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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 씨 남편은 왜 대통령의 사람들 때문에 죽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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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 씨 남편은 왜 대통령의 사람들 때문에 죽어야 했나

[프레시안 books] 한성훈 <가면 권력>

대학에서 사회학이나 사회사 교양 강의를 하면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수업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수업을 해보면, 학생들은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같은 학살 사건의 명칭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지만, 민간인 학살의 구체적인 실상은 처음 접했다면서 충격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업이 끝나면 몇몇 학생들은 나를 찾아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서 참고 도서를 소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는 뜻밖에도 학생들에게 소개해줄 만한 적당한 책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론 학살의 실상을 폭로한 증언집이나 르포르타주는 제법 있고, 지역 단위로 민간인 학살을 다룬 학계의 논문집도 꽤 있다. 한국 현대사 전반을 서술하면서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단편적으로 다룬 책도 있다. 또, 민간인 학살을 다루진 않지만, 한국전쟁사 전반을 다룬 책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진행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실상을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게 다루면서, 대학 새내기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쓴 책은 뜻밖에도 찾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한성훈의 <가면 권력>(후마니타스, 2014년 9월 펴냄)은 그런 갈증을 풀어줄 만한 책이라고 본다.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전쟁사 읽기

ⓒ후마니타스
이 책은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거창 11사단 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의 배경과 경과, 희생자의 특징, 가해 기관의 역할과 명령 체계 등을 상술하면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실상과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경우,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있었던 전국적인 예비검속, 각지에서 전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학살의 양상, 경찰·검찰·군·CIC(미군 방첩대)·미군 등 여러 가해 기관의 역할과 지휘·명령 체계, 국민보도연맹의 결성 배경과 결성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국민보도연맹 조직의 성격, 희생자의 특징 등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여러 국가 기관의 자료나 사건 당시 군경의 증언을 바탕으로 가해의 지휘·명령 체계를 밝혀 '가면 뒤에 숨어서 학살을 지휘한 권력'의 실체를 밝히고 논증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은 전쟁 때문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승만 정부의 최고위층이 개입하여 반(反)이승만 세력을 제거하고자 자국민을 '내부의 적'으로 몰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이라는 것, 그리고 현장에서 학살을 직접 실행한 사람은 말단 군경이지만 학살의 궁극적인 책임은 위계 구조의 상부에서 명령을 내린 최고위층에게 있다는 것, 이 책은 이 점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거창 사건 발생 후 있었던 진상 조사와 재판 과정의 문제점, 1960년에 일어난 피학살자유족회 활동이 1961년 5·16쿠데타 후 정권에 의해 탄압당한 과정, 1987년 이후 진행된 과거 청산 운동과 그 성과로서 2005년에 만들어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활동, 진실화해위 해산 후 현재 진행 중인 피해자들의 배·보상 청구 소송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전반적인 과정을 통해 줄곧 학살의 책임을 회피해온 국가, 처벌되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 가해자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박정희 세력은 왜 합동 묘지를 파헤쳐야 했나)

또한, 이 책은 다양한 증언을 바탕으로 희생자들이나 학살 현장에서 살아나온 생존자들의 생애사와 학살 현장에 끌려가기까지의 사연을 서술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첫머리부터 충북 청원군 국민보도연맹원 강영애의 사연(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찰에 끌려간 강영애는 8발의 총탄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그 남편은 목숨을 잃었다)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또는 아내였던 희생자들이 슬프고 처절하게, 또는 잔인하면서도 황망하게 학살당한 사연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서술은 글의 가독성을 높여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과정을 독자들이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뿐 아니라 위로부터의 전쟁사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전쟁사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즉, 학살의 희생자들이 단순히 숫자로 표현되는 익명적이거나 추상적인 존재가 아닌, 고유한 이름과 신체를 가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임을 강조하면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사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증언 중심의 서술은, 다른 자료도 많이 활용했지만 무엇보다도 진실화해위에서 수집한 1차 자료를 많이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수십 명의 조사관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거의 1만 건에 달하는 신청 사건의 신청인들을 조사한 진술 자료와 1만4000여 명에 달하는 참고인들의 진술 자료가 들어 있다. 여기에는 희생자의 가족뿐 아니라, 이젠 세상을 떠난 고령의 생존자, 목격자의 진술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었던 진실화해위에서 조사관 개인의 힘으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조사한 군인이나 경찰 등 가해 측 참고인의 진술도 있다. 진실화해위에서 수집했던 기관 자료에는 경찰 자료나 다른 여러 국가 기관의 자료, 미군 문서 등이 있고, 이것은 희생자의 신원이나 사건의 정황을 밝히고 가해의 지휘·명령 체계를 밝히는 데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었다.

