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정의롭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돌이켜보게 된다. 그 판단의 기준은 상대적이지만, 모두가 Yes라 말할 때 No라고 말하거나 먼저 나서서 용기 있는 소수가 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남의 눈치를 보고, 혹시나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몸을 사리는 한국 사회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인간 행복의 기본적인 조건은 '안전'
21일 광주트라우마센터 주관으로 열린 '치유의 인문학' 일곱 번째 강의에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용기 있는 소수와 정직한 다수'를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24년간 경찰생활과 범죄심리학으로 명성이 높은 표창원 전 교수는 지난 대선부터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하면서 용기 있는 소수로 돌아선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미국 프로파일링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표창원 전 교수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보통 행복의 구성요건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흔히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행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안전이라는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며 "세월호 참사로 슬픔과 공포, 절망, 안타까움, 분노에 사로잡혀있는 가운데 경기도 성남 판교에서 환풍구가 무너지고, 크고 작은 사고들로 우리는 안전 불감증에 사로잡혀있다"고 말했다.
또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하면 '공무원'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그는 "저도 공무원 출신이고, 24년간 경찰 공무원을 했기 때문에 공무원이 나쁘다고 꿈꿀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진정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게 아니고 안전한 밥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즐겁고 행복한 것을 찾을 수 없는 사회, 꿈을 꿀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한국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 프랜시스 스페이트 닮아
하나의 비유적인 사건으로 캐나다 프랜시스 스페이트호에 대한 이야기를 사례로 들었다.
프랜시스 스페이트는 1835년 11월 25일 폭우가 쏟아지고 파도가 거센 가운데 대서양을 항해하던 도중 풍랑을 맞아 좌초되면서 생존해있던 선원들의 이야기다. 당시 표류하던 선체에는 18명의 선원이 생존해 있었지만, 13일 동안 버티던 그들은 굶어 죽을 것이라는 극한 공포에 내몰려 한 명을 살해하자고 제안한다.
이후 2번째 희생자, 3번째 희생자 모두 나이가 어린 선원이 순서대로 뽑히게 됐다. 세 명까지 희생되고 난 후 나머지 선원들은 전원 구조가 됐으나 결국 조사가 이루어지고 법정에 서게 된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법정에서 유무죄를 반복하면서 최종 판결에 무죄 선고가 내렸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일부 선원이 당시 '제비뽑기'는 '조작'이었다는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이미 희생당할 선원들의 순서를 정해놓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희생당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던 선장, 기관사들이 주도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합의했던 것이다.
표창원 전 교수는 "이는 현재 우리 주변에 일어난 일들이 조금씩 떠오르게 하고, 어디에나 적용되는 이야기"라며 "우리사회는 극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데 그 희생이 공평하게 선정된 것인지, 과정은 정당했는지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고압전선이 지나가는 희생을 감수하라는 밀양 송전탑 문제, 원전 문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문제 등을 꼬집었다. 이렇게 현재 대다수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 살고 있는 방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의의 조건, 시대정신·국제적 정신 부합해야
그는 "동물에겐 없는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요소가 있다"며 "공평함, 공정함, 올바름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거나, 내가 그러한 상황에 참여했을 때, 생명을 살리는 옳은 일을 했을 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반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때, 정의롭지 않고, 공평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표창원 교수는 ‘정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하고, '정의'가 흔들리면 사회가 무너지고 ‘행복’도 없다는 것이다. 한편 정의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여겨져 두 가지의 치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표 교수는 "희대의 연쇄살인범들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한 이유는 이 사회가 잘못됐고,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누구든 마음대로 주장하거나, 어설픈 체계와 논리만 갖추면 정의로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의를 인정하기 위한 조건은 첫째는 시대정신에 부합할 것, 둘째는 국제적인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표 전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은 어렸을 때부터 용기라는 것을 쉽게 가질 수 없게 학습하고 있다고 한다. '나서지 말아라', '너도 당하면 어떡하니', '너도 불이익 당하면 어떡하니'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고, 가족과 자식들에게 말리는 세상이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표창원 전 교수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위험을 동반하고, 불이익이 예견되기 때문이다"라며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옳은 것을 택한 소수를 지지, 용기 있는 소수를 응원하고 함께 해주는 정직한 다수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프레시안=시민의소리 교류 기사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