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서울 시민의 출퇴근 길을 기분 좋게 하는 사람들이 우리잖아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거든요. 안전장치 하나 없이 버스 승차대 지붕 청소하는 위험성을 제기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해고까지 되다니….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그렇게 무리한 건가요?"
서울 시내의 버스중앙차로 승차대를 청소·관리하는 김영일 씨는 14일 <프레시안>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난 봄, 버스 승차대 지붕 청소 작업이 위험하다고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안전띠나 안전고리 하나 없이 오직 헬멧 하나만 쓰고 3m 높이의 승차대 지붕에 올라가야 했다"고 김 씨는 말한다.
"유리로 된 지붕인데 그 위에 물을 뿌리면 당연히 미끄럽지 않겠어요. 그런 곳에서 안전장치 없이 일하는 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에요. 떨어져서 다치는 것도 무서웠지만 승차대 바로 옆이 차가 다니는 도로인데 거기서 떨어지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김 씨는 되물었다.
"안전 장치를 보강해 달라"는 김 씨와 동료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이들은 노동조합(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서울버스중앙차로분회)을 만들었고 서울시에 민원도 제기하고 노동부에 진정도 넣었다. 그 결과는 11월 6일부로 계약을 만료한다는 해고 통보였다.
서면 해고 통보는 11월 6일 자였지만, 업체 간부는 지난 10일 출근한 노동자들을 모아 놓고 "오늘부터 일하지 말라"고 했다. 김 씨의 동료 22명도 모두 같은 처지다. 오는 12월 31일까지로 계약기간이 명시된 근로 계약서도 소용이 없었다.
서울시 버스중앙차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어준 최대 업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시의 '방치' 속에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 앉았다. 버스중앙차로 승차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서울시 버스중앙차로 승차대 유지·관리를 왜 광고 회사가?
서울시의 자산인 버스중앙차로 승차대를 청소하는 이들은 2차 하청 구조의 밑바닥에 속해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04년부터 승차대 유지·관리 업무를 승차대 광고사업권과 함께 JC데코(JCDecaux KOREA)라는 프랑스계 광고 회사에 넘겨줬다. 이 회사가 승차대를 대신 지어주고 '기부체납'한 대가인 셈이었다. 계약기간도 10년이 넘는 장기였다.
이 회사는 다시 하청업체 에버가드와 계약을 맺고 청소 업무를 맡겼다. 김 씨 등 청소 노동자들은 명목상 에버가드 소속이다.
같은 일을 하는 23명 노동자 가운데 주간 팀이 4명, 야간 팀이 19명이다. 이들의 업무는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내리는 승차대 관리가 핵심이다. 주간 팀은 주로 순찰 및 불법 광고물 철거 작업을 한다. 야간 팀은 이에 더해 승차대와 광고판 청소 업무가 떨어진다.
시민들의 버스 이용이 거의 없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가 이들의 업무 시간이다. 2인 1조로 12개 정도의 승차대를 맡아 치운다. 조인수 씨는 "한 겨울에도 비눗물을 뿌려가며 광고판을 닦았다"며 "영하의 날씨에 비눗물을 뿌리고 있으니 경찰이 와서 '당신 미쳤냐'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월급은 한 달에 실 수령액으로 141만 원 수준이다. 이들이 받아든 월급명세서는 기본급 항목에만 155만 원이 찍혀 있었다. 야간수당은 물론 식대도 없다.
노동자들 민원 제기에 서울시 "JC데코와는 업무협약 관계일 뿐" 모르쇠
이들은 지난 7월 처음 서울시에 민원을 넣었다. 핵심은 지붕 청소 작업의 위험성과 야간수당 지급 문제였다. "주간 팀에 비해 야간 팀은 청소 업무가 더해져 있어 노동 강도가 더 세지만, 야간 수당이 별도로 지급되지 않아 같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그 외에도 근무 중 차량 사고를 개인 급여에서 공제했던 일, 근로 계약서를 개인들에게 교부해주지 않은 문제 등에 대해 JC데코와 업무협약 관계에 있는 서울시가 나서 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이들은 서울시 외에도 노동부 남부지청에 같은 문제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회사는 편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9월부터 같은 월급을 기본급 113만 원과 야간수당 41만 원으로 쪼갠 급여명세서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는 이 같은 내용으로 새로운 근로 계약서를 작성해 와 노동자들에게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새 근로 계약서의 계약 시작 날짜는 지난 1월 1일부로 돼 있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자, 결국 전원 해고라는 통보가 내려온 것이다.
이들의 해고에 대해 소속 업체 관계자는 "원청인 JC데코로부터 용역업무 위탁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고 지난 10일 부로 계약관계가 종료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해당 노동자들과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 왔지만 노동자들이 원청인 JC데코가 참석하지 않은 회의는 안 하겠다고 해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유경원 노조 분회장은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오히려 원청인 JC데코의 편을 들어 JC데코는 이 사안과 관계가 없으니 에버가드와 문제를 잘 해결하라는 입장만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유경원 분회장은 "서울시 관계자는 '업무협약 관계라 강제력이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덧붙였다. 이상한 구조를 처음 만든 것은 서울시인데, 서울시가 그 구조를 핑계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 셈이다.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원청에서 회사 이름 새겨진 차량·작업복 제공하고 업무 지시 감독까지…
이들은 자신들이 사실상 서울시의 업무지시를 받아 움직였다고 설명한다.
"버스 승차대 청소가 끝나면 상태를 사진을 찍어 원청인 JC데코에 보고하거든요. 그러면 다시 JC데코가 서울시에 보고를 합니다. 시설이 파손되거나 지저분하면 서울시에서 JC데코로 업무 지시가 내려오기도 하고요."
서울시-JC데코-에버가드로 이어지는 지시와 감독의 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은 에버가드 소속이지만, 업무에 필요한 차량과 작업복 등 모든 장비를 JC데코에서 직접 제공하고 있다. 제공할 뿐만 아니라 차량에도, 작업복에도 JC데코라는 회사 이름이 버젓이 적혀 있다. 업무 중에 실시간으로 내려오는 무전 지시도 JC데코 관리자가 직접 한다.
서울일반노조 김선기 대외협력국장은 "에버가드는 원래 청소 업은 거의 하지 않는 전문 경비업체"라며 "이 경우 에버가드는 하청업체가 아니라 인력만 제공하는 불법 파견회사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법원도 최근 "2차 하청 노동자도 불법파견의 경우 원청 소속으로 봐야" 판결
이 구조 때문에, 이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서울시가 벌인 1~2차 실태조사에서도 이들은 빠져 있었다. 3차로 진행될 서울시의 민간위탁 사업의 비정규직 실태조사에서도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중의 하청 구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사용 행태에 대해 최근 제동을 걸고 있다. 현대차 불법파견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9월 18일 2차 하청 노동자도 불법파견라고 인정했다. 원청과 2차 하청업체 사이의 직접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묵시적 근로자 파견 계약'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이 기준으로 보면, 서울시 역시 이들 노동자와 '묵시적 근로자 파견 계약'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부터 출근조차 못 하고 있는 조인수 씨의 하소연이다.
"사실 우리 일이 좀 힘듭니다. 그래도 서울 시민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텼거든요. 단지 좀 더 안전하게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거든요. 고용도 좀 안정적으로 보장해줬으면 좋겠다는 거고요. 그런데 서울시도, 원청 업체도 나 몰라라 하는 사이 해고 통지서를 받아드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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