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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주민투표, 박근혜 정부 운명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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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주민투표, 박근혜 정부 운명 바꿀까

[기고]삼척 주민투표 '핵발전소 반대' 결과의 의미

10월 9일, 삼척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삼척 시민들은 핵발전소 부지 유치 신청에 대한 찬반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선거관리위원회의 도움 없이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전체 유권자의 70% 가까이 되는 주민들이 주민투표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제공하였으며, 그 중에서 거의 68%의 주민들이 투표장에 나와서 찬반 의사를 밝혔다. 6월 지방선거를 기준으로 하였을 때, 유권자의 절반(47.3%)에 가까운 주민들이 투표에 참가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민투표에 참여한 대다수(84.9%) 주민들이 핵발전소 부지 유치에 대해 반대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번 주민투표의 결과는 국가의 핵발전 확대정책 추진이 더 이상 불가능하며 대폭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주민투표 성사 자체가 지방자치라는 민주주의 실험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9일 삼척 주민투표 개표 현장 ⓒ연합뉴스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하고도 한심한 일이기도 하다. 삼척은 세 번째 ‘반핵 투쟁’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은 1990년대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냈고, 다시 2000년대 중반에 핵폐기장 건설도 막아내었다. 삼척 시민들은 자신들의 반핵운동 역사를 자랑스러워한다. 1999년도에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낸 후 주민들이 세운 ‘원전백지화 기념비’는 외지인들에게 그들의 반핵투쟁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설명해주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기념비가 우뚝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척은 또다시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 속에 빠져 들고 말았다. 2010년 전임 삼척시장이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신규 핵발전소 부지 유치 신청을 하였기 때문이다. 삼척 주민들이 다시 세 번째 반핵 투쟁에 나서게 된 이유다.

삼척 시민들은 매일 같이 탈핵 시위에 나섰고, 전국을 걷는 탈핵도보행진을 통해서 삼척 핵발전소 유치 신청의 부당성을 알렸으며, 심지어는 2012년에는 전임 시장의 신임을 묻는 주민소환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삼척 시민들의 민의는 계속 무시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회가 찾아 왔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첫 번째 공약으로 ‘원전 유치 철회’를 내세운 현 김양호 삼척시장이 당선되면서, 삼척의 민심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은 취소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주민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전임 시장만이 아니었고, 그 뒤에는 한수원과 중앙정부가 오만하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김양호 시장은 주민들의 뜻을 보다 확실히 밝히기 위해, 전임 시장이 신청한 핵발전소 부지 신청의 철회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주민투표로 물을 방침을 세웠다. 삼척시의회도 만장일치로 이런 계획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민투표법에 따라서 투표를 관리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그 임무 수행을 거부했다.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중앙정부(산업통상자원부와 안정행정부)에게 주민투표의 대상이 되는지 문의하고, 국가사무라는 납득하기 힘든 답변을 핑계로 투표관리를 해줄 수 없다고 나온 것이다. 독립적 헌법 기구로서 역할을 방기한 선거관리위원회도 문제지만, 핵발전소 유치 신청을 철회하는 것이 지자체의 고유 권한이 아니라 국가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제 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핵발전소 부지 유치라는 지역주민들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면, 대체 뭐 하러 주민투표법을 만들었나. 지방자치/민주주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사실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은 핵발전소라는 중앙집권적인 거대 에너지시스템의 고유한 속성이다. 정부는 핵발전소의 위험성으로 인해서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부지를 구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의견을 반영할 기회도 마련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방식으로 건설을 추진해왔다. 전세계 그리고 한국의 핵발전소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일이다. 최근 들어 주민참여 기회가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전임 삼척시장이 얻어 제출했다는 96% 이상의 주민동의서에 대한 조작 논란은 그런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잘 모여주고 있다. 지역주민들을 엄청난 위험과 희생 위에서 건설되고 운영되며, 그 혜택은 서울 등의 수도권의 대도시와 에너지다소비 산업계에게 돌아가는 부정의(不正義)는 여전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부정의를 바로잡으라고 법을 제정하여 도입한 것이 주민투표제도인데, 이를 보장해야 할 중앙정부가 막아선 것이다. 중앙정부가 바로 그 ‘부정의’ 자체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한국 탈핵을 향해 나선 주민투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마치 계엄령이 선포된 듯이 대규모 경찰 병력을 주둔시키고 주민들을 탄압했던, 부안에서도 군민들은 자체적으로 주민투표를 조직했다. 의견 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였던 정부의 핵폐기물처리장 건설 계획을 반대하는 오랜 거리 투쟁을 주민투표로 정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자기의 일처럼 투표 관리를 도왔다. 그 결과 핵폐기물처리장을 거부하고 핵발전 정책을 반대한다는 주민의견이 명확히 밝혀졌다. 마지못해 정부는 물러났다. 이제 삼척시민들은 부안군민들이 걸어간 승리의 길을 따라 걷기로 했던 것이다. 국가가 해주지 않는다면, 주민 스스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주적으로 조직한 주민투표를 통해서 국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핵발전 건설 결정을 뒤집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 그들은 그 길 끝에 도달했고 승리했다. 법적 효력이 있으니 없느니 하는 논란은 핵심이 아니다. 삼척 주민투표와 그 결과의 정당성은 확고하다.

부안의 반핵투쟁이 삼척으로 옮겨 간 것이라고 했지만, 삼척 주민투표는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부안의 싸움이 핵발전의 위험한 부산물(핵폐기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해 세상 사람들을 깨닫게 했다면, 삼척의 싸움은 그런 핵폐기물 자체를 더 이상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주고 있다. 부안군민들의 반핵투쟁이 그랬던 것처럼, 삼척시민들의 반핵투쟁과 주민투표는 중앙정부의 무모한 핵발전 확대 정책을 바로잡는데 중대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삼척 주민투표는 삼척시민만의 투표가 아니라,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공은 중앙정부에게 넘어간 셈이다. 삼척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주민투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핵발전소 유치를 반대한다는 주민들의 뜻이 분명히 밝혀졌다. 삼척시와 강원도는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근거로 핵발전소 부지 예정구역 지정 고시를 해제해줄 것을 요청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한 일이다. 중앙정부와 한수원은 그 뜻을 존중하여 건설 계획을 취소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한수원이 순순히 그렇게 할 것인지는 자신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거부하고 강행한다면 삼척이 제2의 부안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중앙정부가 주민투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경투쟁을 하겠다는 경고가 이미 나와 있다. 삼척에 더 혹독한 바람이 불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이 한국 핵정책이 결정적으로 좌초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운명을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삼척의 투쟁이 지역만의 싸움이 아니라, 생명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국적인 싸움으로 전환된 것이다. 삼척은 한국 핵정책을 좌초시키고 박근혜 정부의 운명을 바꿀, 뾰족한 송곳이 되었다.

지난 3일, 녹색당은 탈핵법률가모임, 반핵의사회 그리고 탈핵에너지교수모임과 함께, 삼척 현지에서 토론회를 개최하여 삼척 핵발전소 건설의 부당성과 주민투표의 중요성에 대해서 토론한 바 있다. 이 토론회에서 삼척 탈핵운동을 대변하였던 이광우 삼척시위원은 주민투표의 승리를 예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발표를 마무리했다.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지난 4년의 역사를 시민들의 힘으로 종결짓는 시민들의 대투쟁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며, 삼척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지금 이 순간 나도 삼척시민이고 싶다. 삼척시민들에게 감사와 환영의 인사를 보낸다.

* 이 글은 탈핵신문(2014년 10월호)에 실린 필자의 기사를 수정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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