그런데 진실화해위 조사보고서 자체는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가 쉽지 않은 구조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진실화해위에서는 신청 받은 사건들을 사건 유형별로 분류한 뒤 그 분류 틀 안에서 희생자 개개인의 희생 사실을 조사했고, 조사보고서는 이것을 나열하여 서술하고 법적으로 증명해주는 결정서 성격을 띠면서, 개개인의 희생 사실을 종합하여 사건의 전모를 서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분량도 굉장히 방대하다. 그러다 보니 진실화해위 보고서는 국회 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 서가에 먼지 쌓인 채 꽂혀 있는 형편이고, 진술 자료나 기관 자료의 원문은 더더욱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국기기록원 창고에 묻혀 있다. 이렇게 묻혀 있던 자료를 대중들 앞에 꺼내준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공로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책임만 묻는 당위론에 머문 점은 아쉽다

이처럼 진실화해위의 성과에 의존하다 보니, 이 책에는 몇 가지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다. 사실 이 책의 전반부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재정리했음에도 진실화해위 국민보도연맹사건 보고서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진실화해위 보고서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건 유형별 분류 틀 안에서 국가(가해 기관) 대 개인(희생자)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국가 권력과 개인을 매개하는 중간 단위인 지역사적 차원의 여러 요인을 고려해 사건의 역사적인 전모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경우, 전황에 따른 학살 양상의 지역적 차이는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학살의 정황을 당시 지역 사회의 신분과 계급, 이념, 친족, 종교, 마을 간의 갈등 등 다양한 요인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일제 강점기 혹은 그 이전부터 쌓여온 온갖 종류의 갈등이 전쟁 상황 속에 지역 단위에서 좌우익의 대립이라는 외피를 쓰고 나타났음을 밝히는 학계의 연구 시각이나 연구 성과를 포괄하고 있지는 않다.

결국 이 책에서 다양한 증언을 바탕으로 희생자 개개인의 사연과 학살의 양상을 섬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해도, 글 전체는 거대한 공권력에 의해 죽지 않았어야 할 사람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폭로하는 데 그치게 된다. 또한, 그간 과거 청산 운동이 제대로 되지 못했고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되지 못했던 문제도, 다른 여러 요인에 대한 고찰 없이 국가의 책임만 묻는 당위론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진실화해위의 활동이나 배·보상 소송의 성과는 긍정적으로 다루는 반면, 그 한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진실화해위는 1년이라는 제한된 신고 기간 동안 피해자들의 신청을 받은 뒤, 신청 받은 사건을 중심으로 진상 조사 활동을 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사건의 경우, 그간 학계나 유족들이 추정해온 희생 규모에 비해 신청 사건이 너무 적어서 그것만 조사해서는 사건의 전반적 진상을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신청 사건 위주로 조사하다 보니 과거사 정리의 대상이 선별되면서 결국 상당수의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 과정에서 배제되었으며, 과거사 정리가 개별 희생자 중심의 진상 규명 및 경제적·상징적 보상이나 명예 회복 문제로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도 받았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위원회 활동 초기에,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에 대해서는 미신청 피해자까지 전수조사를 하여 사건의 전반적 진상을 규명하는 직권조사를 하자고 의결하였다. 그러나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정작 실제 조사 과정에서는 직권조사로 진행되지 못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중시했던 진실화해위에서는 2009년에는 이 분야의 신청 사건이라도 다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건 조사를 미루고 여기에 다수 인력을 투여했고, 심의·의결도 다른 사건보다 먼저 했다. 그 결과 남은 다른 사건의 진실 규명 과정은 난관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이러한 한계에 대한 체계적인 성찰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과거 청산 운동의 발전을 위해라도 당시 진실화해위에 몸담았던 내부 구성원들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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