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후에 도선국사가 중창했다는 유서깊은 고찰입니다. 천황사 갈림길에서 좌측 구름다리를 향해 발길을 내딛습니다.

매봉을 지나 구름다리로 향하는 길은 급경사 오르막입니다. 약 40여분 정도 오르면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구름다리로 해발 604m에 길이 52m로 계곡 바닥에서 수직으로 120m에 달합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현기증에 몸이 저절로 움찔합니다. 아찔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월출산의 명물입니다.

구름다리를 지나 사자봉으로 향하는 땅끝기맥 마루금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많은 암봉과 계단을 오르고 넓은 바위를 오른 후 쇠난간과 계단, 사다리를 통과하여야 합니다. 주능선을 따라 약 한 시간 정도 걷다보면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입니다. 폭 1m, 높이 4m의 통천문을 지나면 월출산의 정상인 천황봉(天皇峰)이 지척입니다.

천황봉에 오릅니다. 천황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천하일품입니다. 남으로 둥둥 떠 있는 다도해가 그림처럼 다가오고 서쪽으로는 해남의 너른 벌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으며 멀리 장흥의 천관산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월출산 구름다리와 사자봉 ⓒ월출산국립공원

수려한 풍광을 가슴에 가득 담고 구정봉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월출산의 또다른 명물인 남근석을 지나며 이어 유명한 바람재입니다. 시원한 바람으로 맞이하는 바람재를 지나 베틀굴(음혈)을 거쳐 급경사를 오르면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9개의 웅덩이가 있는 구정봉입니다.

구정봉을 지나 서남쪽으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 걸으면 미왕재입니다. 수만 평의 억새밭이 펼쳐진 미왕재에서 가을바람에 유영하는 억새 속을 걷다보면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된 듯합니다. 억새를 뒤로 하고 산길 걸어 내려오면 도갑사입니다. 도갑사에서 첫날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남도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남도의 음식입니다. 산행 후 접하는 남도의 진미들은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와 진정한 힐링이 될 것입니다. 뭉텅뭉텅 썰어낸 늦가을 별미 삼치회와 막걸리 한 잔에 산행의 피로를 훌훌 털어버립니다. 함께 경치 나누고 마음 나눈 도반들과 왁자지껄 정담 나누며 남도의 밤을 즐기는 시간입니다. 아담한 한옥으로 자리를 옮겨 못 다한 이야기 나누고 아쉽지만 첫날 남도의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이튿날 새벽 안개가 드리운 두륜산을 바라보며 걷는 한가로운 산책으로 일정을 시작합니다. 정갈한 남도의 한정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달마산 바위능선을 병풍처럼 두르고 선 우리나라 최남단의 산사 미황사로 향합니다. 달마산은 삼황(三黃)이라 하여 불상과 바위, 석양빛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새벽 안개가 걷힐 무렵의 드러나는 흰 빛의 수직 암봉, 세 번만 절을 하면 삼천 배를 이룬다는 미황사 대웅전의 천불벽화, 그리고 미황사 마당에서 바라보는 황금빛 노을입니다.

미황사는 749년(신라 경덕왕 8) 의조(義照)화상이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달마산 중턱에 창건한 신라시대의 사찰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신라 경덕왕 때 인도 우전국에서 온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포구에 도착하였는데, 싣고 온 불경과 불상을 봉안할 곳을 찾아 의조가 미황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남도의 금강’이라 불리는 달마산은 높지는 않지만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위 능선과 억새풀, 상록수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봄에는 동백꽃과 진달래, 철쭉으로 수를 놓고, 가을에는 하얀 파도가 일렁이듯 끝없이 펼쳐진 억새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룹니다. 특히 산등성이에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흰색의 수직 암봉들은 서로서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기기묘묘 각양각색으로 촘촘히 붙어선 암봉들 사이로 이어진 능선은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달마산과 미황사 ⓒ휴이재

