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기형적’ 국정감사
해마다 이맘때쯤 이면 국정감사가 열린다. 무수히 많은 사건이 폭로되고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의 마치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파헤쳐진다. 하지만 그렇게 경천동지로 시끄럽게 진행되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바꿔지고 깨끗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항상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문제점이 산더미처럼 지적되지만 정작 해결된 것은 없다. 국민들은 너무 피곤하다.
이제 건수주의, 호통과 변명으로 일관되는 이러한 보여주기식과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근본적이고 상시적인 감사제도가 구축되어야 한다.
본래 우리나라도 제헌헌법 제정 당시 감사원 설치에 있어 미국 방식을 검토하였다. 미국 방식이란 의회에 감사원을 설치하고 감사원이 국정감사를 1년 내내 상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인 한국의 특성으로 결국 미국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 감사원(심계원)을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였다. 당시 수사와 감사를 수행하는 미국 의회처럼 한국 의회도 국정조사와 국정감사 두 가지를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대통령 감사’인 감사원과 의회감사인 국정감사로 나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대통령이 감사원을 가져가면서, 세계 유일한 ‘기형적’ 국정감사가 출현하게 되었다.
“권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말할 의무를 가진 독립된 기관”, 감사원
우리 감사제도의 ‘기형성’ 극복을 위하여 먼저 독일을 비롯하여 프랑스, 미국 감사 시스템을 살펴봐야 한다.
모든 감사보고서 일반에 공개, 독일 검사원
독일의 연방회계검사원은 헌법기관으로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 어느 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아니하다. 독일의 연방회계검사원은 1948년 제정된 독일연방기본법 제114조 제2항에 의하여 헌법상 최고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연방회계검사원 원장은 임기가 12년이고 단임제인데, 연방정부의 제청으로 연방의회에서 비밀투표로 선출하고 연방의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표를 득표한 자가 선출되고, 대통령은 선출된 자를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
공공기관 감사에 있어 연방회계검사원 및 그 직원의 임무 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건은 요구일로부터 일정한 기한 내에 반드시 제출되어야 한다. 이때 자료제출 의무는 문서가 현존하지 않지만 정상적인 행정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경우에 있어 그 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즉, 감사 대상기관은 요청한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료의 제출을 단순히 거부할 수 없고 이를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만약 감사직원의 정보요청 요구에도 불구하고 감사대상기관이 이를 무시하고 제출하지 않을 경우 감사직원은 즉시 이를 상부에 보고하여 직원회에서 조치를 결정한다. 감사 기준은 적법성, 경제적 효율성 그리고 능률성이다.
감사보고서는 모두 일반에게 공개된다. 이로써 일반 국민들의 감시가 활성화될 수 있고, 감사 직원에 대한 로비활동도 제한할 수 있다. 그리고 감사기관에 대한 개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 감사원, 모든 공공기관이 지출계산서와 증빙서류 제출, 전수 감사 효과
프랑스 감사원은 입법, 행정, 사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관으로 존재한다. 감사는 행정 각부 기관으로부터 모든 지출계산서 및 증빙서류 원본을 제출받아 실시한다. 원칙적으로 3~5년 동안의 회계집행 사항을 전수 감사하도록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인력 및 시간적 제약으로 전체의 1/4 정도를 표본 추출하여 감사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계산서 및 증빙서류를 제출받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전수 감사를 받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프랑스 감사원의 구성원은 판사와 동등한 신분 보장을 받으며 봉급도 일반 공무원의 두 배 정도를 받는다. 이들은 권력이나 감사대상 기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오직 감사 업무의 성과에 의해서 자신의 고과(考課)가 평가된다. 자크 시라크와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도 일찍이 재무감사 직군으로 활동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이는 권력이나 감사대상 기관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것이 사회적인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인식되는 프랑스의 풍토를 그대로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하였다.
15년 임기의 감사원장, 미국 회계감사원
미국 회계감사원의 경우, 1921년 제정된 예산회계법 제7장에 의하여 회계감사원이 “권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말할 의무를 가진 독립된 기관”으로 규정되어 설치되었다. 당시 의회지도자들은 예산 감시기관이 행정부의 외부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원래 재무부 관할 하에 있었던 회계 감사 기능을 의회에 이전시켰다. 회계감사원장은 상하 양원 각각 5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3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 동의를 거쳐 임명하며 임기는 15년 단임이다. 대통령은 추가 후보를 추천할 권한이 없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임무로 하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원 업무의 10%가 회계 감사이고 나머지 90%는 사업 평가가 차지하고 있다.
회계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제출된다. 그러므로 미국의원들은 우리처럼 매년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이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의정활동을 펼친다.
그 수많은 ‘감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현재 많은 공공기관에 외부에서 ‘감사’가 파견되고 있다. 이 ‘감사’들이 자기 직무를 충실히 수행만 해도 공공기관의 부패비리를 상당 정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이 ‘감사직’들은 거의 낙하산 형태의 권력 나눠먹기에 지나지 않는다. 일찍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에도 정치권과 운동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감사라는 벼슬을 받고 공공기관에 파견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그 감사직을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얘기는 참여정부 당시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로 재직했던 강동원 의원의 경우 외에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낙하산 ‘완장’으로 적당히 군림만 하다가 한 일은 없이 그만 두었다. 이렇듯 매사가 오십보백보 여야 차별이 전혀 없으니 민주화 진영이 비난을 받는 것이다.
효과적 감사 시스템의 존재는 건전한 공직사회의 필수 조건
효과적인 감사 시스템의 존재는 건전한 국가 공직사회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감사 시스템은 관료집단이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국가 제도이다. 기실 감사제도의 미비 및 불철저함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의 심각한 관료집단의 무능과 부패가 배태된 것이고 세월호 참사도 초래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처럼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으로 되어 ‘대통령 감사’로 전락한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항상 정권의 입맛에 맞는 감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기형적인 위상을 조속히 바꿔내야 한다. 이와 아울러 모든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에 준하는 감사와 철저한 자료제출, 감사보고서의 완전한 공개 그리고 감사원장 임기의 연장 등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감사 시스템을 도입, 강화하여 국제 기준에 부합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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