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요한 1:5)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걸을 수 있었는지 돌아보면 꿈만 같습니다.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십 수 년 전 대학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던 한 해의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후배 한 녀석과 신촌에 있는 학교 정문에서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까지 밤새 걷기로 하였지요.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을까요? 어떤 막막함과 두려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졸업을 하면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때까지도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기에 푸르디 푸른 젊은 피가 어딘가로 분출되고 싶었던지.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다리는 저리고 잠도 쏟아지고. 어느새 물집이 잡혀 한 발짝 떼기도 고통스럽고. 밤을 꼬박 새우며 어찌어찌해 모란공원에 닿은 건 이튿날 점심때가 훌쩍 지난 뒤였습니다. 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새벽의 혹독했던 추위와 이튿날 오후 마석 시내의 눈부시던 겨울 햇살만이 선명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 제 성직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추락하던 젊음의 안타까운 몸짓이 그 후로도 만만치 않았던 이십대의 긴 터널을 그나마 견디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걷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걷고 있노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이 발걸음은 어쩌면 제 자신 속으로 떠나는 긴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반 년이 다 되어갑니다. 수많은 반성과 외침이 있었지만 정작 아무 것도 바뀐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외면하기도 하고, 무언가 외쳤던 이들은 이제 깊은 무력감과 허탈함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피로와 무력감을 넘어서기 위해서. 알 수 없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뚫고 가기 위해서.
안타까운 마음은 있지만 바쁜 일상에 혹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아무 것도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바뀌어야 할 것은 국가권력이나 사회제도만은 아닐 것입니다. 바뀌어야 할 것은 우리의 일상일 것입니다.
폴란드의 교육가 야누슈 코르착은 "모든 사람이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더 인간적으로 행동해야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더 인간적으로 되기 위해서, 더욱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이 길을 걷습니다. 다시 돌아갈 우리의 일상 속에서 세상이 아무리 비인간적으로 굴러가더라도 더 인간적으로, 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살기 위해서 이 길을 걷습니다.
-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 <2> "우리는 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미안했던 걸까?" <3>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 생명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4> "걸으면 생명이 보인다" <6> "강변 꽃길 대신 매연 가득한 길을 걷는 이유" <8> "세월호 희생자 이름 적은 공책을 품고 갑니다" <14> "한국판 킬링필드를 걷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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