미황사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코스가 짧고 산길이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미황사를 출발해 병풍처럼 둘러선 달마산 정상을 거쳐 작은금샘을 지나 미황사로 내려오는 산행 길은 들쭉날쭉한 기암괴석, 수려한 암릉, 억새와 어우러진 상록수, 구름 흘러가는 다도해의 섬들과 함께 하는 최상의 코스입니다. 절 마당에서 단청 벗겨진 대웅보전을 바라보며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대한민국 육지의 최남단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산) 사자봉 땅끝(북위 34˚ 17' 38").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은성부에 이른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은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삼천리금수강산 방방곡곡 전체를 백두대간으로 보았습니다. 삼천리금수강산의 땅끝마을은 백두대간에서 이어진 땅끝기맥의 마지막 종착지이지만 그 맥은 바다로 이어져 제주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백두대간 마루금의 여맥이 바다를 거쳐 제주도로 이어지는 최남단 땅끝마을을 여기저기 걸어봅니다. 해변을 거닐고 전망대도 오르며 우리의 국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저 멀리 바다 속으로 이어진 제주도를 떠올리며 남도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시원하고 후련한 전복물회로 남도를 떠나는 아쉬움을 내려놓습니다. 함께 하셔서 햇살 따스한 은빛 갈대 속 남도의 농익은 가을을 마음껏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구간소개]

-산행월일 : 2014년 11월 22(토)~23(일)일

-산행출발 : 2014년 11월 22일(토) 오전 6시

-산행코스 : 1일차 천황사-구름다리-통천문삼거리-월출산-바람재-미왕재-도갑사

2일차 미황사-달마산-작은금샘-미황사-땅끝마을

-산행거리 : 1일차 - 약 6.1km

2일차 - 약 1.8km

-소요시간 : 1일차 - 약 5시간(충분한 휴식시간 포함)

2일차 - 약 1시간 30분(충분한 휴식시간 포함)

-난 이 도 : 1일차 - 중하(★☆)

2일차 - 하하(☆)

[산행계획]

여유있는 산행을 위해 일찍 출발합니다. 모든 산행은 전문산악가이드와 동행하며 '안전제일'로 진행합니다. 공인 등산가이드이신 이철승 교장대행선생님과 엄재용 선생님이 선두와 후미에서 함께 하며 편안하고 안전한 산행을 진행합니다.

<버스운행>

출발 10분 전에 탑승지에 도착하여 다은고속관광 <백두대간학교>에 탑승하세요. 김종선 기사님 전화번호는 010-3350-1055입니다.

11월 22일 오후

06:00 덕수궁 대한문 앞 출발(지하철 1,2호선 시청 2번 출구)

06:30 사당역 공영주차장 앞 출발(지하철 2,4호선 1번 출구)

06:40 양재역 서초구청 폭포 앞 출발(지하철 3호선 12번 출구)

06:50 경부고속도로 죽전(하행) 버스 승차장

07:00 경부고속도로 신갈(하행) 버스 스차장

<산행일정>

1일차(11월 22일)

11:30 영암 도착 - <중원회관>에서 짱뚱어탕으로 점심식사

12:50 천황탐방지원센터 - 스트레칭 산행 준비

13:00 천황사 - 산행 시작

구름다리

14:50 종주능선

14:55 통천문삼거리

15:05 월출산

15:50 바람재

16:05 구정봉

16:50 미왕재

18:00 도갑사 - 산행 마감/스트레칭 후 버스 탑승

18:30 <이학식당>에서 삼치회와 막걸리로 저녁식사

20:00 <흥부민박팬션> 숙소 배정(다인실) 및 세면

21:00 자유시간 및 친교의 시간

22:00 취침

2일차(11월 23일)

05:00 기상 - 산책 및 세면

06:30 아침식사 - <매화식당>에서 남도백반정식

07:50 미황사 도착 - 스트레칭 후 산행 시작

08:00 미황사 출발

08:15 헬리포트

08:50 달마산

09:00 작은금샘

09:20 미황사 - 산행 마감/미황사 탐방 후 버스 이동

10:30 땅끝마을/갈두항, 땅끝전망대 등 탐방

12:00 점심식사 - <보물선회식당>에서 전복물회와 막걸리로 뒤풀이

13:30 땅끝 출발

19:00 서울 도착 예정

*상기 시간 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월출산·달마산 구간> 산행도 ⓒ백두대간학교

[산행준비물]

등산복, 장갑, 등산모, 방풍의, 우의, 스틱, 물통,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버프(얼굴가리개)

