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홍동의 공익 농민과 마을 시민에게 '기본소득 월급'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홍동의 공익 농민과 마을 시민에게 '기본소득 월급'을

[프레시안 books] 홍동마을 사람들 · 충남발전연구원 <마을 공화국의 꿈, 홍동마을 이야기>

홍동마을은 왠지 남의 마을 같지 않다. 홍동과 맺은 인연은 2002년쯤으로 올라간다. 문당환경농업마을이며 풀무학교를 처음 둘러봤다. 이른바 '마을 만들기' 선진 지역을 공부하려는 목적이었다. 풀무학교 전공부 장길섭 선생이 안내를 맡았다. 듣던 대로 홍동마을은 남달랐다. 기대 이상이었다.

150만 평이 넘는 오리 농법 유기농 수도작 단지는 장관이었다. 훗날 김해 봉하마을에서 배워갈 만했다. 마을 지도자였던 주형로 현 정농회장의 농사 공동체 철학은 거룩했다,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사랑하자." 그에게 유기농업은 일종의 신앙 같았다. 농사지어 모은 돈으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용역을 맡겨 '21세기 문당리 발전 100년 계획'도 준비해두고 있었다. '넉넉한 마을, 오순도순한 마을, 자연이 건강한 마을, 자연과 조화되는 마을'을 꿈꾸는 마을 공동체의 설계도였다. 농부들의 강고한 의지와 슬기로운 혜안이 경이로웠다.

그날 풀무학교 전공부 기숙사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밤을 새며 마을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깎아먹은 빨갛고 노란 고구마 맛은 기가 막혔다. 마침 열린 고등부 축제는 초고교급 수준으로 알찼다. 우선 자발적이고 창의적이었다. 1박 2일 만에 홍동마을이 발산하는 상서로운 향기와 풍미에 마음껏 취했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다.

그날 이후 수시로 홍동마을을 들락거렸다. 그러다 2007년쯤 중대한 결심을 했다. 홍동마을에 대한 그리움과 편애를 그만 접기로. 아예 스스로 홍동마을 사람이 되기로. 마침 문당리 마을에 사무국장 자리가 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주저 없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고 주형로 선생에게 면접을 봤다. '잔머리'만 주로 쓰며 괜히 '아웃사이더'의 표정을 하고 사는 얼치기 귀농인이라 적임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경쟁률은 높지 않았다. 저임금, 격무가 예정된 일자리였기 때문이다. 합격 통보를 받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기대감과 불안감이 한데 뒤섞였다.

하지만 끝내 '홍동마을 사람'이 되지 못했다. 핑계나 변명은 여러 가지다. 일단 들어가 살 집이 없었다. 이미 그 당시에도 홍동에는 떠나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더 많았다. 빈집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냉정히 해야 할 일을 정리하다보니, 막상 홍동마을에서 딱히 할 만한 역할이 마땅치 않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굳이 내가 아니라도 홍동마을은 잘 굴러가겠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살 집이 없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이미 홍동마을에는 전국 각지에서 다채로운 경력과 재주를 가진 귀농인들이 모여든 상태였다. 풀무학교가 배출한 토종 원주민들도 홍동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적재적소에 쓸 만한 인적자원들이 저마다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 마을 일꾼들이 앞장서서 홍동마을 공동체의 틀을 어느 정도 다져놓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 벌어진 일을 잘 운영하는 관리형 일꾼이 필요하지, 나같이 새로운 일을 꾀하는 기획형 일꾼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마을 시민들이 함께 사는 마을 공화국, 홍동마을

ⓒ한티재
그렇다고 홍동마을과 인연이 끝난 게 아니었다. 늘 마을연구소의 연구 대상 마을 제1호였다. 어디 가서 마을 공동체에 관한 강의를 할 때면 '내 멋대로 선정한 사람 사는 마을 공동체 1위'로 홍동마을을 꼽곤 한다. 2011년에 쓴 <마을 시민으로 사는 법> 책에서도 홍동마을 이야기는 빼놓지 않았다. '서로를 깨우치는 대안학교' 편에서 '농부 교사' 장길섭 선생의 사례를 들어 풀무학교와 홍동마을 이야기를 이렇게 세상에 타전했다.

