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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이명 ① 이순신 진짜 라이벌, 열다섯 번이나 "왕 못 해 먹겠다!"
선조는 임진왜란 7년 동안 무려 열다섯 차례나 양위 파동을 일으킨다. 성군이 되라는 신하에게 왕 노릇 못하겠다며 지청구를 놓은 것이다.
"나는 원래 심장병이 있는데, 지금은 병 뿌리가 굳어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머리가 아프며, 귀가 멍하다. 나이도 노쇠기에 접어들었는데, 이런 자에게 만기(萬機)를 책한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귀가 멍한 것은 사실 돌발성 난청의 시작이었다. 선조의 귀울림, 즉 이명 증상은 실록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재위 28년(1595년) 8월 8일, 선조는 두통, 귀울림 증세를 처음으로 호소했다. 재위 29년(1596년) 5월 11일에도 또 한 번 같은 기록이 등장한다. 선조는 이렇게 고통을 호소한다.
"왼쪽 귀가 심하게 울리고 들리지도 않으므로 침을 맞지 않으면 낫지 않을 듯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은 더욱더 악화되었다. 재위 37년(1604년) 5월 14일, 선조는 귓가에 마비증이 와서 '형방패독산'을 복용하고 나서야 증세가 완화되었다. 재위 39년(1606년)에도 선조가 비슷한 귀울림 증상으로 고통을 호소한 대목이 나온다. 그렇다면, 선조가 앓은 귀울림 즉, 이명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명은 사실 보통 사람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피로가 누적되거나 수면 부족일 때 이명과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나타나는 일시적인 증상은 몸을 잠시 쉬면 금방 낫는다. 그러나 피로, 수면 부족이 만성화되고 심신의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쌓이면 몸을 쉬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처리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이명, 현기증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재위 37년(1604년), 선조는 그제야 내면의 스트레스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기록은 이렇게 전한다.
"의관에게 내 병은 심증에서 얻은 것이다 했더니 의관도 그렇다고 했다."
<동의보감>에서 파악한 귀의 본질은 공한(空閒)이다. '고요함을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이 텅 비어 한가함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번뇌가 생기거나 화가 생겨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한의학의 시각으로 보면, 귀는 본래 차가운 기관이다. 뜨거운 불에 손을 데면 반사적으로 귓바퀴를 잡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차가운 귀에 뜨거운 화가 올라오면 귀가 달아오르면서 자기 소리를 증폭하며 이명이 된다. 이런 과정을 한의학에서는 '간화이명'이라고 한다.
현대 의학에서는 선조의 이명과 같은 증상을 '스트레스성 자율신경부조증형 이명'으로 규정한다. 일상생활에서 받는 심신의 스트레스가 자율신경의 균형을 깨는 유형이다. '노력해야 한다' '근면해야 한다' 등과 같은 강박적 부담에 사로 잡혀 있으면서, 피로 공복 수면 부족 등이 잦아지면 자신도 모르는 새 스트레스가 자율신경의 이상을 초래한다.
이런 환자는 어떻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으려면 자신의 사고방식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 자신의 성격과 사고방식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무리한 부담에 집착하지 않는 생활 태도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말이 쉽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다음 세 가지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일이 바쁘더라도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식사는 필수다.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식사는 본래의 생체 리듬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든 공복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지금 당장 식사와 휴식을 취하라는 몸의 경고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갑자기 심신의 고장과 함께 이명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희로애락을 솔직하게 표현하자. 분노나 슬픔 등의 감정을 억누르면 정신적 에너지가 스트레스로 축적된다. 이성으로 감정을 억눌러야 할 때도 있지만, 자칫하면 이런 이성 과잉은 심신의 균형을 깨트리는 스트레스로 표출된다.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 길이다.
불행히도 선조는 이런 근본 처방에 실패했다. 대신 그는 명의에게 의존했다.
실제로 선조의 시대에는 역사적인 명의들이 많았다. 대표적 명의가 허준과 허임이다. <동의보감>의 허준은 말할 나위가 없이 유명하다. 하지만 침의(鍼醫) 허임은 그 명성에 비해서 세상에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 실력의 침의로 허준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내로라하는 명의들도 '침은 허임이 최고'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이명 치료에는 주로 침이 쓰였다. 재위 39년(1606년) 5월 25일, 선조는 이렇게 허임을 호출한다.
"귓속이 크게 울리니 침을 맞을 때 한꺼번에 맞고 싶다. 혈(穴)을 의논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만약 침의가 간섭을 받아 그 기술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면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을 테니 약방은 알아서 조치하라"
이제부터 허임에게 침을 맞을 테니, 그가 침을 놓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선조의 엄포였다. 허임은 그의 <침구경험방>에서 이명 치료에 효과가 있는 최고 명혈을 '심수(心腧)'로 선정했다. 이름 그대로 이곳은 마음을 다스리는 혈이다. 허임이 이명을 바라본 관점이나 현대 의학이 이명을 바라본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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