<백두대간걸작선> 제47강 <월출산·달마산 구간> 1박2일 참가비는 22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5회 식사 겸 뒤풀이, 관람료, 가이드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백두대간학교 홈피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십시오

(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 ☞회원가입 바로가기 산행에 관한 문의는 이철승 교장선생님에게 해주세요(010-8727-0202). 아울러 백두대간학교 카페(☞백두대간학교 카페 바로가기)에도 꼭 놀러오세요. 백두대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12월 산행 안내]

-산행일 : 2014년 12월 20일(토)

-산행지 : 백두대간 소백산

-산행코스 : 어의곡탐방지원센터-어의곡갈림길-비로봉-주목군락지-천동리갈림길-천동탐방지원센터

-출발시각 : 19일(금) 오후 11시 덕수궁 출발

-거리 : 약 11.3km

-예상시간 : 약 6시간

-난이도 : 중중(★★)

▲월출산 억새 ⓒ월출산국립공원

[학습자료]

[땅끝기맥] 호남정맥 바람재(노적봉)에서 땅끝마을 사자봉까지 126km의 산줄기.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줄기차게 흐르다가 덕유산을 지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을 갈래친다. 금남호남정맥은 주화산에서 북으로 금남정맥을 흘려보내고 남으로 호남정맥의 줄기를 만들어 전라도 내륙과 해안지방을 구분 지어준다. 호남정맥은 백두대간의 종착지인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광양 땅 섬진강 하구에서 그 여맥을 다한다.

호남정맥의 웅치 부근 깃대봉 지나 헬기장인 바람재(노적봉)에서 북으로 흐르다 길게 타원형을 그리며 남도의 명산 국립공원 월출산을 빗어내고 잠시 낮게 흐르다 해남 기름진 땅에 걸출한 두륜산, 대둔산, 달마산, 도솔봉을 뿌려놓았다.

왼쪽으로는 강진만이, 정면으로는 완도 땅 일대의 광활한 바다와 서쪽으로는 진도 목포 앞 바다가 조망되는 기맥이다.

수려하고 걸출한 남도의 명산을 빗어내고 사자봉을 지나 땅끝탑이 있는 땅끝마을 바다에서 그 여맥을 다하는 산줄기이다. 땅끝에서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가장 긴 산줄기이다.

[월출산]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山體)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道岬山: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九井峯), 사자봉(獅子峯), 도갑봉(道岬峯), 주지봉(朱芝峯)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러왔다.

월출산은 수많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에 따라 하나의 거대한 수석(壽石)이라고 할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천하의 악산(惡山)이라고 할 수도 있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다. 도갑사(道岬寺)·무위사(無爲寺) 등의 사찰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 등을 비롯해, 뾰족한 암봉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 말기에는 9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북쪽의 용추폭포(龍湫瀑布), 동쪽의 구절폭포(九折瀑布), 남쪽의 금릉경포대(金陵鏡布臺) 등이 절경을 이룬다. 1978년에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길이 51m, 너비 1m의 구름다리를 놓았는데,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된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에 관한 것이다. 즉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천황사]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월출산(月出山) 사자봉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법화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46년(인조 24) 중창된 뒤 소규모 절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1947년 영암군 청년단체에서 수련장으로 쓰던 건물을 시주하여 법당을 삼았다. 1953년 주지 정업(正業)이 인법당을 건립하였으며, 1959년 칠성각을 조성하였다. 1976년 이종철이 주지로 부임한 후 불사를 진행해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 인법당과 칠성각이 있다. 인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해 아미타극락회상도·관세음보살입상도· 지장탱화·독성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법당에 붙여 지은 칠성각에는 산신과 칠성·독성을 탱화로 모시고 있다. 유물로 탑재와 부도 대좌, 석조(石槽) 등이 남아 있다. 이중 탑재는 모두 3조각이 전해지고 있으며, 석조는 가로 261cm, 세로 157cm 크기로 최근까지도 사용된 것이다. 경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60년대 후반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월출산 구름다리] 월출산국립공원 내 매봉과 사자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 월출산 구름다리는 월출산의 매봉과 사자봉을 연결할 목적으로 1978년 12월 11일에 개통하였다. 개통을 위해 도비와 군비, 산악회 성금 등으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기존에는 34시간 걸리던 매봉에서 사자봉까지의 시간이 불과 5분으로 단축되었다. 월출산 구름다리는 해발 고도 605m, 수직 120m의 높이에 건설되어 산악 지역 구름다리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월출산 구름다리는 개통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후화와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되자 2005년 5월 10일 철거되었다. 새로운 구름다리는 애초 2005년 말에 완공하기로 하였으나, 바람이 부는 등의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4개월이 늦어진 2006년 5월 12일에 재개통되었다. 1978년 준공 당시 구름다리는 길이 51m, 너비 60cm였으며, 2006년 재준공 당시는 길이 51m, 너비 1m로 넓어졌다. 2006년 재준공 이후 월출산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으며, 너비가 1m로 늘어남에 따라 양방향 통행이 가능해졌다