"장길섭 씨는 교사라기보다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다. <녹색평론> 편집장을 지내다 홍성 홍동면에 귀농해 대안학교의 농업 교사와 작목반장을 겸하고 있다.

생태적인 농촌 공동체 마을의 중요한 사례지로 널리 알려진 홍동면. 그 중심에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가 있다. 일찍이 1958년에 생태적 무교회주의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학교다. 우리나라 대안 학교의 효시로 삼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장씨가 교사로 일하는 풀무환경농업 과정은 풀무학교의 2년제 전공부 과정으로 일종의 대안 대학인 셈이다.

풀무학교는 '진리와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살자'고 부르짖는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교훈으로 삼고 있다. 교장과 교사들이 모두 평등하게 교사로서 권리를 함께 누린다. 책임과 의무는 서로 나눠진다. 학우회, 교사회, 운영회, 학부모회, 학생회 등 다섯 바퀴가 각자 제 역할을 맡아 돌아간다. 그저 학교라기보다 일종의 상호 협력하고 상생하는 유기적 공동체의 실현지인 셈이다.

학교는 마을이고 마을이 곧 학교라 할 수 있다. 풀무학교 안에는 풍력 발전기와 국내 최초라는 태양광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건강하고 청정한 생활공동체를 지향하고 실천한다. 학교 밖 홍동면 150만 평의 너른 들녘에서는 사람 대신 오리가 유기농 벼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힘과 돈을 모아 직접 건축한 환경농업교육관에는 연중 수만 명의 벤치마킹 행렬이 줄을 잇는다.

여기에 풀무생활협동조합, 풀무신용협동조합, 갓골 어린이집, 재활용비누 공장, 반짓고리 공방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마을을 넘어 지역사회를 유기적으로 묶고 엮고 있다.

이 모든 성과가 일찍이 2000년에 수립해놓은 '마을발전 100년 계획'에 따른 것이다. 풀무학교라는 일종의 대안 교육 기관을 중심이자 원천으로 한 생태적 농촌 지역 공동체의 그림이 날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홍동마을의 역사는 3년이 더 흘렀다. 이번엔 오로지 홍동마을 이야기만 들려주는 책이 새로 나왔다. <마을 공화국의 꿈, 홍동마을 이야기>(한티재, 2014년 10월 펴냄). 장길섭 선생도 이야기의 화자 중 한 사람이라는 꽤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아 책에 다시 등장한다. 아는 사람은 안다. 그가 홍동마을에서 얼마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존재감이 있는 주민인지. 최근 만나보니 그 자신은 아직도 잘 모르는 눈치다.

역시 홍동마을을 연구 대상 마을 제1호로 삼고 있는 충남발전연구원이 홍동마을 사람들과 책을 함께 지었다. '지역, 사람, 생명' 이야기를 주로 책으로 짓는 한티재출판사에서 펴냈다. 일단 지은이와 출판사의 궁합부터 제대로 들어맞는다. 좋은 그릇에 담긴 좋은 이야기이니 좋은 책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저절로 생긴다.


책 한 권에 다 담기지 않는 홍동마을 이야기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학교와 교육, 농업과 농촌, 그리고 마을 공동체를 주제로 한 이야기다. 마을에서 가르치고 마을에서 배우다, 우리 농촌의 내일과 어제, 홍동에서 되묻다, 우리 마을 이야기 등 각 분야의 제목은 본문의 이야기를 거의 함축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홍동마을 사람들'은 주로 장길섭 선생을 비롯한 풀무학교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이다. 여기에 농부, 정당인,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의 활동가, 중간 지원 조직 활동가, 보건소 의사 등이 가세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귀농인이라는 동류의식과 연대감을 공유하고 있다. 아무래도 마을 공동체를 이끄는 현장에 젊은 귀농인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다. 평소 이들을 귀농인이나 귀촌인이라는 행정 용어 대신 굳이 '마을 시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마을 시민'이란 "지역 공동체적 사회 자본, 혁신적 인적 자본으로서 지역(마을) 공동체 사업에서 주체적 역할을 감당하는" 농촌 및 지역 주민을 말한다. 또 "'마을 기업'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역량을 갖춘 책임 있는 사업 주체로서, 외지인이나 주변인이 아닌 마을 공동체의 권리와 책임의 선도적 핵심 주체"를 뜻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홍동마을 사람들이야말로 '마을 시민'으로서 전형적인 역할과 자격에 걸맞다.

