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남북 2차 고위급접촉을 오는 30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자고 북한에 제의했다. 지난 4일 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의 인천 방문 당시 이달 말이나 다음달초에 2차 고위급접촉을 갖기로 남북이 합의한 만큼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안을 북한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에 이러한 제안을 전달한 날이 13일 오전인데, 그 이후에도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통일부 대변인은 13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고위급접촉을 언제 북한에 제안할 것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북한에 제의할 내용에 대해 검토 중에 있어서 아직 정확한 것은 확정되지 않았고, 북한에 제의할 정확한 시점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변인이 브리핑을 한 시점은 북한에 제안이 이뤄졌거나 적어도 제안 직전이었는데, 공개브리핑 자리에서 정부 부처의 대변인이 버젓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14일 오전에 있었던 통일부당국자의 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도 거짓말은 계속됐다. 통일부 기자실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한 간이 브리핑에서 통일부당국자는 "접촉 제안 날짜는 검토중"이라는 답변을 반복됐다. 이미 고위급접촉 제안이 이뤄진 상황인데 전혀 다른 말을 한 것이다.
정부 신뢰 무너지면 정부와 국민에게 피해
물론, 남북간에 있었던 모든 일을 일일이 다 공개하기는 어렵다. 남북 간 논의과정이 유출될 경우 북측의 반발을 불러와 남북 접촉 자체가 어렵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라도 정부가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즉답을 피하거나 말을 돌릴 수는 있어도 대놓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피해는 결국 정부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되면 정부가 무슨 발표를 하더라도 믿기 어렵고 정책의 신뢰도와 정당성은 훼손된다.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신뢰를 강조해 온 것도 '신뢰'가 모든 정책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 아니었던가? 이제 앞으로 남북회담과 관련해 남한과 북한의 발표가 다를 경우, 어느 쪽을 믿어야 할 지 고민해야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남북회담 열리고 있는데도 '확인할 수 없다'
정부는 또, 15일 열린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과 관련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남북 간 비밀리에 절차를 진행해 15일 판문점에서 회담이 열렸는데,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누출돼 질문이 쏟아지는데도 '확인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 것이다.
북한이 비공개를 원해 회담 사실을 공개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지난 2월의 상황을 보면 이러한 설명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2월 남북 고위급접촉 당시에도 북한은 비공개를 원했지만, 우리측이 북한의 요구를 거절해 회담 사실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투명하게 끌고가겠다는 기조가 반영된 것이라는게 당시 정부의 설명이었다.
투명하고 당당한 대북정책은 어디로 갔나?
그렇다면, 투명하고 당당한 대북정책을 천명했던 박근혜 정부의 대북기조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바뀐 것인가? 공개석상에서 버젓이 거짓말을 하는 정부의 태도는 이전 정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태도이다. 이에 대해, 거짓말을 했던 통일부 당국자는 "자신도 고위급접촉이 제안된 상황을 몰랐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도 힘들지만, 주변 상황을 알아보면 이 당국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만약, "자신도 몰랐다"는 이 당국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이다. 기자들을 만나 현안 문제에 대해 브리핑을 할 당국자에게 청와대나 통일부의 고위당국자가 제대로 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면, 이 정부의 정책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정부의 당국자들은 국민들에게 거짓 내용이 브리핑돼서 결과적으로 거짓이 국민들에게 전달돼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끼친 가장 큰 악영향 중 하나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정부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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