[도갑사]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사찰.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전기 1456년(세조 2) 수미(守眉)가 중건하였다. 도갑사 일주문을 지나 100m 가량 들어가면 국보 50호인 해탈문이 나온다. 조선 성종 4년(1473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로 건축양식이 대단히 독특하다. 해탈문 좌우 앞쪽 칸에 금강역사상이 다음 칸에는 보물 제1134호인 문수동자와 보현동자상이 모셔져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석조5층석탑, 수미왕사비가 있고, 절 100m 위 미륵전에는 보물 89호인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조선 세조 3년(1473년) 신미, 수미 두 왕사가 중창했던 곳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총 규모가 966간에 소속된 암자가 12개나 되었으며, 상주한 승려 수가 730명에 달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건물이 불타버렸다. 지금도 대웅전 뒤 천여 평의 빈터에는 주춧돌이 선명하게 군데군데 박혀 있고, 앞뜰에는 5m에 달하는, 스님들이 마실 물을 담아두는 석조의 크기가 도갑사의 옛 사세와 승려수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도갑사에 있는 문화재만으로도 볼거리가 충분하다. 하지만 도갑사 인근에도 볼거리가 있어 도갑사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영암읍에서 목포쪽으로 8㎞ 정도 달리면 구림사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군서장터를 지나 4㎞ 정도 오르다 보면 도갑사에 이르는 벚나무 길이 나온다. 벚꽃 필 때와 단풍들 때면 월출산 봉우리들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길 옆 구림천 계곡은 여름철에 피서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그 길목 오른편 주지봉의 산중턱에는 백제의 왕인박사가 수학했다는 문산재가 있다. 주변에 무위사, 월출산, 성기동 국민관광지, 왕인박사 유원지가 있다.

▲월출산이 보이는 풍경 ⓒ월출산국립공원

[달마산] 전라남도 해남군의 송지면 서정리와 북평면 서흥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470m).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의하면 1218년(고려 고종5) 이곳까지 표류한 남송의 배가 이 산을 보고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하여 마지않았더니 가히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살고 계실만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하여 지명이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으며, 달마대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산의 모습에 대하여 <청구도>에는 ‘석봉차악’(石峯嶽)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달마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능선부가 바위들로 연속하여 이루어져 있는 상황을 기술한 것이다. <조선지형도>에 실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여지도서>(해남)의 봉수조에 마산(麻山)으로, <해동여지도>(해남)에 달마산(達磨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 <청구도>(24첩 15면), <동여도>(12첩 4면), <대동여지도>(20첩 4면), <조선지지자료>(해남), <조선지형도>에는 달마산(達摩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료에 따라 한자의 표기가 다르고, 현대의 여러 향토 문헌에서도 다른 한자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지형도>에는 ‘달마산(達馬山)’이라고 표기한다. 이것은 잘못된 표기이다. <한국의 명산기>에 "국내에 전해오는 모든 문헌들이 한결같은데도 <현대지형도>에서만 달마산(達馬山)이라고 쓰고 있는데, 혹 일본식 표기를 그냥 따른 것이 아닌가 하고도 여겨지지만 어서 시정해주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산으로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봉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능선은 단조로운 산타기와는 달리 계속해서 정상으로만 이어지는 등반으로 멀리 해안 경관을 보는 즐거움이 함께 해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산이다.

산행은 약 6km, 3시간에 불과하지만 암릉, 억새, 다도해 조망 등 온갖 재미를 두루 볼 수 있다. 특히 바위능선과 함께 억새풀과 상록수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것이 이 산의 특징이다. 또한 산 전체가 규암으로 되어 있다.

