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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대통령의 초라한 낙마 기록, 청와대에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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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대통령의 초라한 낙마 기록, 청와대에 권한다

[프레시안 books] 밥 우드워드 · 칼 번스타인 <워터게이트 :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권력에 대한 과도한 욕망은 때로 부정행위를 부른다. 문제는 불법적인 행위 자체에도 있지만, 그런 행위가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을 때 더 심각해진다.

40여 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이 소설 같은 사건 역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해 괴물이 된 권력의 말로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도청 사건에서 시작한다. <워터게이트 :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오래된생각, 2014년 9월 펴냄)의 저자이자 이 사건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워싱턴의 작은 지역 언론에 불과했던 <워싱턴포스트>의 기자 초년생들이었다.

대선을 앞둔 1972년 6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카메라와 도청 장치를 가진 다섯 명의 남자가 민주당 본부에 불법 침입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는 사회부장의 전화 한 통으로 취재가 시작됐다.

백악관은 당시 사건을 '3류 좀도둑 사건'으로 치부했지만, 두 기자의 1년 8개월에 걸친 끈질긴 추적 끝에 닉슨의 대통령재선위원회는 물론, 백악관까지 이 사건에 개입됐다는 도청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탄탄한 지지율의 현직 미국 대통령을 낙마시킨,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에도 재선 성공한 닉슨…진짜 낙마 이유는?

ⓒ오래된생각
"현재 근무하는 백악관 직원이나 행정부에는 이 기괴한 사건에 관련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조사에 대해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문제로 인한 진정한 손실은 그런 일이 발생한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선거 운동에 지나치게 열심이다 보면 잘못된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상처를 주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다." (1972년 8월 29일 닉슨의 기자회견, 91쪽)

당시 닉슨의 자신감은 더없이 높은 상태였다. 대선 전부터 민주당 맥거번 후보를 워낙 큰 폭의 지지율로 따돌리고 있었던 데다, 재선에 성공해 1973년 자신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말 상처를 주는 것은 (…) 은폐"라며 백악관의 개입이 없었다고 단언하던 그 역시, 결국 자신이 뱉은 말에 스스로 걸려들었다.

닉슨 본인의 말처럼, 그가 임기 중 사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에 있지 않았다. 그는 임기 내내, 본인의 책임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워터게이트로 쏠린 사회 이슈를 자신에게 유리한 안보 이슈로 돌린다. 베트남전 상황을 이용해 "워터게이트 사건 조사가 국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안보 심리를 부추겼다. '닉슨 식 수습책'의 1단계, 이른바 '물타기'다.

당시 민주당 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던 닉슨으로서는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으로 인한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백악관 대변인은 구체적 논평을 거부했고, '좀도둑'들의 단순한 해프닝이라며 거리를 뒀다.

그 '좀도둑' 중 한 명이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닉슨의 선거 캠프인 재선위원회에서 일했다는 사실, 더 나아가 범인들이 갖고 있던 돈의 출처가 재선위원회이며 범행 직전 수십 차례 연락을 주고받으며 공모했다는 사실이 <워싱턴포스트>의 특종 보도로 연달아 밝혀졌지만, 닉슨은 이 이슈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의 댓글 사건이 드러나자 오히려 "여직원의 인권 침해"를 제기하며 맞선 우리의 대통령에 비하면 닉슨은 비교적 대담하지 못했던 셈이다.

하지만 재선 성공 이후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듬해 4월 존 미첼 재선위원장이 사건을 모의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닉슨은 "나는 몰랐다"며 발뺌했다. 대신 사건 수습을 위해 백악관 수석보좌관과 국내 담당 보좌관을 해임했다. 닉슨 식 해법의 2단계, '꼬리 자르기'였다.
마지막 3단계는 전형적인 확인 사살, '수사 방해'였다. CIA를 활용해 연방수사국(FBI)과 특검의 수사를 방해하고, 급기야는 1973년 10월 '닉슨 테이프' 제출을 요구하며 수사망을 좁혀오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했다. 이를 거부한 법무부 장관과 차관 역시 직에서 물러났다. 미국 언론이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부른 사건이다.

닉슨이 '정말로' 몰랐을 수도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까지 간 닉슨의 최측근 찰스 콜슨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통령의 사전 인지 여부가 아니었다. 의혹이 제기된 이상 이를 은폐하느냐, 아니면 끝까지 진실을 밝힐 것이냐가 그의 결말을 좌우할 마지막 선택지였던 셈이다. 닉슨은 결국 1974년 8월 8일, 하원의 탄핵에 앞서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2012년 '국정원 게이트' 사건

한 편의 '탐정 소설' 같은 기자들의 취재기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한국의 독자라면) 묘한 기시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른바 '국정원 게이트'라 불린 18대 대선의 국정원 개입 사건.

대선을 불과 8일 앞두고 드러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혹은 민주당의 '오피스텔 감금' 사건)과 선거일을 사흘 앞두고 심야에 발표된 수사 결과, 이후 의혹이 확산되자 가동된 새누리당의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비상 계획)'까지. (☞ 관련 기사 : '원·판·김·세' 수상한 5일, 대선을 주물렀다)

'한국판 워터게이트'라 불렸던 이 사건은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사건의 본질과 함께 이후의 수습책까지도 워터게이트 사건과 빼닮았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나서 국정원 여직원의 '유린된' 인권 문제를 제기했고(물타기), 이후 조직적 개입 정황이 드러나자 일부 요원들의 '일탈'이라며 발을 뺐다(꼬리 자르기). 진상 규명 여론이 거세질 때마다 새누리당 내에서 '컨틴전시 플랜'으로 불렸던 안보 이슈, 즉 NLL 대화록 문제 등을 꺼내들며 맞불을 놨다(다시 물타기).

'수사 외압'도 비슷했다. 당시 수사팀장의 폭로로 경찰 수뇌부의 수사 은폐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검찰 조사가 탄력을 받자 이번엔 검찰 수장의 '사생활' 문제를 제기해 결국 그를 낙마시켰다.

4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사건은 너무나도 닮았지만, 다른 점도 여럿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엔 <워싱턴포스트>의 집요한 보도를 가능하게 한 내부 고발자(제보자 '딥 스로트'의 정체는 사건 발생 33년 만인 2005년, FBI의 부국장이었던 윌리엄 마크 펠트로 밝혀졌다)가 있었지만, '국정원 게이트' 사건엔 내부 고발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 하나, <워싱턴포스트>의 보도 외에도 닉슨 하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특검과 의회의 끈질긴 조사와 연방대법원의 판결이었다. 특히 닉슨의 수사 외압 계획이 녹음된 육성 테이프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닉슨에게 테이프의 제출을 명령한 것은 대법원이었다. 국정원 사건에 대한 특검은커녕, '정치엔 개입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라는 '기묘한' 판결로 흐지부지 논란을 종결지은 우리의 국회 및 사법부의 상황과는 다르다.

두 기자의 생생한 취재기가 말해주는 것처럼, 닉슨을 권력의 정점에서 끌어내린 것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태 그 자체는 아니었다. 하원의 닉슨 탄핵안의 사유 역시 도청이 아닌, 사법 방해와 직권남용죄였다. 결국 닉슨 낙마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은폐와 부인이었다. 번역본 절판 뒤 30여 년 만에 국내에 재출간된 이 책을 청와대는 물론, 우리 정치권에 권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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