출판의 발단은 충남발전연구원에서 비롯됐다. 올해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홍동마을 사람들, 외부의 마을 전문가들과 홍동마을연구회를 꾸린 성과물이다. 충남발전연구원의 강현수 원장은 발간사 '자치와 생태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을, 홍동'에서 홍동마을을 우리 농촌의 대안 모델로 예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서 협동조합, 유기농업, 귀농·귀촌 운동을 주도했고 사회적 경제와 녹색 정치 운동을 선도하면서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는 평가다. 결코 의례적인 덕담이나 과장이 아니다.

특히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풀무학교의 역할,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풀무학교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홍동마을도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은 학교가 큰 마을을 살린다"는 사실을 믿는다. 농촌 마을의 재생과 활성화는 토건 공사나 조경 디자인이 아니라 마을 주민의 학습과 교육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소신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홍동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풀무학교, 유기농업, 귀농 생활, 마을 정치, 마을 은행, 보건소, 지역 운동, 사회적 경제 등을 주제로 삼고 있다. 스스로 가장 잘 아는, 직접 부대끼고 있는 일상을 '홍동의 생활인'으로서 진솔하게 털어놓고 있다. 외지인으로서 독자들은 마을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홍동마을에 살아보지 않고서는 홍동마을의 민낯과 진가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뭔가 책 한 권으로는 미처 채워지지 않는 궁금증과 갈증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좋은 방법이 있다. 책을 덮고 홍동마을로 달려가 보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 마을 사람들을 만나보라. 책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홍동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진면목과 진실을 비로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 작지만 위대한 '평민 혁명'이 일어나는 이곳은…)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9월 28일, 홍성 홍동마을에서 조합원 교육을 진행했다. 사진은 홍동면 문당리 유기농 쌀 단지에 들어선 프레시안 홍동 탐방단. ⓒ프레시안(최형락)


홍동의 공익 농민과 마을 시민에게 기본소득 월급을

"자본주의 체제는 합리적 농업과는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합리적 농업은 자본주의 체제와는 양립 불가능(설령 자본주의 체제가 농업에 있어서 기술 발전을 촉진시켰다고 해도)하다. 합리적인 농업에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밭을 경작하는 소규모 농민 또는 연합한 생산자들을 관리해 가는 것이다."

요즘 깊이 새겨두고 곱씹고 있는 글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세계 공화국으로>에서 한 말이다. '합리적인 농업'은 소농들의 협동과 연대로 가능하다는 말이다. 마르크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책에서 이야기하는 홍동의 모습이야말로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인 농업'이 가능한 마을이 아닐까.

마침 마을연구소는 요즘 '공익 농민 기본소득제'의 연구와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 책을 지은 충남발전연구원의 연구 지원 과제를 받아 실행 모델을 연구하다가 홍동을 떠올렸다. 합리적인 농업이 가능한 홍동마을 같은 곳에, 그러니까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그대로 실천하는 홍동마을에 '공익 농민 기본소득제'를 시범 사업으로 시행하면 어떨까. '사람 사는 농촌 마을'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홍동에서 실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령 2010년 기준으로 홍동면의 전체 농가 인구는 약 2600명이다. 이들에게 매월 50만 원씩 기본소득을 월급처럼 지급한다면 연간 약 15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홍성군의 2012년도 세입예산 총액 5180억 원의 2.8퍼센트에 불과한 금액이다. 쓸데없는 농촌 지역 개발 사업이나 실효성 없는 농업 보조 사업 몇 건 하지 않으면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장길섭 선생을 비롯한 홍동마을 사람들도 '농민 기본소득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한다. 최근 도입 타당성 연구를 시작했다. 이제 '사람 사는 대안 마을, 홍동마을'은 '오래된 미래'나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