산을 오르는 도중 돌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덜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산행이 쉽지만은 않으며 곳곳에 단절된 바위 암벽이 있어 혼자 등반하기보다는 여럿이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향토사학자에 의하면 이 산은 옛날의 송양현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해남군 현산·북평·송지 등 3개 면에 접하고 해남읍으로부터 약 28㎞ 떨어져 있다. 이처럼 3개 면에 위치하면서 두륜산과 대둔산의 맥을 이어 현산이 머리라면 북평은 등, 송지는 가슴에 해당하는 형상이다. 또 사구·통호·송호 등의 산맥을 지맥으로 이루면서 한반도 최남단 땅끝 사자봉에 멈춘 듯하지만 바다로 맥을 끌고 나가 멀리 제주도 한라산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산이다.

이렇듯 수려한 산세가 유서깊은 천년 고찰 미황사를 있게 한 것이다. 또 옛날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에서 서로 주고받던 곳으로 현재 잔허가 남아 있으며 극심한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산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 한다. 이 고찰은 불교의 해로유입설(海路流入說)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경내 부도전의 부도조각이 특히 아름답고 대웅전 뒤쪽으로 산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꼭대기 고개 동쪽에 있는 천길이나 되는 벽 아래 미타혈이라는 구멍이 있는데 대패로 민 듯 칼로 깎은 듯한 것이 두세 사람은 들어가 앉을 만하다. 앞으로는 층대가 있어 창망한 바다와 산들이 서로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진다. 정상은 기암괴석이 들쑥날쑥 장식하고 있어 거대한 수석을 세워놓은 듯 수려하다

[미황사]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達磨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서 749년(경덕왕 8) 의조(義照)가 창건하였다. 사적비에 따르면, 749년 8월 한 척의 석선(石船)이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났는데, 의조가 제자 100여 명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에 오르니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 <법화경>과 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40성중(聖衆)·53선지식(善知識)·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一萬佛)을 모실 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토(因緣土)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미자(美字)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자(黃字)를 택한 것이라 한다. 이 창건설화는 <금강산 오십삼불설화>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달마전(達磨殿)·응진당(應眞堂)·명부전(冥府殿)·세심당(洗心堂)·요사채 등이 있으며, 기타 석조(石槽)·당간지주(幢竿支柱)·부도군(浮屠群)·사적비(事蹟碑) 등의 문화재가 있다.

이 중 미황사 응진당(美黃寺應眞堂)이 보물 제11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응진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1598년 만선(萬善)이 신축하였으며, 1971년 주지 이하덕(李河德)이 일부 보수하였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16나한 등의 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1598년에 중건한 뒤 1754년과 1761년에도 중수되었으며, 1982년의 수리 때 묵서(墨書)가 발견되어 건물의 연혁을 알 수 있었다.

내부에는 삼존불을 모셨고, 후불탱화(後佛幀?)가 걸려 있으며, 법당 뒤편의 목궤에 넣어둔 괘불(掛佛)은 오래된 것으로 몹시 상하였다.

이 절의 부도군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곳은 26기(基)의 부도와 설봉당(雪峯堂)·송파(松坡)·금하(錦河)·낭암(朗巖)·벽하(碧霞) 등 대사비(大師碑) 5기가 있다. 다른 한 곳에도 5기의 부도가 있으나 전부 도굴되어 흩어져 있다.

또한, 미황사 사적비는 1692년(숙종 18) 민암(閔?, 1634〜1692)이 세운 것으로서 초서로 된 높이 3m의 비인데, 옥개석 위에 용을 얹어 조각하였다. 이 밖에 절 뒷산 사자봉에는 ‘토말(土末)’이라 쓰인 비석이 있어 우리 나라 육지의 끝을 나타내고 있다.

