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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타고 가면 편한데, 왜 걷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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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타고 가면 편한데, 왜 걷느냐고요?"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13>] "진실을 향한 과정의 길을 밟다"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도보순례 참여를 고민하며 며칠을 보내는 중에 거리 곳곳에 부착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실명 현수막들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세월호가 다 지나갔다고, 더 이상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처리해야 할 민생현안의 발목을 붙잡는 종북좌파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라고 떠들어대는 주류언론의 보도들과 달리, 여전히 우리 안에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그 아픔을 나누며 우리 모두를 죽음의 길로 몰고 가는 권력자와 자본가들의 욕망의 전차를 멈추겠다는 시민들의 실천적 행동이 있었다. 그 현수막은 나 역시 정말 세월호가 다 지나간 듯 망각하며 아무것도 해 볼 용기를 내지 못했던 나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먼저 깨어난 누군가의 발자취였다.

그러나 여전히 내 안엔 어두운 마음이 있다. ‘그렇다고 한들 무엇이 바뀌겠어? 겨우 미미한 이 정도의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그저 힘없고 가난한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만을 자각할 뿐이지.’ 이것이 어찌 나만의 생각일까? 어찌 나만의 좌절이며, 나만의 어두움일까? 권력에 의해 유린당해온 민중은 그 오랜 세월 불의한 정치에 항거하는 용기가 곧 죽음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으니 말이다.

그러다 탐사보도저널 <뉴스타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소식을 보게 되었다. 힘없는 국가의 소녀로 태어나 일본군의 위안부로 징집되어 피어보지도 못한 청춘이, 인생이 송두리째 짓이겨져버린 할머니들, 그 분들은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를 원했고 다시는 자신들처럼 힘없이 쓰러져가는 영혼이 이 땅에 없도록 역사가 자신들을 기억해주길 바라며 1992년 1월부터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집회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3명의 일본인 원로목사들이 이 집회에 참여해 할머니들께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일본정부에게 전했다. 일본정부가 이 수요집회에 대해 어떠한 응대도 하고 있지 않지만 이 수요집회가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엄청난 압박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그 보도를 통해 나는 알았다. 저 힘없고 너무도 미미해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행동이 가해자들의 양심에 압박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을 위로하며 걷는 그 걸음이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로서 우리 모두의 양심을 일깨우고 압박하기 위해 걸어야겠구나.’

그렇게 참여한 순례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여린 들꽃처럼 흔들리지만 진실을 응시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또 길 위에서 만난 어떤 분으로부터 냉소적인 농담도 들었다. “차를 타고 가면 편한 것을 뭐 하러 걷습니까?” 그 말은 ‘그렇게 걷는다고 무엇이 달라진단 말입니까? 다 괜한 헛일이지요’ 하는 내 안의 어두움과 흡사 닮아있는 말이다.

▲ⓒ성공회 생명평화도보순례단
경제성장을 지향하며 우리 사회에 유입된 천박한 자본주의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되고, 어찌 되었든 결과가 좋으면 다 괜찮은 성과주의를 불러왔다.

우리 사회는 등급을 매기지 않은 것이 없다. 소나 우유, 사물은 물론이거니와 학교, 지역 하물며 교회와 사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등급이 매겨서 평가받는 사회다. 그런 사회적 문화 속에서 살며 어느새 우린 길을 보진 않고 목적지만 보며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도보를 해 보니 알겠다. 차를 타고 지나가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깨닫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길 위에서는 동료가 지팡이 삼아 짚고 가는 막대기도 제 역할이 있고 개똥도 정겨워진다. 그런 길을 걸어가 닿는 목적지라야 더 없이 좋은 진실일 게다.

하느님 나라는 그런 길 위에서 만난 나의 동료이고 이웃이고 길가의 풀이고 익어가는 벼이삭이고 하늘이며 땅이다.

결과만을 집착하며 진실로 향하는 과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진실을 되찾아주고자 오늘도 우리는 먼저 깨어나 기꺼이 그 수고로운 길을 걷는다. 그 길을 다 걷지 않고서는 결코 세월호는 우리에게 한 걸음도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


<1> "팽목항에 내려가며 느낀 흐린 날의 여운"

<2> "우리는 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미안했던 걸까?"

<3>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 생명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6> "강변 꽃길 대신 매연 가득한 길을 걷는 이유"

<7> "자식 잃은 부모는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8> "세월호 희생자 이름 적은 공책을 품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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