[땅끝마을]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한반도의 최남단 마을. 토말(土末)·갈두마을이라고도 한다. 북위 34°17'38"에 위치한다. 해남읍 남쪽 43.5km 지점인 이곳은 함북 온성군 남양면(南陽面) 풍서동(豊西洞) 유원진(柔遠鎭:북위 43°0'39")과는 한반도에서 가장 긴 사선(斜線)으로 이어져, 극남과 극북을 이룬다. 최남선(崔南善)의 <조선상식문답>에 따르면, 땅끝의 해남에서 서울까지 1,000리, 서울에서 극북의 온성까지 2,000리를 헤아려, 이로부터 ‘3,000리 강산’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땅끝에 솟은 사자봉(獅子峰. 122m) 아래와 갈두마을 주민은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생활을 한다.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토말탑이 세워졌다. 사자봉 정상에 건립된 전망대에서는 흑일도·백일도·노화도 등 수려한 다도해가 한눈에 보인다. 남해를 향한 그 벼랑에는 “…맨 위가 백두산이며, 맨 아래가 이 사자봉이니라. 우리의 조상들이 이름하여 땅끝, 또는 토말이라 하였고…”라고 세긴 토말비(1981년 건립)가 서 있다.

대한민국 육지 최동단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동경 129 35 19)

대한민국 육지 최서단 :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동경 126˚ 06' 40")

대한민국 육지 최남단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북위 34˚ 17' 38")

대한민국 육지 최북단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도진리(북위 38 36 38)

[백두대간학교]

이철승 교장선생님은 지난 3년 백두대간학교 수석가이드로 활약해주셔서 낯익은 얼굴입니다. 산행 경력 30년의 저명한 M.T.디자이너이며 국가공인 숲길체험지도사(산림청), 응급처치법 강사(대한적십자)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배낭 하나 메고 지리산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렸습니다. 산으로 들어가면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며 얼굴이 환해집니다. 천상 산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연이어 정맥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백두대간 가이드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산악회 가이드, 기업체 가이드, 목적산악회 가이드 등으로 활약하며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가이드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지난 3년 인문학습원 백두대간학교 가이드로 동분서주했습니다.

백두대간 교양강좌, 트레킹학교 등의 실무를 도맡아 진행했고, 아이들과 뚜르드몽블랑(TMB), 몽블랑 일주 트레킹을 다녀왔으며, 흥덕고등학교 백두대간 종주대 <백두대간 하늘길를 걷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백두대간 숲길을 거닐며 바람과 햇살, 구름, 안개, 곤충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백두대간학교 제4기를 열며 얘기합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강이나 계곡을 건너지 않고 이어진 산줄기입니다. 백두에서 지리까지 이어진 분수령 산줄기입니다. 백두대간에서 1정간 13정맥이 갈래치고 또 기맥, 지맥으로 뻗어 한반도의 구석구석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산줄기에서 모든 강들이 시원하고 그 강줄기에 기대어 마을이 생기고 문화가 일구어졌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그 산줄기와 강줄기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우리가 기대어 사는 이 땅 한반도의 모든 산줄기가 백두대간입니다. 낙동정맥, 호남정맥, 땅끝기맥 등 정맥과 지맥, 기맥을 모두 아우른 백두대간입니다.

지난 3년에 이어 앞으로의 백두대간학교는 이 땅 곳곳으로 갈래친 백두대간을 찾아갑니다. 앞으로 백두대간학교는 다음과 같이 진행합니다.

하나, 백두대간학교의 원래 취지대로 백두대간 걸작 구간 산행을 계속합니다.

둘, 백두대간에서 갈래친 정맥, 기맥의 걸작 구간도 찾아갑니다.

셋, 월별, 계절별로 특별히 아름다운 산줄기를 찾아갑니다.

넷, 산행과 문화유적 탐방을 아울러서 인문학적 소양도 풍부하도록 합니다.

다섯, 참가자들이 희망하시는 산줄기를 추가할 수 있도록 합니다(전체 일정은 유지하지만, 꼭 고수하지는 않습니다).

여섯, 산행 후 계절별, 지역별 특색 있는 먹거리로 뒤풀이 자리를 마련합니다.

일곱, 멤버십 강화를 위해 정기 산행 이외에 비정기 산행(번개산행, 종주산행, 번개모임 등)도 추진합니다.

여덟, 참석하시는 모든 분들이 중심이 되는 산행을 이어갑니다.

아홉, 백두대간학교가 지향하는 산행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땅 여러 갈래로 백두대간의 아름답고 소중한 산줄기를 찾아갑니다. 그 아름다운 산줄기를 늘 함께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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